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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빨간색 생일

by 은예진

차에서 내린 서아가 환하게 불이 켜진 루프탑 카페를 올려다보았다. 채영의 생일을 루프탑 카페에서 한다고 할 때 다소 의외였다.


‘호텔도 아니고 루프탑 카페?’


막상 카페를 보자 호텔보다 더 근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삼 층짜리 건물 외벽에는 채영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에 생일 축하 글귀를 프린트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현수막을 둘러싼 오색 불빛들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어 반짝이게 만들었다.


“생일파티 한 번 요란하게 하는구나.”


우혁이 차에서 내리며 투덜댔다. 채영은 보름 전부터 자신의 생일 파티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두 사람을 초대했다.


‘내가 지인들만 불렀는데도 대한민국 셀럽은 다 모이네! 내 생일파티에 초대 못 받은 사람들은 너무 서운하겠는데.’

‘아무리 우리가 자뻑에 사는 연예인이라지만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우혁의 야유에 채영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니거든. 정말 섭섭하다는 전화도 받았거든. 내 생일이 무슨 시상식도 아니고 죄다 부를 수는 없으니 서운해도 어쩔 수 없지.’


채영은 우혁이 아무리 약을 올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투로 자기 생일 파티 준비에 열을 올렸다.

드레스코드는 ‘정열적인 레드의 화려함’이었다. 단순히 레드가 아니라 최대한 화려한 레드로 차려입고 오라는 채영의 주문이었다. 우혁은 드레스코드를 핑계로 서아에게 탱고 댄서에게나 어울릴법한 붉은색 드레스를 사주었다.


어깨가 드러나고 몸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드레스는 무릎 아래에서 넓게 펼쳐져 걸을 때마다 커다란 동백꽃이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서아는 어색하다며 거울 앞에서 고민했지만 우혁이 정열적인 레드의 화려함을 반복하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입을 수밖에 없었다.


파티장에 들어선 서아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고 싱긋 웃으며 우혁을 올려다보았다.


“오빠 말을 듣기 잘했네. 하마터면 혼자 너무 얌전해서 눈에 띌 뻔했어.”

“내가 뭐랬니. 채영이가 화려하게를 주문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신이 나서 꾸며댔겠냐.”


온통 레드 천지였다. 장난스러운 페이크 비키니 무늬가 그려진 옷부터 공주풍 드레스까지 카페 안에는 온통 레드로 물들어 있었다. 남자들은 가볍게 레드 넥타이나 스카프, 재킷이나 스니커즈 정도로 맞췄지만 여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레드로 도배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서아야, 우혁 오빠 어서 와!”


정작 채영은 흰색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붉은 물결 속에 홀로 심플한 흰색드레스를 입은 채영은 단연코 주인공다워 보였다.


“생일 축하해요. 언니!”


서아가 채영을 껴안자 그녀는 손가락으로 가운데 테이블을 차지한 케이크를 가리켰다.


“서아야, 케이크 고마워. 너무 예뻐서 저걸 어떻게 먹을까 싶어.”


서아가 채영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보낸 삼 단짜리 케이크에 커다란 초가 꽂혀 있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언니 생일 케이크는 내가 만든다.”


서아가 한쪽 눈을 찡긋 거리며 호기롭게 선언하자 채영이 손뼉을 치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빨간색 점퍼 슈트를 멋스럽게 차려입은 선아와 붉은색 나비넥타이를 맨 민석이 들어왔다. 두 사람이 팔짱 낀 것을 본 채영이 입꼬리를 음흉하게 올렸다.


“두 사람 드디어 친구니 뭐니 하는 헛소리를 집어치웠구나?”


선아가 민망한 듯 시선을 내리깔자 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선아의 어깨를 토닥였다.


“알면서 뭘 물어보냐. 그냥 좀 모른 척하지.”

“내가 구작한테 뺏긴 게 있는데 모른 척할 수 없지.”


구작은 채영이 환기시켜준 부케가 생각나자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렇구나. 내가 괜히 부케를 받은 게 아니구나.”

“어머? 몰랐단 말이야? 구작 부케 받은 값을 해야 할 텐데. 이렇게 됐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 들리는 건가?”


채영의 말에 선아와 민석은 딴전을 피우며 재빨리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진행을 맡은 아나운서 출신 MC가 오늘의 주인공은 어서 무대로 올라오라며 불렀다. 채영은 손끝으로 드레스 자락을 들고 서강민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채영이 촛불을 끄자 허공에서 펄럭이며 반짝이 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자기 생일을 저렇게 드러내놓고 성대하게 축하하기도 쉽지 않은 일 같아.”


서아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우혁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내년에 네 생일은 이거보다 더 거창하게 하자.”


화들짝 놀란 서아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만 해도 민망하다. 나는 우리 둘이 조촐하게 보내는 게 최고야.”

“그래? 나는 또 부러운 줄 알았지.”

“천만에. 채영 언니가 이렇게 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만 그건 언제까지는 채영 언니라서 가능한 이야기지.”


그때 술잔을 든 한 무리의 영화 관계자들이 몰려와 우혁을 에워쌌다. 우혁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눈치였다. 우혁은 서아를 데려가고 싶어 했지만 서아는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느니 혼자 있는 게 낫겠다 싶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장 대표님이랑 구작 찾아볼 테니 오빠 다녀와.”

“알았어. 금방 올게.”


우혁이 자리를 비운 사이 서아는 혼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민석과 선아는 위층으로 올라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채영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지 연신 웃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왜 혼자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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