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 합니다

by 은예진

 직장인들의 커다란 고민 중의 하나가 아마도 ‘오늘 점심은 또 무얼 먹을까’일 것이다. 직장인인 나도 그렇게 점심 먹을 곳을 찾아 헤매다 어느 날은 ‘집밥 합니다’라는 종이가 붙은 가게를 발견했다.


요즘 집밥이 트렌드라 텔레비전에서 연예인이 집밥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잡지에서도 집밥 차림으로 유명한 식당에 대한 글을 자주 실어 그 문구가 눈에 띈 것이다.


 우리가 식당에서 공기밥과 기본 찬에 간단한 일품요리가 나오는 메뉴를 백반이라고 하는데, 그럼 백반과 집밥의 차이는 무엇일지 생각하며 그 식당에 들어가 앉았다. 작은 식당에는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긴 원목 테이블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차림표도 없어 주는 대로 먹으면 그만인 모양이었다.


 주인은 별다른 말 없이 그릇에 반찬과 밥을 담아 내놓았다. 그런데 음식을 받고 나서 정말 깜짝 놀랐다. 백반이 대량생산 시스템에서 나오는 공산품이라면 집밥은 그러니까 일종의 수제품 같은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도자기 접시에는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반찬들이 올려져 있었다.


 특별한 재료는 없었다. 캐나다에서 온 바닷가재도 아니고 투플러스 한우도 아닌 우리가 집에서 흔히 해 먹는 시금치·감자·오이·가지·양파 뭐 그런 재료를 이용한 반찬이었다. 그런데 달랐다.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간이 심심하면서도 담백하게 맛있었고 보기에도 예뻤다.


 나는 그집 음식을 날마다 먹으면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소설가 윤대녕씨가 절에서 일종의 벌을 받느라 한달간 장아찌만 먹고 나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했다는데 나도 그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점심을 그렇게 먹자 아침·저녁도 과하지 않고 정갈하게 먹게 되었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식당의 밥은 꽤 유명한 자연요리 연구가 선생님의 작품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쩐지…”라는 말이 나왔다.


아쉽지만 그러한 집밥 호사는 두달도 안 돼 끝났다. 선생님이 인근 군청에서 산나물 상품화 관련 강의를 하고 유명 잡지에 글을 연재하느라 바쁘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러더니 곧 ‘집밥 합니다’라고 붙어 있던 종이가 사라졌다.


 이제 선생님 집밥을 먹지 못하지만 나는 먹는 것이 그 사람의 삶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하고 심심하고 담백하게 먹으면서 생활도 바뀌었다. 군더더기 장식은 떼어 버리고 기본에 충실한 삶이 훨씬 의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예전처럼 오늘은 무얼 먹을까 고민하지 않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선생님 밥처럼 건강하면서도 맛있게 만들 수 없지만 예전처럼 대충 먹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곧 내 삶이 되고 대충 먹는 사람은 삶도 대충 살게 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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