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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예진 Dec 20. 2024

12. 육아휴직

'라떼'는 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써야 할 때도 있다. 나는 출산 휴가 세 달을 보내고 출근하기로 했던 시점에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결국 출산휴가만 챙겨 받고 먹튀 한 꼴이 되었다. 사기업을 다니던 친구들은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인 친구들은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어려운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아이 때문에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는 친구들의 생활이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워야 했던 생활이나 당시 우리들은 전쟁 같은 삼십 대를 보냈다. 맞벌이를 해야 겨우 집을 사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게 현실인데 그 짐은 모두 여자들에게 지워져서 가사노동도 육아도 혼자 떠맡으며 직장을 다녀야 했다. 


시간이 흘러 동생들이 출산을 하는 시기가 되어도 별로 변한 게 없었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건 오롯이 여자들의 몫처럼 여겨졌고 이미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나는 안쓰러운 눈길로 동생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딸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과연 우리 딸이 아기 엄마가 되었을 때는 어떤 세상이 올까 싶었다. 나의 소망은 내 딸은 걱정 없이 직장을 다니는 거였으니 주변 친구들과 손자 공동육아를 꿈꾸기도 했다. 조합을 결성해 공동으로 손자를 보자는 이야기를 제법 디테일하게 하며 행복해하기도 했다. 정말 근사해 보이는 꿈이었다. 물론 지금 그 친구들의 딸들은 아직 결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내 딸만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나는 아기와 300킬로 미터가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딸은 작년 7월 휴가를 몰아서 쓰고 8월부터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이후에는 육아 휴직으로 지금까지 집에서 아기를 돌보고 있다. 사위는 출산 당시와 딸이 산후 도우미의 도움이 끝난 시점으로 나누어 출산휴가를 썼다. 


삼십 년 동안 출산율이 무섭게 떨어지자 그나마 제도가 많이 좋아졌다. 아빠도 출산 휴가를 짧게나마 쓸 수 있고 유급 육아 휴직 기간도 일 년이 넘게 책정되었다. 


며칠 전 아기가 114일 되는 날 드디어 낑낑거리며 용만 쓰던 뒤집기를 성공했다. 레슬링 하듯 몸을 비틀며 소리를 지르더니 마침내 뒤집었고 그런 자기가 기특한 듯 배시시 웃는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할어버지인 남편은 그런 결정적인 순간을 딸 혼자서 보게 된 게 영 아쉬운 모양이었다.


아기가 엄마보다 더 좋아하는 아빠가 그 순간을 같이 못한 게 안타까워 'O서방은 언제 들어오지? 얼른 퇴근해서 뒤집은 아기 모습을 보고 싶을 텐데.'를 반복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날 아기 아빠는 정시 퇴근도 하지 못하고 많이 늦는다고 했다. 


아기의 성장은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 어제 뒤집기에 성공한 아기는 오늘 배를 밀고 싶어 또 끙끙거린다. 아기는 봄비 맞은 새순처럼 쑥쑥 자라서 다시 못 볼 소중한 순간들을 빠르게 보내고 있다. 딸 부부는 그런 소중한 순간을 온전히 세 사람이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딸은 내년 4월에 복직하고 사위는 1월부터 휴직에 들어가 삼 개월은 세 식구가 같이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 딸과 사위가 모두 육아 휴직을 쓴다고 했을 때는 약간 의아스러웠다. 둘이 따로 쓰면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을 늦추고 엄마, 아빠랑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어째서 공동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기가 뒤집은 모습을 아빠가 보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하는 남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이 소중한 순간 온전히 세 사람이 같이 시간을 보내는 세 달은 일생에 다시 올 수 없는 좋은 추억이 되겠구나 싶었다.


아기 아빠나 엄마나 그동안 한 번도 쉼 없이 달려온 청춘이다. 취업 준비하느라 바빴고 취업해서 결혼하느라 정신없었으며 아기를 낳자 그야말로 눈이 핑핑 도는 신생아 육아가 시작되었다. 사위는 출근해서 일하랴 퇴근해서 육아하고 있는 아내 뒤치다꺼리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와서 보니 그런 두 사람이 갖기로 한 삼 개월의 시간은 정말 잘했다 싶다.  


둘이 같이 해도 육아는 힘들 것이다. 결코 집에서 논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세 식구가 보낼 겨울이 기대된다. 올 겨울 곰돌이 같이 생긴 우주복을 입은 아기와 엄마, 아빠가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빌어본다. 그리고 봄이 오면 온전히 혼자 아기를 돌보게 될 아기 아빠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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