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경성
장덕순은 아무래도 무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오 할 이자를 받고 주었던 빚을 복리로 계산해 조금씩 올려 받다가 땅을 뺏는 것이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땅 주인이 나라에 호소하겠다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돌아다니며 장덕순을 괴롭혔다. 그 때문에 주재소에서 오라 가라 하는 일까지 생겼다.
일찍이 몇 년 전부터 탐내던 고래실논이었다. 매번 빚을 일찍 갚는 바람에 빼앗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가능해졌다.
그 집 아들이 갑작스럽게 폐병에 걸리는 바람에 집안이 어수선했다. 장덕순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는 법이 없었다. 다 된 일이었는데 땅 주인의 저항이 생각보다 컸다. 처음으로 며느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네 아버지가 이곳에 한 번 연락만 해줘도 되는 일인데 어째서 그리 무신경하게 구신단 말이냐?”
윤미령은 거만한 자세로 나랏일을 보는 사람이 이런 사적인 일에 나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아느냐며 훈계하려 들었다. 도대체 내가 며느리를 내쫓으며 저를 들인 이유가 무엇인데 이제 와서 저런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한두 가지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집안에서 바쁘다며 결혼식을 미루고 있는 것도 그렇고 한 번 뵙자고 하니 작은아버지라는 사람만 나올 뿐 사돈 될 사람을 만나주려 하지도 않았다.
“네 아버지가 정말 재무국장이 맞기는 한 것이냐?”
“아버님, 정말 해도 너무하시네요. 제가 사기 결혼이라도 했다는 말씀이세요?”
윤미령의 목소리가 방문을 넘어 사랑채 밖으로 나갈 정도였다. 장덕순은 망신살이 뻗쳤다는 생각에 급하게 말을 돌려 며느리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한 번 든 의심은 쉽게 고개를 숙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당신도 참 한심하다. 한심해!”
윤미령은 치마 속으로 파고드는 남편을 버선발로 걷어차 내고 소리를 질렀다. 애초에 한 달이면 경성에서 호의호식하며 살만큼의 땅문서를 가지고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계획은 자신이 짰지만 행동은 남편이 해야 하는데 이 인물이 변변치 못해서 일 년째 미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원래 평양 기생이었던 윤미령은 동경 유학생이었던 애인이 변심하자 찾아서 결판을 내겠다고 동경까지 간 여자였다. 인물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좋아서 일을 잘 꾸미고 한 번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온 남자는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재주를 가졌다.
어떤 남자들은 그녀가 개펄같은 여자라고 했다. 한 번 발을 디디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는 개펄인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숨구멍까지 막혀있어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지경까지 간다고 했다.
장연수 또한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지만 윤미령과 어쩌다 엮이고 나서 그 펄에 빠져 여기까지 왔다.
“어떻게 할 거냐고?”
“알았어요. 알았어. 그러니까 딱 한 번만! 응? 한 번만!”
윤미령은 남편을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에도 제대로 못 하면 나는 그 길로 짐 싸서 떠난다.”
미령은 장연수를 밀어붙였다가 달래다 하면서 혼을 쏙 빼놓았다. 장연수는 윤미령과 이천에 올 때까지도 실제로 아버지의 재산에 손을 댈 생각이 없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아버지 죽으면 모두 자신의 것인데 지금 굳이 손을 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미령의 생각은 달랐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관계에서 하루라도 먼저 돈을 빼내야 할 일이었다. 젊어서 써야지 아버지 죽고 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끝날 것이라고 장연수를 부추겼다.
어떻게 버텨 보려고 지금까지 눈치만 보고 있는데 미령이 이제는 견딜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미령이를 의심하고 미령은 볶아대고 중간에서 장연수만 죽어날 지경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미령이의 치마폭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장덕순은 어지간해서 사랑채를 떠나지 않는다. 장덕순이 사랑채에서 꾸민 일을 실행하는 사람은 최 집사다. 최 집사만 잘 구워삶으면 일도 아니지만 그는 장연수를 신뢰하지 않았다. 부자가 삼 대 가지 못한다는 말은 바로 저런 아들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생각했다.
최 집사는 주인이 재산을 온전하게 잘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삶을 가장 안전하게 꾸려가는 길이라고 여겼다.
윤미령은 땅문서를 빼내기 위해서 인질극을 제안했었다. 장연수 입장에서 그건 좀 겁이 나는 일이었다. 윤미령을 믿고 자신이 인질로 나섰다가는 자칫 가짜 인질극이 아니라 진짜 인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도 땅과는 바꾸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땅문서를 직접 빼내야 하는데 실제로 땅문서가 어디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랑방이 작으니 뒤집으면 못 찾을 것도 없는데 아버지가 방을 비우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