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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Dec 13. 2024

11. 웃음

지금까지 귀로 들을 수 있었던 소리 중 가장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 감사한 마음과 함께 안도감이 든다. 내가 훗날 레테의 강 앞에서 한 가지만 가지고 가고 싶은 기억을 선택하라면 그 소리를 고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음악에 감동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칭찬하는 말에 우쭐하기도 하지만 그 어떤 소리도 내가 지금 사랑하는 소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건 아기를 바라보고 웃는 딸 부부의 웃음이다.


그 소리를 처음 들은 건 아기에게 목튜브를 씌워놓고 둘이 웃는 소리였다. 아기는 태어나기 전에 이미 양수 속에 있었기 때문에 물속에서 마치 엄마 품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대중이 이용하는 수영장은 면역력이 약한 아기들에게 감염의 위험이 있으니 12개월 이후에나 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집에서 아기들이 물을 편안하게 즐겨보도록 만든 것이 목튜브였다. 호기심이 동한 딸이 그 목튜브를 아기에게 씌워 욕조에 띄워 놓았다. 아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욕조에 동동 떠 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다. 동영상 속에서 그런 아기를 보며 딸부부가 웃고 있었다.


물에서 노는 아기가 신기하기도 하고 아기자기한 육아가 즐겁기도 한 듯한 웃음이었다. 밤새 아기를 안고 서성이느라 정신이 몽롱한 상황이었음에도, 양쪽 집안 어른들의 도움 하나 없이 오로지 둘이서만 아기를 보느라 피곤에 지쳤음에도 젊은 부부의 웃음은 달보드레하게 들렸다.


동영상을 본 나의 동생이 조카 부부가 아기를 데리고 인형놀이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툴고 힘겹지만 그 순간의 웃음에는 힘겨운 일들은 증발시키고 기쁨만 담겼기에 이모가 보기에 인형놀이처럼 보인 것이다.


이제 백일을 넘긴 아기는 뒤집기가 하고 싶다. 온몸에 힘을 주고 하체를 뒤집었지만 팔을 빼지 못해 뒤집기에 실패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다시 한번 시도하지만 역시 실패다. 기를 모으듯 양손을 모으고 쉬더니 지치지도 않고 몸을 비틀며 힘을 주었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역시 아직은 이른 모양이다.


그런 아기의 모습을 본 어른들의 몸에 더 힘이 들어간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응원의 함성을 보내지만 아기는 실패하고 화가 나는지 빽 소리 지른다. 오늘은 뒤집을 것만 같은 마음에 아기 엄마의 녹화가 길어졌다. 몇 번이고 시도하는 아기의 역사적인 순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딸이 뒤집기를 한 순간 그 벅찬 감격을)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아쉽게 실패한 것이다.


영상을 보면서 나는 몇 번이고 반복되는 뒤집기 시도를 바라보는 딸 부부의 웃음에 귀를 기울였다. 뒤집으려 애쓰는 아기가 몹시도 귀엽고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아기의 뒤집기를 응원하면서 키득거리는 초보 부모의 웃음에는 육아의 고단함을 날리는 행복이 묻어 있었다.


맞벌이 부부에게 육아라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알기에 함부로 출산을 권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딸 부부가 딩크를 선언했다는 지인은 딸의 선택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육아의 험난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자기는 손자를 바라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기를 낳아본 사람들은 안다. 그 험난함을 모두 날려버리고 웃을 수 있는 순간이 더 많다는 것을 말이다.


동영상 속에서 딸 부부가 웃는 소리를 들으면 힘겨운 육아의 와중에 맞이하게 되는 즐거운 순간임을 알기에 안도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아기가 힘겹게 몸을 돌리려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며 같이 응원하고 행복해하는 게 느껴져서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기 또한 엄마 아빠의 웃음이 듣기 좋은지 몸을 돌리다 실패하고 제자리로 돌아오자 고개를 돌리며 생긋 웃는다.  


어미가 새끼를 오래 보살펴야 하는 동물일수록 새끼가 더 귀엽게 진화했다고 한다. 그래서 포유류의 새끼는 귀엽고 그중 가장 오래 키워야 하는 인간의 아기는 더 귀엽다. 그러니 어느 누가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기를 보면 다들 무장해제되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자식이 속을 썩여 울상인 부모들도 아기 때문에 웃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효도는 네 살 때까지 다 한 거라고들 말하고는 한다. 아기 시절에는 존재 자체로 그저 예쁘고 효도를 하는 것이다. 그 시기를 보내고 있는 딸 부부가 순간순간을 즐기며 자주 웃을 수 있기를 빌어본다. 영상에 담긴 웃음은 다시 못 올 소중한 순간의 징표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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