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가서 이틀째 들어오지 않는 칠월이를 찾으러 나선 채영이 우혁의 집 앞에 섰다.
“칠월아! 칠월아! 너 혹시 여기 있니?”
칠월이가 가끔 집을 나가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이틀씩 들어오지 않는 날은 없었던 터라 신경이 쓰인 채영이 애타게 이름을 불렀다. 마당에서 칠월이 특유의 아웅 아웅 하는 소리가 들리자 대뜸 문을 두드렸다.
“칠월이 너 여기 있구나? 칠월아!”
채영이 호들갑을 떨자 문이 빼꼼히 열리고 구 작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채영 씨?”
“우리 칠월이 여기 있어요?”
그때 구 작가의 품에 안겨있던 칠월이가 재빨리 뛰어내려 채영에게 달려들었다.
“칠월이 너 이 녀석 왜 집에 안 들어오고 여기 있어?”
채영이 호통을 치자 칠월이는 억울한 듯 아웅 아웅 소리를 내며 채영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서아의 부케를 받은 구 작가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 채영이 구 작가를 노려보며 칠월이에게 화를 낸다.
“저는 칠월이가 서아 씨 고양이로 알고 있어서 당연히 집이 여기인 줄 알았어요.”
채영은 칠월이를 품에 안고 구 작가를 노려보았다.
“서아가 키우던 고양이는 맞는데 파리로 가면서 나한테 맡겨놨거든요. 목에 루이비똥 방울 건거 보면 몰라요? 나나 되니까 칠월이 목이 이런 거 걸어주지 누가 해주겠어요?”
두 사람이 뭘 하는 건가 싶어 다가온 민석이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고 한마디 던졌다.
“채영아, 걔 반은 여기 와서 사는데 뭘 그렇게 야단이야. 들어와서 차나 마시고 가라. 우혁이가 지금 커피 내리고 있다.”
“우혁 오빠 왔어?”
민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채영은 두 사람을 무시한 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가다 생각하니 뭔가 이상한지 갑자기 멈춰 선 그녀가 돌아서서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구 작가가 왜 여기 와 있어? 뭐야?”
민석이 고개를 으쓱하더니 피식 웃었다.
“우리 친구거든.”
“친구?”
“응, 친구.”
“애인이 아니고 친구?”
“그래 친구!”
“칫, 뭐야 장난하나. 친구는 무슨 친구야.”
채영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남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한옥마을에서 발목을 삔 구선아는 병원과 한의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민석은 그런 선아에게 안부를 묻고 뼈에 좋다는 음식을 사주기도 했다.
선아는 민석이 자신에게 호감이 있지만 연애를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먼저 친구를 제안했다.
‘뭐 꼭 관계에 이름을 정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이러는 거 썸은 아닌 거 같아서 그냥 친구 하는 거 어때요?’
잠시 고민하던 민석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훨씬 마음 편하게 선아 씨를 좋아해도 되겠네! 친구로.’
선아가 손가락을 튕기며 오케이를 외쳤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채영이 보기에는 우습기만 한 친구 놀이처럼 보였지만 두 사람은 약간의 긴장감을 가진 친구 사이가 꽤 괜찮았다. 물론 그러다 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오빠, 우혁 오빠! 서아는 어쩌고 혼자 온 거야? 두 사람 다시 합치는 거 아니야?”
채영이 신발도 벗지 않고 다다다다 거리며 질문을 쏟아냈다. 우혁이 미간을 찡그리며 그런 채영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와인빛이 도는 핑크로 물들인 채영의 모습은 예전보다 더 철없어 보였다.
“안 합쳐. 그럴 일 없어.”
“왜? 두 사람 아직 서로 좋아하는 데 왜 안 합쳐?”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서 어쩔 수 없다.”
우혁이 우아하게 생긴 흰색 머그잔에 커피를 따라 채영에게 넘겼다. 채영은 품에 안고 있던 칠월이를 내려놓고 커피를 받아들었다.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복잡해?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 좋으면 사귀고 같이 사는 거지. 좋지만 어쩔 수 없다는 사람이나…….”
채영은 같이 들어오는 민석과 선아를 향해 입을 비죽대며 말끝을 흐렸다.
“민석아, 나 당분간 네가 가져오는 일은 뭐든지 한다. 나를 잠시도 쉴 틈 없이 빡세게 돌려줘.”
“얼마나 빡세게?”
민석의 질문에 우혁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답했다.
“서아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하아, 그게 가당키나 하냐? 내가 사랑꾼이라 하는 말인데 아무리 몸을 혹사시켜도 소용없어. 그게 가능했으
면 내가 일을 했지 여기 와서 그렇게 난동을 부렸겠냐?”
천연덕스러운 채영의 말에 세 사람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웃자고 하는 말이야 그냥 웃어도 돼. 물론 우혁 오빠는 웃음이 나오지 않겠지만.”
그때 채영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채영은 핸드폰에 뜬 이름을 보더니 얼굴이 화사하게 펴져 자리에서 발딱 일어섰다.
“우리 민 일어났구나? 나느은 칠월이가 없어져서 찾으러 나왔다가 우혁 오빠네 집에서 커피 마시고 있어염.”
우혁이 뜨악한 표정으로 채영을 바라봤다. 민석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강민의 이름을 속삭였다.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연기자인 강민의 이름을 들은 우혁이 눈썹을 들어 올리자 채영이 돌아서서 턱을 내밀며 으스댔다.
“민, 질투하는구나. 아잉. 장 대표랑 달콤한 너의 맛 구 작가도 같이 있어. 걱정하지 마. 민이 있는데 내가 무슨 우혁 오빠 같은 사람한테 신경 쓰겠어.”
채영의 코맹맹이 소리에 진저리가 난 우혁이 어서 나가라고 손짓했다. 채영은 그런 우혁에게 혀를 쏙 내밀고 돌아섰다. 칠월이가 재빨리 채영을 따라나서며 아웅 거렸다.
우혁은 그런 채영이 부러웠다. 자신도 채영처럼 쉽게 사랑에 빠지고 쉽게 잊어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쟤 저러는 것도 참 능력이다.”
턱을 고이고 채영의 뒷모습을 보던 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 능력이지. 능력이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