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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첫 경험

by 은예진

나이 50살이 넘어 내 차를 갖게 되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학습지 회사를 다닐 때 차가 꼭 필요했기에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차를 사고 유지하는데 드는 돈이 낭비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차를 원했다면 부모님이 사주실 수도 있었다. 심지어 남편이 차가 필요한 시점에 결혼 전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부모님이 남편에게 차를 사주셨다. (물론 그 차는 반납돼서 내 동생들 모두에게 첫차가 되었지만 말이다.)


운전면허를 따고 가끔씩 남편 차를 타고 다녔지만 기껏해야 동네 수준이었다. 남편차는 후방 카메라가 없어서 주차와 후진에 자신이 없었다. 그 차가 더는 장거리를 운행하기 부담스러울 지경으로 낡아서 새로 사게 된 차를 남편이 나에게 타라고 했다. 신형 아반떼가 예뻐서 내가 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산 차라고 했다. 그게 50살을 넘기고 나서였다.


주변 사람들 모두 운전이 일상인 세상에서 나만 혼자 신이 난 초보운전자였다. 고속도로를 처음 들어가던 날 내비게이션으로 그 길을 수십 번 미리 반복해서 보고 또 보고 나갔다. 손에 땀을 닦아가며 고속도로를 통과하고 나자 드디어 운전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나무꾼이 감춰둔 날개옷을 찾은 선녀 같은 기분이었다. 친구들을 비롯해 가족 모두 하물며 늙으신 엄마도 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야 운전을 시작한 나는 자랑하기도 머쓱했다. 내가 차를 가지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차를 가져보자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써보지 않았기에 얼마나 필요한지 몰랐을 뿐이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자식이 결혼하면 목을 빼고 앉아 아기 소식을 기다리는 흔한 클리쉬가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아기는 없어도 그만이었다. 중요한 것은 자식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 가였다. 딸도 자신의 삶에 아이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딸과 달리 사위는 결혼과 출산을 통해 자신의 가족을 이루고 싶은 사람이었다.


사위의 소망대로 아기를 자신의 품에 안았을 때, 그의 벅참의 정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사위와 그렇게 깊은 대화를 나누어본 적은 없다. 너무 먼 거리에 살기에 가끔 만나면 우리 사랑하는 OO이라든가 듬직한 O서방이라고 할 뿐 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아직 서로에게 조심스러운 관계이다. 그럼에도 그가 아이와 아내에게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말로 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충분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다정하게 마주 앉아 행복한 표정으로 일일 구독하듯 날아오는 사진을 바라보며 아기 이야기를 한다. 우리 삶에 이런 시기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기는 세상에 나오면서 그 말랑하고 보드라운 존재감으로 더 이상 감동하지 못하는 묵은 심장을 바꿔 놓았다.


아이돌을 비롯한 연예인을 덕질하며 그 사랑의 힘을 원동력으로 삶을 구동하는 사람들처럼 우리 부부는 갓 태어난 아기를 덕질하며 우리가 가족임을 상기한다.


장기 연애로 관계가 심드렁해진 연인들은 헤어지든지 결혼을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한다. 헤어지지 않으려면 관계의 재정립을 통해 권태로워진 마음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 없이 사는 부부들은 공동의 관심사가 둘 사이를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식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식만큼 부부 사이를 연결해 주는 것은 없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기숙사에 있었으니 우리 부부는 꽤 오랜 기간 둘만 살았다. 나쁜 날도 있었고 좋은 날도 있었다. 대부분 그저 그런 날들이었다. 요즘 우리를 감싸고도는 공기는 300킬로 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아기의 분내가 핸드폰을 통해 전달된 듯 포근하다. 남편도 나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잊고 살다 불현듯 깨달았다. 아, 우리 가족이구나.


이제야 손자를 기다리는 부모들의 마음이 클리쉐임에도 여전히 설득력이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경험해 보기 전에는 절대 몰랐다.


나는 아직 해보지 못한 것들이 무수히 많다. 그중에 하나가 해외여행이다. 내 나이의 해외여행이라는 것이 친목모임에서 여행 경비를 적립해서 패키지로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 친목 모임이 없고 패키지여행을 따라다닐 체력이 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이 나이가 되도록 해외여행을 가보지 못했다.


나에게 해외여행은 신포도다. 내 체력으로는 어림도 없지. 국내도 못 가본 곳이 천지인데 무슨 해외까지..... 기타 등등 솔직히 말해서 해외여행을 가보지 않았으니 차가 얼마나 필요한지도 손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도 모르는 때와 마찬가지 아닐까?


일본을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드는 동생이 작년에 여행 계획을 세웠을 때 나는 전정신경염이 재발해서 당일에 출발을 포기했다. 그리고 올해 다시 가고시마 여행 계획을 잡았다. 자기 가족여행에 나와 다른 동생 모녀를 끼워 넣은 여행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동행하기로 했던 동생 모녀의 독감이 너무 심해서 빠져야 할 것 같다고 한다. 그럼 나는 4인 가족 여행에 혼자 따라붙은 좀 우스운 꼴이 된 것이다. 모양이 좋지 않으니 가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또 포기하고 나면 나 스스로 어떤 문을 닫아 버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해외여행은커녕 제주도도 이십 년 간 가보지 못하다 최근 두 번을 다녀오면서 비행기도 제주 여행 계획도 자신이 생겨 삼월에는 남편과 둘이 떠나기로 예약을 마쳐 놓았다. 할 수 있는 일을 이런저런 핑계로 하지 않으려는 것은 못하는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은 거지만 늦었다고 못할 건 없는 거니까 말이다. 내가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경험하는 것은 짜릿한 일이다. 지난주에는 야간 고속도로를 운전하며 내가 또 한 번의 퀘스트를 통과했음에 뿌듯했다. 첫 경험을 하지 않으면 두 번째 세 번째는 없다.


폐경 이후에 한참 아프고 우울할 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 더는 삶에 희망이 없어 보였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나고 할머니가 된 나는 막혀있던 문을 열기 위해 팔꿈치에 힘을 주며 밀고 있다. 당시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팔십이 되어서도 첫 경험은 언제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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