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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맨해튼과 퀸즈, 두 개의 MoMA

"엄마의 로망이었던 맨해튼 MoMA"

by 마틸


"원어민 수업 학원비 아껴서 차라리 뉴욕 가게 해줘요."

열한 살 아들의 뜬금포 같은 제안에 내가 귀를 의심했다.

"뉴욕? 갑자기?"

"일빵빵 제프쌤이 모마는 꼭 가봐야 한다고 했어요. 근데 패키지 말고, 자유여행으로요. 그리고 길게!"


MoMA! 뉴욕현대미술관!

내 버킷리스트의 하나였다. 남편의 도끼눈은 보이지도 않았다. 오직 '아들의 간절한 소원'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물론 이건 비밀이다.

"그래? 우리 아들이 그렇게 모마에 가고 싶었구나."

최대한 덤덤한 척 말했지만, 내 심장은 이미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들의 소원'을 위해(이라고 주문을 걸며) 만반의 준비에 돌입했다. <발칙한 현대미술사, 윌 곰퍼츠>, <그림들(모마 미술관 도슨트 북), SUN 도슨트>, <나의 미국 인문 기행, 서경식>까지, 밤마다 몰래 공부했다. 로스코는 내 최애 작가니까 더 열심히, 고흐, 피카소, 모네... 작품 설명을 줄줄 외웠다. 전문 가이드를 고용할까도 했지만, 이때야말로 내 미술 지식을 뽐낼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드디어 도착한 11 West 53rd Street, New York City. The Museum of Modern Art (MoMA).

"소1아! 네가 그토록 원하던 그 모마야! 저기 봐, 로비가 장난 아니지?"

나는 이미 흥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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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위층부터 올라가서 내려오면서 봐야 해. 5층에는 <별이 빛나는 밤>이 있고..."

내 설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5층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완전히 폭주하기 시작했다.


"어머나! 저기 봐!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모네의 <수련> 시리즈! 피카소도 있고, 마티스도 있어! 잭슨 폴록? 앤디 워홀? 어? 저건 쇠라? 조르주 쇠라 맞아? 세잔이네! 어머, 에두아르 뷔야르? 샤갈? 디에고 리베라! 오스카 코코슈카까지! 저건 분명 몬드리안이고... 마티스의 콜라주 작품들! 막스 베크만? 독일 즉물주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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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 온 설명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작가 이름을 읽어대며 감탄사만 연발했다. 모든 문장이 의문문으로 끝나는 흥분된 목소리였다.


"엄마, 지금 엄마만 떠들어요. 조용히 해야지."

소2의 날카로운 핀잔이 날아왔다.

"엄마, 우는 거 아니지?"

소1마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모네의 <수련> 전시실에서였다.

"Is this really Monet?"

프랑스 관광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real'이란 단어가 귀에 꽂혔다. 책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는 것에 도취되어 있던 내 흥분이 순간 가라앉으면서 묘한 불편함이 밀려왔다.


"엄마, 미국은 진짜 돈이 많은 나라네요. 이 유럽 그림들 다 얼마 주고 샀을까요?"

소1이 물었다.

"이 그림들 다 미국 사람이 그린 거예요? 유치원에서 본 고흐랑 피카소 그림이 여기 있는 건 미국 사람들이라서예요?"

소2도 한마디 거들었다.


대공황 시기와 2차 대전 이후 유럽 미술품들이 헐값에 미국으로 넘어온 이야기를 설명하려다 말았다. 프랑스 관광객의 그 'real'이라는 단어가 자꾸 맴돌았다.


그래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작가들의 작품까지 열심히 사진도 찍고 (영상은 찍다가 제지당했지만), 전시장을 누비고 다녔다. 입장하자마자 폐장 시간까지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문득, 멀리 벤치에 지친 듯 앉아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MoMA는 소1의 로망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내 로망이었던 거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걸 진작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전시장을 나오는 길, 소1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엄마, 다음엔 타임스퀘어 가요. 제프쌤이 그건 진짜 멋지대요."

이번엔 정말로 아이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내일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예약되어 있지만 말이다.

(제프쌤이 메트로폴리탄도 꼭 가보라고 했을 거야, 틀림없어!)


[12살 인터뷰]


- MoMA에서 봤던 작품 중에 신기했던 거 뭐야?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그림이 굉장히 크고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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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한테 자랑하고 싶은 작품 있었어?

고흐: 별이 빛나는 밤

(엄청 유명한 작품이잖아! 작은 그림인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 PS1이랑 MoMA 중에 어디가 더 재미있어? 왜?

맨하튼 MoMA가 작품이 더 많아서 Good!
- 다음에 또 와보고 싶어?

YES. For Sure.

신기하고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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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2가 뉴욕 여행 후 돌봄에서 그린 그림/소1 인터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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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