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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도움이 필요합니다

by 은예진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우혁은 어이가 없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남들 다 보이는 곳에서 서아랑 그렇게까지 했는데 어떻게 기사가 안 나올 수가 있어? 이게 말이 되냐고?”


방방 뛰는 우혁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민석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긁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민석은 자신이 기사를 막았다는 것을 들킬까 봐 얼굴 근육에 힘을 주고 있었다.


“저기 말이야. 너랑 서아 씨가 재결합하는 거 기사보다 더 확실하게 발표하는 방법이 있는데.”

“무슨 방법? 기자회견?”

“그게 말이야. 오해의 소지가 좀 있기는 한데…….”

“뭔데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달콤한 너의 맛 시즌 투에 출연해서 재결합 소식을 알리면 어떨까 싶거든.”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서아가 그만 ‘풉’ 소리를 내며 뿜고 말았다.


“야, 너 그런 식으로 사심을 채우려고 하면 곤란하다.”


민석은 사심이라는 말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가고 싶지 않으면 나가지 않아도 상관없어. 내가 강요할 마음은 없어. 그래도 생각을 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거든.”


민석이 어쩔 줄 몰라하는 게 재미있는 우혁이 싱글싱글 웃으며 어떻게 하면 민석을 골릴까 궁리하는 눈치였다. 그때 자기가 뿜은 커피를 닦던 서아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우혁을 불렀다.


“그런데 오빠, 달콤을 잘 이용하면 차현준이 가진 동영상을 쓸모없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어떻게요?”


우혁과 민석이 동시에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빠가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면 가능한 일인데.”


서아가 망설이듯 입을 열자 우혁이 먼저 눈치를 챘다. 우혁은 입을 꽉 다물고 팔짱을 낀 채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달콤에서 우혁의 입으로 직접 동영상의 존재를 언급하자 이 말이에요?”


민석의 질문에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처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차현준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나타났잖아요. 아무리 차현준을 막아도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세상에 알려질 수밖에 없다고 봐요. 차라리 오빠 입으로 직접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나은 일 아닌가 싶어요.”


우혁은 대답하지 못하고 눈만 지그시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민석은 여기서 자신이 끼어드는 것은 우혁 말마따나 사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우혁이 눈을 뜨고 서아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런 일을 했다고 고백하면 네가 부끄럽지 않을까?”


서아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런 일을 겪고도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오빠가 자랑스러워.”

“정말?”

“당연하지.”


우혁은 서아를 향하던 시선을 민석에게 돌리며 말했다.


“민석아, 너는 서아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지금으로서는 그게 차현준을 무력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우혁과 서아는 그렇게 달콤한 너의 맛 시즌 2에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소문으로만 돌던 두 사람의 재결합 소식도 달콤한 너의 맛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가닥을 지었다. 덕분에 달콤 팀에서 구 작가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촬영 첫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두 사람은 마당에 있는 모양 좋은 주목 나무를 골라 장식을 시작했다. 서아가 직접 만든 진저 쿠키를 달고 꼭대기에 별도 올렸다. 장식이 끝나고 나무 앞에 선 두 사람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시즌 1을 찍고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자 카메라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는 것이 쉽지 않았다.


우혁은 카메라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서아의 손을 꼭 잡은 채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달콤한 너의 맛 은강 커플의 강우혁입니다.”


서아가 고개를 들지 못하자 우혁이 옆구리를 팔꿈치로 슬쩍 쳤다. 서아는 부끄러운 듯 카메라에 제대로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은서아입니다.”


서아가 입을 가리며 웃자 우혁이 손을 흔들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이혼 소식으로 연예 뉴스난을 장식했던 은강 커플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이 커플이 이혼했다가 다시 재결합했을지 궁금하시지요? 앞으로 달콤한 너의 맛을 보시면 그 이유를 아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우혁이 던진 낚싯줄에 시청자들이 줄줄이 낚여 들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예고편으로 나가자 본방 시청률이 시즌 1을 넘어서는 십 프로 대가 나왔다.


우혁과 서아는 비교적 담담하게 일상생활 속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에 대해 풀어냈다. 우혁이 전 소속사에서 대표인 우명진에게 얼마나 많은 폭력에 시달렸는지 이야기할 때 서아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목을 껴안았다.


서아의 눈물과 함께 시청률은 솟구치고 검색란에 우명진의 이름이 올랐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 회에 드디어 차현준과 동영상에 대해서 고백했다. 출소한 차현준이 다시 동영상을 들고 와 서아를 협박했다는 말에 시청자들이 분노해 차현준을 공격했다. 재기를 노리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던 차현준은 모든 SNS 계정을 폐쇄했다.


“혹시라도 제가 학대당하던 시절 찍힌 동영상이 배포된다면 여러분이 막아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다시는 없어야 할 일이 다시 재현되는 일 없도록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혁은 카메라를 향해 진정성 넘치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그 호소를 본 차현준은 결국 목에 걸고 있던 USB를 꺼내서 발로 밟았다. 공연히 술김에 인터넷에 올리기라도 했다가는 더 큰 문제가 생길 게 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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