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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Nov 22. 2024

8. 장래 희망

집안에 경사가 났다. 공부하기 위해 태어난 듯 공부에 진심인 조카가 시작한 지 삼 년도 되지 않아 5급 공무원 공채 시험에 합격했다. 나를 포함한 이모들은 조카가 어릴 때부터 공부로 끝장을 낼 줄 알고 있었다. 소근육 발달이 느려서 표현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절대음감을 가진 조카는 수업을 들었다 하면 그 내용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그 아이가 크는 과정을 보면서 학습 능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조카의 시험 합격소식을 전하자 딸아이가 손녀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린다.


"너는 언제 대학갈래?"


톡으로 올라온 그 문구를 보고 나와 남편이 키득거리며 웃고 말았다. 딸은 이제 공부로 성취한 사촌 동생의 소식을 듣고 자기가 욕심을 내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욕심을 거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내가 신생아의 다리를 주무르며 대학은 서울로 가야 한다고 했던 것과 비슷한 말이며, 과거는 없고 미래만 있는 아기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기대해 보는 것이기도 하다.


아기에게 걸어보는 기대와 달리 어른들은 소박한 발전에 열광한다. 딸은 아기를 데리고 개인기를 개발하고 흐뭇해서 동영상을 찍었다. 동영상 속에 딸은 아기의 재롱이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엄마였다.


아빠가 아기를 안고 거울 앞에 서자 아기의 시선이 거울로 향한다. 거울 속에 보이는 아빠의 얼굴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 얼굴 때문인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던 아기는 곧 입을 벌리고 해죽 웃는다. 웃는 아기를 향해 엄마가 말한다.


'OO아, 주먹 콩 해봐. 주먹 콩!'


주먹 콩이 무엇일까? 동영상을 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눈을 반짝인다. 아기는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주먹으로 거울을 콩 친다. 그런 아기를 본 엄마의 입에서 웃음이 터진다. 아기는 엄마의 '주먹 콩'에 다시 한번 그 오동통한 주먹으로 거울을 콩 친다.


이제 두 달 된 아기가 엄마의 주먹 콩을 알아듣고 거울을 치는 모습에 어른들은 '우리 아기 천재'를 외친다. 너무 익숙한 우리 아기 천재는 앞으로 뒤집기를 하고 걷고 동영상을 보며 익힌 알파벳을 읽을 때마다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천재는 점차 정말 자기가 잘하는 것을 찾아갈 것이다.


우리 조카처럼 공부를 잘할 수도 있고 아기의 고모처럼 피아노를 칠 수도 있으며 아빠처럼 축구(?)를 잘할 수도 있고 엄마처럼 승부욕 강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되건 아기가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할머니다.


딸아이가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고 가족들이 모여 축하하는 자리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딸이 아직 미정이라고 했다. 선배가 자격증을 가지고 로스쿨을 졸업해 전문 변호사를 하는 과정을 보고 로스쿨에 가고 싶은 마음을 비추기도 했다. 그때 치매에 걸리기 전 사려 깊었던 예전의 친정 엄마가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을 걸 해. 그럼 돼."


나는 가족 모임의 소란스러운 와중에 딸에게 그 말을 하는 엄마의 마음이 참으로 좋았다. 손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바라는 그 마음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넷플리스 드라마 '지옥'에서도 지옥에 갔다 다시 부활한 박정자가 민 변호사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곧 세상이 멸망할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세상이 곧 멸망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죽는다. 지옥의 연상호 감독은 어쩌면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니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이다. 우리 엄마처럼 할머니가 된 나는 갓 태어난 아기가 장래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요즘 나의 장래희망은? 우리 아기의 등하원 도우미다. 골프를 치는 노후는 돈이 있고, 친구가 있고, 건강이 있어서 완벽한 노후라는 말이 있다. 내가 꿈꾸는 등하원 도우미야 말로 건강이 있고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골프를 치는 것보다 우리 아기 등하원 도우미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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