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해외여행의 구원자-물놀이터
00th Street, Queens, NY *****, United States
맨해튼, 브루클린... 내 뉴욕 상상은 거기까지였다.
타임스퀘어는 아니더라도, 브루클린 브리지 근처는 아니더라도, 그 언저리 어디선가는 한 달쯤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순진한 경제 감각. 내 상상 속 뉴욕살이는 늘 세련된 카페에서 아침을 시작하고, 센트럴파크를 산책하며, 블루보틀 커피를 손에 들고 미술관을 거니는 모습이었다.
호텔 검색. 아... 이건 아니구나.
호스텔 검색. 이것도 아니구나.
에어비앤비 검색. 맨해튼은 꿈도 꾸지 말자.
브루클린도... (깊은 한숨) 생각보다 많이, 아주 많이 비싸구나.
뉴저지? 한인들도 많다던데... 잠깐, 맨해튼까지 차로? 우리 동네에서도 운전 한 번 안 해본 내가 뉴욕에서 아이들 태우고 운전이라니. 그건 제정신이 아니야. 게다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매일 러시아워를 뚫고 다리를 건너는 건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퀸즈였다. 28일에 500만 원 정도, 침실 2개에 욕조 딸린 화장실, 주방까지 갖춘 '합리적인' 선택. 슈퍼호스트에, 등록번호까지 있는 검증된 숙소. 맨해튼까지 지하철로 20~30분, H마트는 버스로 3 정거장. 퀸즈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구글 스트리트뷰를 수천 번은 뒤적였다.
그러다 발견한 우리만의 보물: 걸어서 5분 거리의 놀이터.
이 놀이터는 단순한 놀이공간이 아닌 우리의 구원자였다. "소 2야, 짐 정리하면 놀이터 가자!" 한마디에 뚝딱 정리되는 방, "옷 갈아입고 놀이터 가자!"에 로켓처럼 움직이는 아이들. 특별했던 건 언제든 물이 나오는 수도 시설. 버튼만 누르면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이 놀이터는 "미국 재미없어!"를 "놀이터 가자!"로 바꾸는 마법의 장소였다.
소 2는 이곳에서 언어가 달라도 친구가 되는 법을 배웠다. 어디선가 나타난 꼬마 남자아이와 서로의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물놀이하며 깔깔대는 웃음소리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소 1은 가끔 동네 아이들과 야구 배팅을 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로망과 달랐다. 특히 빨래... 아, 그 빨래. 코인 세탁방에 대한 이상한 로망은 한여름 빨래 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새벽 5시 빨래 원정은 내 뉴욕 라이프의 숨겨진 일상이 되었다. 처음엔 애들 자는 사이 삼중 잠금장치를 걸어두고 혼자, 나중엔 억울한 마음에 아이들과 함께. 다행히 소 1이 수요일과 금요일이 무료 건조날이란 걸 발견해 우리의 빨래 일정이 정해졌다. 물론 그 대가는 매번 아이들이 같이 갈 때마다 사줘야 하는 간식과 음료수였지만.
빨래방 가기 싫다고 자기 옷은 자기가 빨겠다고 나선 소 2. ㅜㅜ
정수기 없는 숙소에서 3L 생수를 날라야 하는 현실도 있었다. H마트의 12,000원짜리 작은 통 김치를 보며 느낀 물가의 슬픔도. 그래도 한국말로 반갑게 맞아 주시는 카페 사장님을 만나고, 진라면 순한 맛으로 위로받는 소소한 행복도 있었다.
계획했던 수많은 뉴욕의 명소들도 소 2의 "지하철 타기 싫어!"에 무너져 내리곤 했다. 대신 우리는 퀸즈 동네 버스를 타고 여유롭게 구경하며, 우리만의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갔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와야 한다는 제약도 있었지만, 그 시간은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보내는 특별한 순간이 되었다.
어느새 우리는 이곳을 '우리 동네', '우리 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 우리 집 언제 가?"
"엄마, 우리 집 놀이터 가자."
"엄마, 집에서 그냥 핸드폰 보고 놀자."
"엄마, 우리 동네 가서 밥 먹으면 안 돼?"
뉴욕의 화려한 명소들을 다 보지 못했고, 빨래와 생수 들기로 운동량은 늘었지만, 퀸즈에서의 한 달은 우리만의 특별한 뉴욕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불편함 속에서 발견한 소소한 행복,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은 아늑함, 그리고 매일매일 새롭게 발견하는 이웃들과의 교감. 그렇게 우리는 퀸즈에서 진짜 뉴욕 라이프를 경험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우리만의 방식으로, 불편하지만 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