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6일 태어나 배고프면 울고 젖병을 빠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던 아기는 오 개월이 넘자 제 몸을 원하는 곳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아기는 날쌘돌이처럼 배를 밀며 전속력으로 달려 자기를 비추는 핸드폰을 손아귀에 움켜쥔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는 흔들리는 화면 속에 드나드는 아기 얼굴 때문에 웃음을 터트린다.
배를 미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무릎을 세우려 안간힘을 쓴다. 이름을 부르면 팔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들어 올려 무릎을 세운다. 하지만 아직 무릎으로 기는 단계로 넘어가지 못해 팔꿈치를 이용해 전진한다. 그렇게만 움직여도 속도가 빨라 엄마 입에서 '빠르다 빨라'하는 소리가 나오게 만든다.
제 몸을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대단한 일임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꼼짝없이 누워서 천장만 바라봐야 하던 조그만 아기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거울을 꽁 치며 손을 쓸 줄 알게 되고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더니 낮은 포복 자세로 거실을 횡단하며 쌕쌕 거친 숨을 내쉰다.
이제 우리 아기는 원하는 곳을 향해 빠르게 전진한다. 그 눈빛은 결의에 차서 목적한 바를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우리가 흔히 멍게라고 부르는 우렁쉥이는 어린 유생 시절에는 올챙이 모양으로 떠다니다가 적당한 자리를 찾으면 달라붙어 변태하여 성체가 된다. 우렁쉥이가 움직이던 시절에는 뇌가 있지만 정착하면 더 이상 뇌가 필요 없다고 판단해 흡수해 버린다. 그러니까 움직이는 것은 곧 뇌의 발달과 연관되어 있다. 아기의 뇌가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는 데 따라 몸의 움직임도 활발해지는 것이다.
관습적으로 쓰던 눈부신 성장이라는 말이 이렇게 적절할 일인가? 아기의 성장은 정말이지 눈이 부시다. 아기가 무릎을 세우기 위해 이를 악문듯한 표정으로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다 나는 문득 얼마 전에 읽은 김기태의 소설 '무겁게 높은'을 떠올린다.
검은 물이 흐르는 탄광촌이었던 작은 마을은 이제 카지노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재학생이 반의 반으로 줄어든 산골 마을 작은 고등학교에 역도부가 있었다. 송희는 그 역도부에서 바벨을 들어 올린다.
송희는 소각장에 가다 우연히 들은 바벨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매료되었다. 들어보고 싶다기보다 버려보고 싶었다. 탄광에서 기운 꽤나 썼다는 아버지는 매번 술에 취해 들어와 세상을 탓한다. 엄마는 일찍이 집을 떠나 버렸고 주변에는 카지노 때문에 벌어지는 흉흉한 일들 뿐이다. 버리는 것도 쉽지 않아서 송희는 역도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하는 그저 그런 학생일 뿐이다.
누가 봐도 보잘것없는 처지의 송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 킬로그램을 들고 싶다. 연습할 때 96 킬로그램을 넘기지 못했고 설혹 100 킬로그램을 든다고 메달을 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보기에 송희가 100 킬로그램을 드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오직 송희 자신이 정한 약속일뿐이었다.
결국 대회에서 송희는 100 킬로그램을 들지 못했다. 그날 메달을 딴 안경은 119 킬로그램을 실패하고 눈물을 보였다. 그런 안경에게 송희가 한마디 한다.
넌 잘했어.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 송희는 혼자서 바벨 앞에 섰다. 원판을 꽂은 바벨의 무게는 100 킬로그램. 그 100 킬로그램에는 영광도 미래도 꿈도 희망도 없었다. 그저 내 몫의 약속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쇳덩이를 쥐고 두 발로 바닥을 밀어내는 순간 송희의 복부 안에 작고 단단한 무엇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날 송희는 역도를 그만두었다.
미래도 꿈도 될 수 없는 100 킬로그램을 든 송희는 자기의 안에 작고 단단한 것을 만들고 뜨겁게 세상으로 나갔다. 버리고 싶어서 시작한 역도였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며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송희는 메달 수상자의 병풍에 불과하지만 그런 자신의 연습에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를 위로한다.
그 사이 우리 아기는 엉덩이를 번쩍 치켜들며 환하게 웃는다.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는 의지는 어쨌든 보는 사람이 응원하게 만든다. 나는 송희가 100 킬로그램을 들기 바랐던 마음으로 아기가 무릎을 세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의지의 소녀들 파이팅!
그런데 어떻게 저 발끝으로 서 있는지 몹시 궁금한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