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소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반면교사가 되는 인물로 자주 거론됐다. 소 키우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나오면 “지금 땅 팔고, 소 팔면 A처럼 된다”같이 말끝에 항상 A 씨가 등장하고는 했다.
내가 사는 곳은 수도권 도농복합지역으로 부동산 가격이 엄청나게 오른 곳이다. 그 비싼 땅에서 예전처럼 소를 키우는 사람들은 “너, 아직도 소 키우고 있냐?”라는 말을 자주 들어야 했다. 그 말속에는 나 같으면 벌써 집어치우고 편하게 살겠다는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는 것이다.
들은 바로는 A 씨가 소를 키우던 시절에 꽤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알려졌었다고 한다. 젊고 활동적인 축주였던 그는 우직하게 소만 바라보고 있기에는 너무 답답했던 모양이다. 소를 키우기에는 지나치게 포부가 컸던 A 씨는 결국 소 팔고 땅 팔아 사업을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혹독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갖은 유혹을 모두 이기고 아직도 소를 키우고 있는 장년의 축주들은 이제 예전과 같은 질문을 받는데 그 질문이 살짝 다르다.
“너, 아직도 소 키우고 있지?”
똑같은 질문이다. 단지 마지막 한 글자 ‘냐’가 ‘지’로 바뀌었을 뿐인데 엄청난 차이가 느껴진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에겐 소똥 실은 손수레 끌고 다니는 친구가 안쓰러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눈앞에 다가온 정년퇴직 때문에 고민스러운 이들이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소를 키우고 있는 친구를 보면 부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이제 소 키우는 사람들은 “늙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집에서 대접받고, 비싼 땅도 축내지 않았으니 얼마나 좋으냐”라는 소리를 듣는다.
직종마다 전성기가 있는데 소 키우는 일은 전성기가 중장년 이후에 오는 직업이다. 젊어서는 휴가를 즐길 수 있고 변화무쌍한 경험도 할 수 있는 일을 선호하기에 우직하게 꾸준히 하는 일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장년이 넘어서면 소 키우는 일은 노년을 책임지는 아주 부러운 직업으로 돌변한다.
소를 키우다 보면 비싸게 사온 송아지를 삼십 개월씩 사료 먹여 출하하는데 소 값이 떨어져 크게 손해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가 하면 송아지를 싼 값에 들였는데 그 사이 가격이 올라 이득을 보는 때도 있다.
꾸준히 소를 키워온 분들은 이러한 가격 등락에 흔들리지 않고 송아지를 입식하고 소를 출하하며 소걸음으로 우직하게 한발 한발 내딛는다. 그렇게 삼십 년쯤 가다 보면 주변에서 부러움을 사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게 어디 소 키우는 일에만 해당될까 싶다. 장년의 나이 오십 대쯤 삶의 전성기를 맞이한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소걸음으로 천리를 걸어온 사람들이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하는데 나는 거기다 한 마디 더 추가하고 싶다. 즐기는 자도 꾸준히 하는 자를 이기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