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다정한 사람이지만 그게 대체로 말만 앞서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말없는 무뚝뚝한 사람이 다정하기보다는 말이 앞서는 사람이 다정하기 쉬우니 어쩔 수 없다. 김은숙 작가가 쓴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남주가 여주의 머리를 묶어주며 연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이 해주는 거라고 했다.
연애는 그럴지 몰라도 결혼생활은 이 말이 맞지 않는다. 일단 생활이 된 남녀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주는 남자보다는 내가 할 수 없는 일 또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해주는 든든한 남자가 더 필요했다. 나는 그랬다. 그리고 남편은 대부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겠다고 나섰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한창 힘든 시절 그는 자기 나름의 고충과 기타등등의 이유로 나의 애로를 외면했다. 일주일 내내 밤이 늦어 새벽이 다된 시간에 들어오고는 주말에 외식 한 번 하면서 그걸로 자기 할 일은 다 했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어느날 식당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데 그런 남편을 도저희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무슨 말끝에 화를 버럭 내고 시켜놓은 밥이 나오기 전에 아기를 안은 채 택시를 타고 집에 와 버렸다.
그날 자기를 망신 주었다며 노발대발한 남편은 끝내 나한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이 결혼은 애초부터 네가 하자고 해서 한 결혼이었다. 네가 하고 싶어 했으면서 왜 이제와서 이런 나를 받아주지 않느냐고 한 것이다.
그때 나는 엄마를 원망했다. 결혼을 반대하려면 제대로 반대하지 반대하다 말아서 내가 저 사람과 결혼하게 만들었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했다. 헤어지지 않으려면 더 시간끌지 말고 결혼해야 한다고 엄마가 나를 몰아붙여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철이 없기로 치면 둘 다 막상막하였던 것이다. 누가 더 한심한지는 도토리 키재기다. 당시를 생각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남탓만 하는 어린애들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입밖으로 내 뱉은 말이었고 나는 생각만 한 말이었으니 여기서 죄인은 당연히 남편이다. 내 맘을 그 사람은 모르니 어쩔 수 없다. 남편은 자신이 한 말 때문에 이후 삼십년 동안 두고 두고 나한테 씹혔다. (그게 다 말이 앞서서 그런거다.)
이제 남편도 나도 철이 좀 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한심한 구석을 가지고 늙어 버렸다. 딸이 결혼을 하면서 남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위가 하는 것을 보니 나는 다시 우리의 신혼 시절이 떠올라 입이 근질거렸다. 남편도 양심은 있어서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지만 막상 내가 말을 꺼내면 틀어막기 바쁘다. 자기가 반성은 할 수 있지만 내가 비난은 하면 안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투닥거리는 사이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인생에 있어서 부모가 되는 것 다음으로 큰 이벤트는 아무래도 조부모가 되는 일일 것이다. 부모가 될 때는 철만 없는 게 아니라 정신도 없었다. 어떻게 아이를 키웠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내 어머니는 뭘 기억해서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옆에서 도와줄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나는 도무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
멀리 사는 딸 부부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해줄 수 있는게 없으니 그저 응원만 할 뿐이다. 여기서 다시 돌아가면 입으로 응원만 할 수 있는 일에 가장 최적화 되어 있는 사람은 남편이다. 남편은 당신이 밤을 새워 우는 아이를 안고 있어야 할 필요도 없고 하루 종일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랠 필요도 없이 그저 사랑한다는 말만 하면 되는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마주한 남편은 아주 요란하게 사랑에 빠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영상을 보며 옹알거리는 손녀의 목소리를 듣고 어떻게 영상 통화를 한번이라도 더 해볼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나는 여행이나 다른 이유때문에 집을 비웠을 때 남편이 수시로 하는 전화가 부담스럽다. 그러잖아도 요즘 아이들은 전화 포비아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손녀가 보고 싶어 딸에게 전화하는 남편을 보면 고개를 흔들게 된다.
남편이 보기에 나는 너무 냉정하고 내가 보기에 남편은 너무 지근덕거린다. 나는 툴툴거리면서 남편에게 맞춰주지만 아기 보느라 정신 없는 딸이 남편의 감정 표현에 응하느라 좀 번거롭겠다 싶다. 그렇지만 세상에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또 너무 삭막한 일이니 남편이 드러내는 사랑은 그의 몫으로 참견하고 싶지 않다. 가끔은 그가 하자는대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 했을 때 상대방에게서 뜻밖의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너무 조심스러워서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말이다.
나는 자식이 하고 싶은대로 하게 놔두는 것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이고 남편은 자기 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옳고 어떤사람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씩 다를 뿐이다. 아마도 우리 두 사람이 서로 한발씩 양보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몸을 뒤집은 아기는 이제 대부분의 시간을 뒤집은 채로 팔다리를 파닥파닥 거린다. 응애라는 의성어는 주로 아기가 우는 소리를 나타내는데 우리 아기는 웃을 때 응애 소리를 낸다. 제 아빠가 얼굴이 바닥을 향하게 안고 허공에 흔들며 슈퍼맨 노래를 부르자 아기가 응애응애 하며 웃는다.
그 동영상을 몇번이고 돌려본 할아버지는 다음에 아기를 만나면 당신이 슈퍼맨 놀이를 해주겠다며 흔드는 흉내를 낸다. 그런 남편은 가끔씩 자기가 결혼해서 삼십 년을 살고 자식을 결혼 시키고 이렇게 예쁜 손녀를 앞에 두고 있는게 꿈같은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세상에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기에 평범한 할아버지가 된 것이 기꺼운 것이다. 사는 게 별거 아니고 이게 행복이라는 것을 깨우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