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야기 기생

검은 나비

by 은예진

“나 참! 기가 막혀서 스물한 살이면 하던 기생도 퇴물이 머잖은 나이요. 그래 가무는 뭐 할 줄 아는 게 있소?”


“없습니다.”


“이보우!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요? 우리가 그렇게 우스워 보이오? 나는 아홉 살부터 노래는 우조 여섯 가지, 계면 여섯 가지, 편 두 가지를 익혔소. 춤은 춘향무, 장상보연지무, 무고, 사고무, 무산향등을 익히는 것으로 시작해서 얼마나 많이 맞으며 얼마나 많이 울며 배웠는지 아시오? 그런데 할 줄 아는 것 하나 없이 그것도 스물한 살이나 먹어서 기생하겠다고? 얼굴 반반하니 삼패는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경화 권번으로 직접 가보시오. 우리는 가무로 흥을 돋우는 기생이지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몸과 웃음만 파는 기생이 아니오. 우리 대정 권번은 당신 같은 사람이 들어올 곳이 아니오.”


“그럼 기생을 하지 않고 요릿집에 나가는 방법이 있나요?”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제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저는 그 재주가 요릿집에서도 통용되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홍란 아씨를 찾아왔습니다. 홍란 아씨라면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기생하자는 것이 아니라 요릿집에서 제 재주를 팔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경성 바닥에서 혼자된 여자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재주를 파는 방법밖에 없는 듯싶어서 말입니다.”


“이야기? 판소리도 아니고 그냥 이야기요?”


“그렇습니다.”


“흥, 예전의 전기수나 변사쯤 되는 모양이오. 변사는 극장을 찾아가 봐야지 왜 요릿집으로 가겠다 하시오?”


“어떤 극장에서 여자 변사를 쓰겠습니까? 저도 갈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홍란 아씨를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홍란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청지연 담배 한 개비를 빼물었다. 일본 기생들이 물밀듯 밀려와서 판을 흐리고 얼굴만 반반하면 벙어리도 기생이 되는 세상이다. 더군다나 요즘 들어 부쩍 손님들이 매일 듣는 <춘향가>나 <수심가>, <육자배기>, <흥타령>도 지겹다는 소리가 나온다.


기생들도 제 살 궁리를 하느라 신식 무용을 배우거나 대중가요를 취입하기도 하고 영화 출연까지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판에 이야기 기생이라니 그냥 넘겨버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은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고 우리 행수 형님을 한번 만나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소. 행수 형님이 이웃에 사니 같이 가봅시다.”





“인사드리시오. 대정 권번 행수 기생이신 명주 형님이시오.”


본이가 절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명주의 눈 끝이 살짝 올라갔다.


“무슨 일이냐? 홍란아?”


“이이가 하는 말을 들어 보시오. 자기가 이야기를 잘해서 요릿집에서 재주를 팔고 싶다고 하는데 어떨까 싶어서 데려와 봤소. 나이도 많고 가무도 할 줄 모르는데 어쩐지 놓치면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알다시피 우리도 이 바닥 생활 십수 년에 반무당 아니겠소? 형님도 인정한 내 감이니까 한번 들어보시오.”


본이가 홍란에게 한 이야기를 또 하며 자신이 이야기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재주가 탁월하다 장담했다. 행수 기생 명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입을 한일자로 꽉 다물고 눈을 지그시 뜬 채 본이를 뚫어지게 본다. 본이는 그런 행수 기생의 기세에 밀리지 않고 똑바로 그녀의 시선을 받아낸다.


“그래? 그럼 네 이야기 한번 들어보자.”

“네?”


“놀라긴 뭘 놀라나. 재주가 있다니 그 재주를 보려는 것인데 설마 재주를 보여줄 준비도 하지 않고 온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본이는 동기가 가져다 놓은 국화차를 한 잔 마시고 목을 축였다. 본이가 시작한 이야기는 강명화전이었다. 몇 년 전 경성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기생 강명화의 자살 스캔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부모의 반대 때문에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음으로 마무리한 기생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본이는 그 이야기를 단순히 기생의 사랑이야기로 끝내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와 같이 엮었다. 앙숙 집안의 이루지 못한 사랑과 부모의 반대로 이루지 못한 강명화의 이야기는 묘하게 다르면서도 같았다.


사랑 때문에 죽어간 기생의 이야기를 애닮은 목소리로 들려주자 금홍과 명주의 눈에 눈물이 설핏 비쳤다.


이야기가 끝나자 명주가 한숨을 쉬었다.


“네 스스로 재주가 탁월하다 장담하더니 과연 헛소리는 아니구나.”


본이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명주를 보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행수는 말을 꺼내 놓고 잠시 멈칫거린다. 옆에 있던 홍란이 긴장이 되는지 침을 꼴깍 삼킨다. 그녀는 행수 기생답게 호락호락하게 굴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재주로 가진 기생은 없었으니 그걸 하려면 시험을 거쳐야 할 것이다. 나는 세 번의 기회를 줄 것이다. 그 시험 세 가지를 다 통과하면 너는 비로소 대정 권번의 이야기 기생이 되는 거다.”


본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도 쉽사리 자리를 내주지 않는 행수에게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을 눈치챈 명주가 단호한 목소리로 못을 박는다.


“사실 네 얼굴로 웃음과 몸만 팔겠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기생이 될 수 있는 용모다. 나이가 다소 많다고 했지만 그깟 나이는 속이면 그만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른 권번을 찾아가서 쉽게 기생하여라.”


“행수님, 저는 기생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팔고 싶은데 기생이 되는 방법밖에 없어서 기생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다른 권번을 찾아갈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조선 땅 어디서라도 제가 기생이 되지 않고도 이야기를 팔 수 있다면 그리로 가겠지요. 하지만 기생을 쉽게 하려고 가지는 않습니다.”

이전 09화9. 금홍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