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은 양손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머릿속을 훑어 내렸다. 여기서 돌아가면 친구고 나발이고 다 끝일 것이다. 그렇다고 일단 들어가면 후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룸 키도 관계의 키도 모두 선아에게 넘어가 있었다.
“아, 장민석 어쩌다 이렇게 지질해졌냐.”
민석이 으르렁대듯 소리를 지르자 불금의 밤을 즐기느라 엉겨 붙은 채 복도를 걷던 남녀가 흘끔 그를 돌아보았다. 민석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그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손가락을 벨 위에 올려놓았다가 다시 떼고 돌아서서 다섯 발자국쯤 걷다가 다시 돌아왔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며 결심을 굳힌 민석이 벨을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 누르자 문이 열렸다. 민석은 룸 안으로 발을 디디자마자 몸을 돌려 선아를 거칠게 껴안았다. 선아의 몸이 출입문에 탕 소리가 나게 부딪쳤다.
“너 사람 꽤 당황스럽게 만든다.”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인데 민석 씨 앞에서 내숭 좀 떨어봤어.”
“이제 내숭 떨지 마라.”
“떨라고 해도 안 떨어. 제대로 확인하고 아니면 버릴 거야.”
“오케이.”
입술이 격렬하게 부딪쳤다. 민석의 손이 선아의 코트를 벗겨 바닥에 떨어트렸다. 선아는 거칠게 발을 뻗어 구두를 벗어던졌다.
“이럴 거면서 뭘 그렇게 튕겼냐?”
선아가 손등으로 입술을 닦으며 민석을 노려보았다. 민석은 선아의 에스닉한 블라우스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몰라. 지금 우리가 멀쩡한 정신이 아니잖아.”
“난 멀쩡해. 멀쩡하다고. 아주, 아주 멀쩡한 정신으로 너, 장민석이 내 남자가 될 자격이 있나 확인하는 중이라고.”
“그래 실컷 확인해 봐라.”
“어쭈, 자신 있는 모양이네.”
민석이 선아를 밀어젖혀 침대에 주저앉혔다. 셔츠를 들어 올리자 자연스럽게 선아의 팔이 올라갔다. 민석은 선아의 목덜미에 입술을 대며 속삭였다.
“자신 있고말고. 곧 알게 될 테니까 각오해.”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밤은 늦도록 계속되었다. 주도권은 선아에게서 민석에게로 넘어갔다가 다시 선아 손에 들렸다. 나중에는 뒤죽박죽 엉켜서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참을 수 없는 갈증에 눈을 먼저 뜬 사람은 민석이었다. 민석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양손으로 누르며 일어서 커튼을 살짝 밀어냈다. 창안으로 들어온 햇살에 미간을 찡그렸다. 고개를 돌려 호텔 방을 둘러본 그의 얼굴은 햇살을 마주했을 때보다 더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침대 밑에는 선아의 신발과 자신의 신발부터 시작해서 두 사람의 옷이 엉망진창으로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코트에서 속옷까지 차마 보기 어려운 꼬락서니였다. 그리고 침대에는 이불로 몸을 반쯤 가린 선아가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지난밤 자신이 그녀의 몸에 남긴 붉은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며 선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는 그녀의 얼굴은 씻지 않고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흉해 보이지 않았다.
선아의 잠든 모습은 의외일 만큼 평온해 보였다. 방은 온통 지난밤의 격렬했던 흔적으로 난장판인데 그 가운데서 선아는 어린애처럼 자고 있다. 민석은 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차가운 입술로 선아의 이마에 모닝 키스를 했다.
흐음 소리를 내며 몸을 돌리던 선아가 햇살에 눈을 반짝 떴다. 실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던 선아는 옷을 입지 않은 민석의 모습을 보더니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곧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애써 담담한 척 이불로 몸을 가리며 일어섰다.
민석이 자신이 마시던 물병을 내밀자 선아는 재빨리 받아 벌컥거리고 마셨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지?”
“보이는 대로, 이 정도로 마신 거지.”
민석의 손이 바닥에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옷가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선아는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머리가 막 흔들려.”
민석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을 주워 입고 선아의 속옷을 챙겨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씻고 숙취 음료랑 해장국을 먹으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그 그렇겠지?”
선아가 욕실로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며 민석은 호기롭게 확인하겠다던 지난밤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뜨거운 해장국을 한 그릇 모두 비운 두 사람은 그제야 살 것 같다며 숨을 몰아쉬었다. 숟가락을 놓은 민석이 싱글싱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무슨 말?”
선아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민석을 바라보았다.
“내가 네 남자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아닐지 합격 여부를 판단해줘야 할 것 아냐.”
민석의 말에 선아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표정을 지으며 투덜댔다.
“술 취해서 한 말을 가지고 술 깬 아침에 물고 늘어지는 건 아주 비열한 짓이야.”
“다른 건 몰라도 이건 결론짓고 넘어가야지.”
“그럼 좋아. 나도 하자. 우혁 오빠 달콤 시즌 투에 출연시킬 거야?”
“그야 당연하지.”
“술에 취해서 한 소리 아니었어?”
“나는 아무리 술에 취해도 못할 말은 안 해.”
“이제 네 차례야!”
선아는 물을 술 마시듯 한 번에 다 마시고 탁 소리가 나게 컵을 내려놓았다.
“나는 술에 취해서 다 잊어버렸어. 그러니까 멀쩡한 정신에 한 번 더 해보고 결정할래.”
“헐.”
민석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반쯤 벌리며 투덜댔다.
“나는 다 기억하는데. 네가 지난밤에 얼마나.......”
선아는 재빨리 일어서서 민석의 입을 틀어막았다. 사람들은 관심도 없는데 자기 혼자서 민망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민석을 향해 소곤거렸다.
“그래 알았어. 합격이야. 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