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들짝 놀란 서아가 고개를 돌려 옆 사람을 바라보았다. 가수 박유진이 팔짱을 끼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생긴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시니컬한 성격으로 유명한 그는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우습다는 듯 지켜보았다.
“어쩌다 보니…….”
“드레스가 잘 어울리십니다. 부암동 골짜기에서 디저트나 만들고 계시기에는 아까워요.”
“네?”
서아는 박유진이 자신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당황스러워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유진은 몸을 돌리더니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아시겠지만 박유진이라고 합니다. 저 서아 씨가 가로수길 천사로 등극했을 때부터 팬이었습니다.”
“박유진 씨가 제 팬이라고요? 왜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서아가 한 말은 결국 ‘왜요?’였다. 박유진은 당황하는 서아가 재미있다는 듯 싱글거리고 웃었다.
“서아 씨 모르는구나. 서아 씨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에요. 서아 씨를 보고 있으면 나도 착한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그, 그런 칭찬을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 그렇게 특별한 사람 아니거든요.”
웨이터가 샴페인을 들고 지나가자 박유진이 손을 들어 두 잔을 집어 들었다. 서아는 그가 내미는 샴페인을 어색한 동작으로 받아 들었다.
박유진은 샴페인 잔에 입을 댄 채 서아를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서아는 불편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이 상황을 벗어날 궁리를 하느라 머리를 굴렸다.
“제가 불편하신가 봐요?”
“네, 좀 불편하기는 하네요.”
결국 서아가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유진이 웃음을 터트렸다.
“혼자 계시기에 팬심에 다가왔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섭섭하네요.”
“유진 씨 같은 분이 저한테 팬심이라고 하니 어리둥절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거지요.”
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실 이혼하고 파리로 가셨다는 소문 듣고 한 번쯤 찾아가 볼까 싶은 생각까지 했었습니다. 이런 말 하는 거 좀 변태 같지요?”
“당연히 변태 같지. 그것도 아주 많이.”
우혁의 목소리에 서아와 유진 두 사람 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우혁이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쓰고 있는 게 다 보여서 서아는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유진이 너 오랜만이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얼굴이 벌게진 유진이 허리를 깊게 숙였다.
“네가 형수님한테 까불고 있으니 내가 안녕할 수가 있냐?”
유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고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두 분 재결합하신 겁니까?”
“보다시피.”
우혁이 서아의 허리를 바싹 당겨 품에 안고 말했다.
“저, 저는 그게 헛소문인 줄 알았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너도 참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늦구나. 우리가 발표를 안 했더니 이런 피해자가 생기네.”
유진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연거푸 실수였다는 말을 했다. 사람들은 흘끔거리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채영이 궁지에 몰린 듯 어쩔 줄 모르는 유진을 발견하고 재빨리 다가와 그를 구해주었다.
“유진아, 여기 이 층에 피아노 좋은 거 있는데 구경해 볼래?”
유진은 금방 눈물을 쏟을 듯 반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채영과 유진이 이 층으로 올라가자 서아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 내가 잠시 자리를 못 비워요. 이거 무슨 수를 써야지 안 되겠네.”
“내가 혼자 있으니까 상대를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야.”
서아는 애써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우혁은 잔뜩 찡그린 미간을 풀지 않았다.
“파리로 찾아가 볼 생각까지 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게 상대해 주는 거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우혁은 갑자기 서아의 손을 잡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코트를 벗어 놓은 바람에 드러난 어깨에 차가운 겨울 공
기가 닿자 온몸이 떨려왔다. 우혁은 재빨리 자신의 재킷을 벗어 서아의 어깨를 덮어 주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도 기사만 잘 내더니 왜 내가 너랑 재결합 한 건 기사가 안 나는 거야.”
“기자들도 조심스러운가 보지. 우리가 이혼한 사이인데 자칫 잘못 건드리면 골치 아플 거라고 여기는 거 아닐까?”
“안 되겠다. 우리 기자들한테 사진을 만들어 주자.”
“사진? 무슨 사진?”
우혁이 갑자기 서아의 허리에 팔을 두르더니 확 잡아당겼다.
“우리 둘이 키스하고 있는 사진.”
“어디에서?”
“여기서.”
“뭐? 여기…….”
서아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우혁이 불시에 그녀의 입술을 덮어 버렸다. 그도 샴페인을 마셨는지 향긋하고 달달한 맛이 혀에 느껴졌다. 서아의 허리를 잡은 우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서아의 어깨에 걸쳐진 우혁의 재킷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맨살에 닿았지만 추운 줄도 몰랐다. 뜨거워진 피가 온몸을 돌자 추위 따위는 느껴질 여력이 없었다. 서아는 까치발을 떼고 우혁의 어깨를 짚으며 그의 품에 매달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혁이 입술을 떼며 속삭였다.
“잠깐 사진만 찍게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사진 따위 잊어버리게 해 놓고.”
“그런 건가?”
우혁이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재킷을 들어 그녀의 어깨에 걸쳤다. 드러난 어깨에 손이 닿자 차가워진 피부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어이쿠, 이러다 너 감기 걸리겠다. 어서 들어가자.”
서아는 채근하는 우혁의 팔을 잡고 야릇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감기 같은 거 안 걸릴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이렇게 차가운데.”
“방금 전 같은 키스 한 번만 더 하면 면역력이 높아져서 감기 바이러스 따위는 기도 못 필걸.”
서아의 말에 우혁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우리 서아 많이 컸네.”
서아가 우혁의 목에 팔을 두르며 여유 있게 웃었다.
“이럴 때는 시상식 멘트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제가 이렇게 엉큼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도록 저를 키워주신 우혁 오빠한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혁이 큭큭 소리를 내며 자신의 코로 서아의 코를 문질렀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서아가 그의 입술을 덮었다. 우혁은 꼼짝없이 서아가 이끄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