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걸스의 존재를 처음 알다.
2023년 10월, J.F.K↔인천 왕복 비행기표를 예약하자마자 뉴욕 예습에 돌입했다. '책으로 보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병'에 걸린 사람답게 뉴욕 관련 책들을 쓸어 담았다.
그중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였다. 미술관 경비원의 시선으로 본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라니, 이건 꼭 읽어야 했다!
운명의 장난일까? 2024년 1월, 단골 서점에서 이 책으로 미술사 전공자의 특강이 열렸다. 강사님이 직접 찍은 메트(메트로폴리탄의 애칭) 사진들을 보며 열심히 메모했다. 특히 피터 브뤼헐이란 화가의 <곡물수확>에 푹 빠졌다. 200만 점이나 되는 소장품을 다 보려면 아마 다리가 부러질 거 같았지만, 책에서 본 작품들만큼은 꼭 보고 싶어서 '꼭 봐야 할 명작 리스트'를 만들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메트를 언제 갈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28일 일정인데도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메트만큼은! 식비를 좀 아끼더라도 제대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초반에 한 번, 막바지에 한 번, 총 두 번 방문하기로 했고, 첫 방문 때는 회화 가이드 투어까지 예약했다.
지하철에서 올라와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드디어 보이는 메트의 웅장한 실루엣! 말로만 듣던 그 메트로폴리탄이 눈앞에... 소1이는 설렘에 눈을 반짝이는데, 소2는 지하철에서 외국인과 마주친 충격(?)으로 이미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이었다.
로비는 마치 인간 백화점! 그 속에서 우리는 가이드님을 만나 오리 새끼처럼 뒤뒤뒤... 줄지어 따라다녔다. 복도마다 걸린 작품들을 보며 '이래서 세계 최고구나...' 감탄하다가, 가이드님이 특별한 방으로 안내하셨다.
"여기는 '벌거벗은 여인들의 방'이라고 불립니다."
이 한마디가 우리의 메트 관람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처음엔 단순한 별명인 줄 알았는데, 그 속에 숨겨진 의미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메트의 작품 90%가 남성 작가의 손에서 탄생했고, 그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여성의 나체가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현재는 누드 그림 전시가 많이 축소된 듯 보였다.)
'게릴라 걸스'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고리타분해 보이는 미술관에 게릴라라니. 하지만 이들의 활동을 들으며 깨달았다. 예술이란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편견과 차별에 저항하는 또 다른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손을 꼭 잡고 "언제 가"라며 조르던 소2도 이야기를 듣더니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아이들도 무언가를 느낀 걸까.
처음 메트를 찾아올 때는 '세계적인 명작을 보러 간다'는 단순한 기대감뿐이었다. 유명한 그림들 앞에서 인증샷도 찍고, 멋진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메트는 우리에게 더 큰 질문을 던졌다. 누구의 시선으로 예술을 보고 있는지, 그 속에 가려진 목소리는 없는지. 200만 점이 넘는 작품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듣고 나니,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닌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거울 같았다.
메트는 정말...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 혼란은 불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필요한 혼란이었다. 첫 방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우리는 알았다. 두 번째 방문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겠지.
게릴라 걸스는 주기적으로 "위니"와 "바나나" 카운트를 실시했는데, 멤버들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같은 기관을 방문하여 누드를 세고, 남성 대 여성 주제의 비율과 다양한 컬렉션에 표현된 남성 대 여성 예술가의 비율을 기록했습니다. 1989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여성 예술가는 모던 아트 갤러리 작품의 5% 미만을 제작한 반면 누드의 85%는 여성 작품이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Guerrilla_Girls 위키백과 참조
내가 꼭 보겠다고 만든 메트 명작선
피터 브뤼헐 <곡물수확>
베르나르도 다디<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페르네브의 무덤(고(古)왕국 시기의 이집트에서 건축된 무덤, 기증)
<은키시 주술상>
<쿠로스 대리석 조각상>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위싱턴>
<무기와 갑옷 컬렉션>
존 싱어 사전트<마담x>
프라 안젤리코<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Cf)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을 통해 알게 된 상식:
다빈치의 회화 작품은 미국에 단 한 점 뿐.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그리하여 이것을 보기 위해 워싱턴에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