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백일이 되었다. 아기 엄마, 아빠 입장에서는 드디어 백일이 되었지만 주변인인 할머니,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눈이 동그래져서 벌써 백일이라니 감탄하게 되었다. 내가 딸을 키우던 시절 백일까지 아기를 업고 벽에 기대서 조는 날이 수없이 많았다. 백일이 돼서야 겨우 밤낮을 구분하게 된 딸 덕분에 확실하게 백일의 기적을 체험했다.
하지만 영특한 우리 아기는(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겸손은 힘들다. ) 오십일쯤 밤낮을 구분하기 시작하며 통잠을 자서 딸 부부의 밤 시간을 수월하게 해 주었다. 아무리 손자가 예뻐도 내 자식 힘들게 하면 밉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다. 그러니 잘 자는 아기는 더 예쁜 것이다.
백일은 화요일이지만 주말에 만나야 하니 대전에서 일요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딸부부는 토요일에 결혼식이 있어 금요일 오후에 대전으로 향했다. 아기는 처음 카시트를 타고 장거리를 떠나는 길이니 다들 긴장했다. 지인이 아이 키울 때 매일 차에 태워 동네 한 바퀴를 돌면 아이가 잘 잤다고 하는 말에 생각해 보니 차에 탄 상태가 엄마 뱃속에서 느끼던 진동과 유사하겠다 싶었다. 아기는 두 시간 반의 첫 여행을 푹 자며 잘 도착했다.
딸은 대전에 있는 아이 고모에게 아기를 맡겨놓고 결혼식에 갈 예정이라고 했다. 아직 아기가 없는 고모는 혼자 시터 노릇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우니 시부모님이 와서 네 명의 어른이 아기 하나에 매달리는 토요일이었다. 그동안 보호 차원에서 백일해 예방 주사를 맞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기를 노출시키지 않았는데 백일을 기점으로 해제되는 날이었다.
아기는 갑작스러운 변화에도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어른들을 접대하며 방긋방긋 웃고 하루를 잘 보냈다고 한다. 엄마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고모부까지 많은 어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아기에게는 다소 피곤한 여정이 된 모양이었다. 예전에 어른들이 아기 너무 웃기면 자다가 운다고 적당히 데리로 놀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시부모님이 귀가하고 나서 엄마 아빠와 남은 아기는 진정하지 못하고 짜증을 내며 울기 시작했다. 놀란 아기 부모는 응급실을 가야 하는 건 아닐까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밤을 보낸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예약한 식당으로 한 짐을 잔뜩 짊어지고 나타난 딸 부부 품에 안긴 아기는 기분이 좋아져서 또 방긋 웃으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빠가 집에서 안경을 끼고 있어서 안경 낀 남자한테 인심이 후하다는. 할아버지도 안경을 꼈으니 플러스 일 점쯤 얻은 모양이다.)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기까지 일곱 명의 식사 자리였다. 아기는 하나인데 아기를 안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어른은 네 명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정된 자원인 아기를 놓고 어른들의 눈치 게임이 시작되었다.
딸은 전날 아기를 실컷 안아본 시부모님보다는 이제 막 만난 친정 부모에게 아이를 안기고 싶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는 언제 봐도 또 안고 싶은 사랑스러운 존재다. 중간에서 아기 부모는 단호했다. 출발 전에 우유를 먹고 왔으니 아기는 식사하는 동안 좀 자야 한다고. 그래야 나중에 어른들과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어른 넷이 모두 시무룩하다. 그럼에도 딸부부는 구석에 아기를 뉘어 보듬고 재웠다. 딸은 어떤 타인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웃으며 정확하게 자기 의견을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무리 어른들의 눈치 싸움이 보여도 아기를 재워야 할 시간에는 재운다.
아기 엄마의 의도대로 따뜻한 일식집 온돌바닥에서 아기는 새근새근 잘도 잤다. 덕분에 아기 엄마 아빠도 밥을 편안하게 먹고 이제 조금 덜 어색한 사돈들도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식사가 끝나도록 아기가 깨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밥도 다 먹었는데 아기는 자고 이제 우리는 뭐 하지?'라는 말이 나왔다. 사돈끼리 대화가 길어지면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와도 집에 와서 복기하고 부끄러워지는 일이 종종 있는데 사돈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아무리 상견례 때의 어색함은 사라졌다고 해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양쪽 집안은 세상에서 가장 체면을 지켜야 하는 조심스러운 상대이다. 자칫 실수하면 내 자식이 책 잡힐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해 보라. 이건 정말 아찔한 일이다.
조바심이 날 때 즈음, 이제 그만 자리를 파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할 때 딸이 아기를 살살 깨워보았다. 실컷 자고 기분 좋은 아기가 낑소리를 내며 깬다. 어른 네 명의 시선이 일제히 아기에게 쏠린다. 아기가 일어날 듯싶자 아기 엄마가 주도권을 빼앗기기 전에 재빨리 안아 들고 우리 쪽으로 온다. 자칫 틈을 놓치면 곤란한 듯 움직인다.
나는 그 분위기가 재미있어 피식 웃으며 아기를 남편에게 양보한다. 삼십 년 전에 안아보고 두 달 전에 처음 아기를 안아본 남편이 어색하다. 어쩔 줄 모르지만 사랑은 넘치는 할아버지 품에서 아기가 웃는다. 많은 사랑 속에 백일을 맞은 아기의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 머릿속 반쯤을 차지하고 있는 아기 생각 때문에 스마트폰은 알아서 아기 동영상을 내민다. 얼마 전 쇼츠에서 아기를 입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왔다. 아기라면 응당 배고파도 울고, 기저귀가 젖어도 울고 심심해도 우는 것이 정상인데 입양한 아기가 울지를 않았다고 한다. 너무 이상해서 데려온 기관에 문의를 하니 돌아온 대답은 너무 슬펐다.
'기관의 아기들은 울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거의 울지 않습니다.' 울어도 안아줄 사람이 없는 아기라니 심장이 저릿하다. 그 아기도 새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드디어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울음이라는 것에 그런 의미가 있는 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행복한 아기는 울기도 잘한다.
조촐한 백일잔치를 마치고 아기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소근육 발달이 빠른 아기는 주먹콩을 한 것처럼 손을 잘 쓴다. 벌써 젖병을 제 손으로 쥐고 먹는 자세가 제법이다. 오래 버티지는 못하지만 내 밥은 내가 먹는다는 듯 젖병을 쥐고 있다. 아기는 그렇게 무럭무럭 자란다.
우리 아기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기들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고 울며 자라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