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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Nov 15. 2024

7. 웃음과 눈물이 겹치는 시간



동영상 속 아기가 웃었다. 배냇짓이 아니고 진짜 기분이 좋아서 웃는 웃음이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두 달이 된 날이었다.


아빠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옹알이를 하던 아기가 아빠의 재롱에 눈을 맞췄다. 아기는 이제 정확하게 시선을 모아 아빠를 보고 있었다. 아빠를 향한 눈빛에는 아기가 입은 옷처럼 몽실몽실한 분홍빛 솜사탕의 달콤함이 담겨 있었다.


'내 앞에서 혀 짧은 소리를 하는 이 커다란 존재는 언제나 나를 보살펴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이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라고 눈이 말하고 있었다. 아기는 그 눈빛으로 혀를 내밀더니 입을 벌리고 눈이 가늘어지도록 크게 웃었다.


아기의 웃음은 보는 사람들을 모두 따라 웃게 만든다. 지금까지 이 나이가 되도록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손녀의 웃음 앞에서 알았다.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동영상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아기를 따라 한다. 아기가 혀를 내밀면 나도 혀를 내밀고 싶고  아기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는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표정이 아기를 따라 한다는 걸 느끼면서 오래 산 부부의 표정이 닮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서로를 카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기가 웃는 모습의 동영상을 친정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인지 장애에서 치매로 진행되고 있는 엄마는 세상 시름을 잊는 대신 그 자리를 사랑으로 채워가고 있다. 이제 엄마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는 없지만 사랑은 여전한 엄마다. 그런 엄마는 아기가 웃는 동영상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행복해하신다.


그리고 당신 딸도 그런 아기였음을 일깨워주신다.


"네가 어릴 때 얼마나 예뻤는지 알아? 내가 장사하느라 너를 멸치 바구니에 놔두면(신혼시절 엄마는 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하셨다. 아버지는 리어카에 건어물을 가지고 나가서 팔러 다니고 엄마는 가게를 지켰다.) 너는 멸치를 주워 먹고 컥컥거렸어. 그때 내가 너를 안고 뽀뽀를 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예쁘냐고 물어보더라고. 예뻤지. 정말 예뻤어."


증손녀의 모습을 본 엄마는 당신 딸의 아기 시절을 떠올리며 예뻤다는 말을 반복하신다. 내가 그렇게 예쁜 아기는 아니었다는 걸 아는 나는 그냥 웃으며 넘겼다.


"에이, 엄마, 큰 엄마가 나 못생겼다고 자기 딸들은 이렇게 생긴 애 없다고 해서 엄마가 엄청 화냈잖아. 두고두고 지금은 그 딸들보다 네가 훨씬 예쁘다며 씩씩거렸잖아."


내 말에 엄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기인 내가 예뻤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냥 그렇게 넘어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치매 걸린 엄마의 말이 잔잔했던 내 마음에 너울을 일으켰다. 너도 한때는 그렇게 소중하고 예쁜 아기였음을 상기시켜 주는 엄마의 말이 자꾸만 떠오르면서 한번 흐트러진 감정이 조절되지 않는다.


내가 예쁜 아기였을 때 엄마는 젊디 젊은 스물한 살 아기엄마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엉겁결에 결혼이라는 걸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아직 솜털이 보송한 앳된 이십 대였다. 그랬던 엄마는 이후로도 세명의 아이를 너 낳았고 아이 키우는 게 힘에 부쳐 빨리 늙기를 소망했다고 했다.


어느 날 엄마는 쓸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빨리 자식들이 곁을 떠날 줄 알았으면 빨리 늙기를 바라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엄마의 소망대로 이제 그분은 늙었고 치매까지 걸렸다. 나는  흐르는 시간 속에 스러지고 있는 엄마의 정신을 부여잡고 싶지만 무력함에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아기의 웃음은 눈물로 이어졌다. 그 웃음과 눈물 사이의 간격은 내 나이만큼이지만 우리는 그 공간을 동시에 살고 있다. 덕분에 나는 예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넓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하고 있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 청소년이 될 것이고 부모님은 더욱 노쇠해서 돌아가실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일이 새삼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이제 내가 직접 겪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리라.


이제야 겨우 삶의 질감을 이토록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웃는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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