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 가득하시기를

by 은예진

내가 근무하는 동물병원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도매상으로 약을 주문한다. 주문받은 약을 거래명세표에서 확인하며 꺼내던 도매상 직원이 B약품을 꺼내 놓으면서 중얼거린다.


“나 참, B한테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어요.”


B는 너무 팔리지 않아 몇 번이나 직원회의를 하게 만든 약품이라고 했다. 이렇게 팔리지 않는 약을 계속 가지고 가는 것은 물류비용만 증가시키니 눈물을 머금고 폐기 처분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폐기 처분되기 직전에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B와 동일한 약효를 가졌는데 훨씬 지명도 있고 인기 좋은 약품인 M이 품절되어서 언제 시중에 나올지 감감무소식이라는 것이다. 이후로 B는 두 번이나 더 수입돼 도매상의 효자 약품이 되었다.


 이렇듯 살다 보면 어부지리로 이득을 얻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때 건초를 수입해 축산농가에 팔던 무역상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장사를 잘해서 수입해 놓은 건초를 일찌감치 팔아 치운 무역상은 갑작스럽게 오른 환율 때문에 장사를 한 만큼 밑지는 결과를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장사 수완이 떨어져 미처 건초를 판매하지 못해 갖고만 있던 사람들은 사상 최대의 이윤을 남기며 팔았다.


 자기가 지닌 능력과 상관없이 외부 여건 때문에 나에게 이득이 생기는 경우를 흔히 ‘운이 좋았다’고 한다.


언젠가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이불씨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예술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어쩔 수 없이 운이라는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운이라는 것이 원한다고 오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외부 여건 아닌가.


기자가 “그럼 당신처럼 운이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계속하면 된다.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운이 좋아진다.”


 B가 효자 약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더 일찍 폐기 처분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뒤늦게 기회를 잡은 무역상도 판매 실적이 떨어지는 건초를 계속 가지고 있는 바람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왕이면 운 따위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들은 대부분 볕 들 날을 기다리는 쥐구멍 같은 처지에서 살고 있다. 이불씨 말에 따르면 우리 같이 별반 뛰어난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자기 자리를 성실하게 지킨다면 한 번쯤 운이라는 것이 찾아와 준다는 것이다.


 설도 지나고 새해가 왔으나 우리네 삶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하던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을 뿐이다.


요즘 들어 무슨 변덕인지 내 행운을 내가 바라는 것보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의 행운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혹시 아는가, 행운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남의 뜻으로는 될지. 돌고 돌면 결국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러니 독자 여러분 가내에 행운 가득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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