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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다시, 뉴욕 미술관

-우연한 발견의 미학

by 마틸

미술관에 걸린 그림 말고도, 여행지에서 뜻밖에 발견되는 예술들.

어쩌면 내가 아이들과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을 가장 바랐을지도 모른다.


1. 뜻밖에 동네 마트 음료 코너에서 만난 밥 아저씨. 남편은 자기가 아는 예술가 중에는 밥 아저씨가 제일 그림을 잘 그린다 했을 때 같이 웃었던 기억. 당연히 아이들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음료수 캔에서 환히 웃고 있는 밥 아저씨의 미소를 보니 귓가에 저절로 재생되는 더빙된 밥 아저씨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림 그리기 참 쉽죠?'

별 것 아닌 붓 터치 몇 번으로 산이 생기고, 나무가 생기고 바다나 강이 되었던 그림들. 음…뽀글거리는 머리스타일까지. 밥 아저씨는 영원히 밥 아저씨로.

아이들이 이 사람 유명한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엄청 유명한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해바라기 그린 사람보다 유명하냐는 소 2의 질문에는 '가서 진라면 순한 맛 가지고 와' 대답하기. 얼른 뛰어가는 소 2. 잘했어!

20240723_110057.jpg 헛! 이제 보니 에너지 드링크였다는.


2. 퀸즈 미술관에서 만난 그림들. 사전 정보 없이 퀸즈 동물원을 놀러 갔다가 우연히 들어가게 된 미술관이었다. 미술관 앞에서 소 2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졌는데 무릎에서 피가 철철 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고 약상자를 들고 왔지. 집에 가자는 아이를 안고 어르고 달래서 들어갔다. 역시나 기부 입장료 말할 때마다 버벅대긴 했지만, 신선하고 재밌는 미술관이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조금 무섭고 기괴하고 어려웠던 그림들이 많았지만, 여행 초반이라서 아이들이 꽤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드코어적 분위기에 끌리는 나도 아이들이 있을 땐 조금 망설여지는 마음이 든다. 불쾌감만 느끼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 그 너머의 감각을 알려주기엔 내 능력이 아직 많이 부족했다. 마침 아이들 체험 미술 놀이장이 있어서 거기서 한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유명한 화가 그림을 보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미술관에 들어와서 에어컨 바람도 쐬고, 낯선 것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해 보고, 만져도 되는 것들은 한 번씩 만져보고 그러면 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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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브루클린 어느 쇼핑몰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 의외로 아이들이 그림 잘 그렸다고 칭찬한 작품들. 방금 보고 온 브루클린 브리지와 계단, 지하철이 아이들에게 더 친숙한 느낌이었나 보다. 소 2는 자기도 이렇게 그려보고 싶다고 물감을 사달라고 했지만. 일단 한국 가면 다이소에서 물감이고 스케치북이고 실컷 사주겠다고 꼬시는 엄마. 숙소에 물감, 팔레트, 스케치북, 색연필 등등이 널브러진 것을 볼 자신이 없었다는 솔직한 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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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뉴욕 공립도서관. 뜻밖에 입구 보안이 철저해서 깜짝 놀랐다. 도서관 들어가면서 가방 검사를 하다니. 관광객들과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실제 열람실은 이용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이용돼서 전시실과 맨 위층 이용 가능한 열람실 정도만 있었다. 내가 놀란 것은 우리나라 공공도서관과 달리 매우 웅장한 내부 구조. 천장과 창문의 그림, 고서의 아름다움, 미국 책답지 않게 꽤 표지가 세련되게 느껴지는 현대문학 책들(내가 좋아하는 셜록 홈즈, 잭 캐루악, 애트우드 책이 있어서 매우 행복했음). 뉴욕 미술관에서는 본 적 없는 흑인이 책을 읽는 그림 앞에서 한동안 서 있기도 했다. 정작 아이들은 공중전화를 처음 봐서 매우 신기해했지만. 그런데 저 공중전화는 진짜 되는 걸까? 나도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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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계단에서 만난 그림들. 아~꼭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할까? 굳이 계단으로 몇 층 더 올라가게 하는 건 왜일까 싶다가도 계단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재밌어서 꾹꾹 참고 올라갔다.

브루클린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덤보 근처 지하철 역에 내렸는데, 메이저리그 포스터가 딱! 마음에 드는 그라피티가 딱. 길 걷다 보이는 건물 벽 그림도 멋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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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뉴욕의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 입구 문 위로 눈에 띄는 장식들이 있었다. 미술관 안에 그림들 중에 성모자상이나 성가족상이 많아서 인상적이었는데, 길을 걷다 보이는 교회나 성당에도 성가족상 조각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유럽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인들이 중요한 가치로 여긴 것 중에 하나가 가족 공동체였을까? 하는 나만의 뇌피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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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할렘에서 가장 궁금했던 아폴로 극장. 스티비 원더, 빌리 홀리데이, 제임스 브라운, 루이 암스트롱, 마이클 잭슨. 투어 가이드님이 나의 환호성에 이 사람들 이름을 다 아는 걸 신기해하셨다는. 아폴로 극장 안에서 하는 공연 보고 싶었지만, 입구 로비에만 들어가서 사진 한 장. 할렘 끝 컬럼비아 대학에서 발견한 여러 가지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딱 떠오르는 조각을 보고 철학대학 앞인가? 했는데 그렇다고 한다. 컬럼비아 대학 안에 퓰리처 동상이 있었다. 내적 친밀감. 투어 가이드님이 아이들에게 아이비리그 입학 이야기를 한참 하셨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은 나뿐. 그런데 여기 내가 다니고 싶다. 내가 다니면 진짜 1분 1초를 아껴가며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서관에 새겨진 이름들 보면서 기절할 뻔. 호머, 헤로도토스, 소포클레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모스테네스, 시세로, 베르길리우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투어 가이드 선생님. 컬럼비아 대학에도 나이 제한이 있나요? 아. 나이를 떠나서 영어를…. 공부를…. 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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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 2는 아주 가끔씩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이동시간이 너무 길 때마다 수첩에 작은 그림들을 그렸다. 대한민국과 미국에 대한 소소한 그림. 가족, 지하철 오다가다 본 쥐에 영감을 받아선지 쥐방을 그렸더라는. 무엇보다 가장 빵 터진 그림이 아빠 회식 그림이다. 노래방에서 넥타이 머리에 쓴 디테일이라니. 소 2야. 아빠는 넥타이를 거의 안 하는데 말이지. 아빠는 노래도 잘 못 부르는….. 아이들에게 중년 남자들의 회식 이미지가 이렇다는 깨달음. 미디어의 힘은 무섭다. 그런데 엄마는 모르는 아빠 모습을 너는 아는 게 아니겠지? 응?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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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번외 편 하나 더, 그리고 에필로그 하나 더 올릴 예정입니다.

읽어주시고, 라이킷 눌러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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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