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의 청국장

by 은예진

연말이 되면서 속 쓰림은 더욱 심해져 먹는 것을 각별히 조심했다. 점심 먹고 산책을 하며 자극적인 음식을 삼간 덕분에 그럭저럭 넘어가는 줄 알았더니 갑작스럽게 날이 추워지면서 위경련까지 왔다.


열이 나고 복통이 심해 응급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위내시경을 하기도 했지만 큰 이상은 없었다. 한의원에서는 12월 들어 날씨가 추워지면서 찬 기운이 위를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달 내내 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먹고살았다. 아마도 먹은 밥의 양보다 약의 양이 더 많지 싶었다. 이약 저 약 먹으며 겨우 소화를 시킬 수 있게 되었지만 도통 음식의 맛을 느낄 수 없었다. 미각이 사라지자 세상은 마치 색이 빠져 버린 흑백 사진 속 같았다.


형태는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매력 없는 흑백 세상에서 나는 혼자서 쓴맛을 삼켰다. 남들은 연말 모임이다, 크리스마스다 해서 그동안 격조했던 지인들을 만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는데 나는 도통 먹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인근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의 소고기를 먹으러 가서도 젓가락질만 몇 번 하다 내려놓았다. 삶에서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그걸 여태 모를 리 없었지만 맛을 잃고 나서 다시 한번 절감했다.


 1등급 한우고기 앞에서도 살아나지 않던 미각이 되돌아온 것은 친정어머니가 담가 보내주신 청국장 덕분이었다. 친정어머니가 햇콩으로 담근 청국장을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청국장의 누르스름한 빛깔은 입 안에 침이 돌게 만들었다.


뚝배기에 기름기가 적은 돼지 목살과 묵은지를 넣고 볶은 뒤에 쌀뜨물을 붓고 청국장을 풀었다. 한소끔 끓여서 파와 두부를 넣어 마무리지었다. 어머니가 청국장과 함께 챙겨주신 서리태를 넣은 갓 지은 밥에 청국장을 비벼 먹는데 울컥했다.


한 달이 넘도록 제대로 먹지 못하다가 밥이 맛있어서 감격스러웠고, 그 맛있는 밥이 친정어머니가 담가주신 청국장 덕분이라 코끝이 아렸다. 어렸을 땐 냄새난다고 싫어했던 청국장, 그 맛에 감격할 만큼 나이가 먹었으니 내 어머니는 또 얼마나 늙으신 건가. 그 생각을 하자 겁이 덜컥 났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가 담가주시는 된장, 고추장, 김치를 받아먹었다. 하지만 이제 그 평범한 일이 눈물겨운 기억이 되는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내가 친정엄마 노릇을 해야 할 날이 가까운 나이에 엄마 타령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청국장으로 기운을 회복하고 나니 자꾸만 엄마, 엄마하고 어리광이 부리고 싶어 진다. 어리광 부릴 수 있을 때가 좋은 때이니 더 늦기 전에 실컷 부려야겠다.


 청국장을 먹고 나자 머리카락이며 옷에 고릿한 냄새가 뱄다. 남들에게는 그 냄새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저 좋아 소매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걱정하던 그날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아직 70대임에도 불구하고 삼 년 전부터 어머니는 음식을 하지 못하신다. 음식 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겨우 밥은 하는데 그것도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 현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슬픈 건 사실이다.


반면 불안이 많고 걱정 근심에 휩싸여 살던 어머니는 치매 이후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머니의 평화에 다소 위안이 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단순하게 살고 계시는 어머니의 평화가 조금 더 길게 유지되기를 빌어본다.


keyword
이전 18화선택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