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저리그와 드림웍스(나에게는 맥주가...)
뉴욕 여행을 회고하면서 느낀 점.
소 1의 제안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주로 나의 로망을 이루는 여행에 가까웠다는 것.
그렇지만 아이들이 고대하고 고대하던 각자의 로망을 이루는 날을 여행 후반기에 배치한 나. 엄청 칭찬해.
결국 여행은 끝날 때 기억이 중요하지 않겠어?
## 소 1의 로망 이루기-뉴욕 양키스타디움
뉴욕 여행 와서 소 1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소 1은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는 것. 내 아들답게 뭘 하나 좋아하면 깊고 넓게 좋아하는 소 1.^^
아빠가 야구 좋아하니까 야구룰 정도 알고 가끔 하이라이트 정도 보는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훨씬 넘어선 것 같다. 나는 알 수 없는 커브, 체인지 업… 기타 등등.(나는 들어도 뭔 말인지….) 알고 보니 한국 야구 리그를 싹 꿰고 있었다. 특히 응원하는 팀(KT) 선수들 스펙부터 성적 및 개인기 등등.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야구 경기 성적 확인부터 하는 소 1. 처음엔 눈 뜨자마자 유튜브 보냐고 타박했었는데, 자기 지금 중요한 거 확인한다고 해서 보니 야구 성적 체크 중이었다. 내 말에 흘겨보는 눈빛이 뭐랄까, '엄마는 진짜 중요한 걸 몰라...'
비록 엄마는 야구는 몰라도 뉴욕 양키즈가 유명한 것은 안다. MLB도 안다. 오타니 LA경기는 못 봐도 오타니 유니폼은 사 줄 수 있다. 아.. 퀸즈에는 뉴욕 메츠 구장도 있다. 이 정도 야구 지식으로 엄마도 꽤 괜찮은 거 아닐까?
소 1의 가장 큰 소망인 뉴욕 양키즈 경기를 8월 초 오후 경기로 예매했는데, 그날 비 소식이 있어 약간 걱정했었다. 여행 내내 거의 비가 오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딱 그날. 전 날까지 소 1은 날씨 확인을 하며, 경기 취소 됐는지 확인하라며 나를 들들 볶았다.
흑흑. 슬픔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전 날 저녁 경기 취소 되었다. 여행 내내 밝고 신났던 소 1이 의기소침해진 유일한 저녁이었다. 결코 엄마는 아들을 실망시키지 않지. 기다려봐. 엄마는 야구는 몰라도 야구 경기 예매는 잘할 수 있어. 뉴욕 양키즈 홈페이지 가입도 하고 다 할 수 있지. 주말표가 있었다. 그렇지만 오후 1시! 완전 땡볕일 것 같은데.. 괜찮을까? 소 1. No Problem. 보다가 힘들면 중간에 나오면 되지 싶어서 일단 예매 고고. 여기서 중요한 건 기상 정보가 아닌 요일이다. 주말표! 당연히 주말에 갈 수 있다는 뜻!
야구 경기 예매 당일. 어느 때 보다도 적극적으로 소 1이 길을 나섰다. 평소 인터넷만 붙들고 있던 아이가 이렇게 활기차게 외출을 준비하다니! 지하철에서도 계속 표 잘 확인했냐고 물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알았다. 와우! 뉴욕 양키즈 경기 보러 온 사람 많네. 요 사람들만 따라가면 되는구나. 인생에서 처음으로 인파 따라가기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문제는 입장 게이트 입구를 찾는 일이었다. 몇 번이나 인터넷에서 뉴욕 양키즈 경기장 입장 방법을 확인하고 입장 게이트 번호도 확인했다. 사람이 워낙 많아서 줄을 잘 서는 게 관건이었다. 분명히 맞게 잘 섰는데, 입구 코 앞에서 표가 이상하다며 티켓부스 가서 확인하라는 안내원이랑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그때 나는 영어도 잘 못하면서도, 분명히 내가 맞게 잘 예매하고 날짜, 시간, 게이트 번호까지 다 맞는데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났다. 무엇보다 입장하겠다고 땡볕에 30분 넘게 서 있었고, 곧 경기 시작 직전인데. 도대체 왜 안 들여보내주냔 말이냐. 눈앞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경기장 함성이 들려올 때의 그 답답함이란!
옆에 있던 소 1이 옆에서 뭐라고 말을 했지만 이미 나는 이 안내원에게 절대 지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번역 앱을 켤 준비를 하는데, 소 1이 나를 확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엄마, 일단 티켓부스 가서 확인하자."
소 1의 눈에 불꽃이 싹 스치는 것을 보고 나는 약간 소심해져서 티켓부스로 갔다. 12살 아이한테 기세로 밀린 날이었다.
티켓부스 담당자에게 모바일 티켓을 보여주면서 아까 안내원과 있었던 이야기를 하려는데, 음… 이럴 땐 뭐라고 말을 시작해야 하나. 그녀가 말했는데요. 음…이 티켓이 이상하다는데요. 음…그러니까 왜 이상하다고 했었지? 그러면서 더듬더듬하는 사이. 머릿속 영어사전은 땡볕에 다 증발한 듯했다.
바깥에서 들리는 함성 소리. 소 1이 갑자기 내 핸드폰을 빼앗듯 가져가서 담당자에게 주더니 속사포처럼 말을 했다. 담당자는 내 모바일 티켓을 보더니 입장 게이트에서 보여주고 바로 들어가는 티켓이 맞다고 했다. 내가 또 말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소 1이 또 중간에서 이거 보여줘도 안 들여보내준다고 하는 것 같고 뒤이어 뭐라고 뭐라고… 영어로 말이다. 내 아들이 어디서 이런 외국어 실력을?
담당자가 웃더니 매우 친절한 미소로 관계자 바코드 같은 걸 내 핸드폰 메시지로 보내줬다. 소 1이 당당하게 이거 보여주면 입장 가능이라면서 다시 입장 게이트로 갔다. 5분 만에 통과. 내 아들, 늠름하구나. 잘 키웠네. 잘 키웠어.
다행히 1회 막 시작한 후에 우리 좌석을 찾아 앉을 수 있었다. 야구장 구조를 전혀 몰랐던 나는 완벽한 땡볕 아래 앉는 좌석을 예매한 것이었다. 눈 위의 눈부심만 빼면 자리는 좋았다고 위안하자. 이미 입장 전부터 지쳐 있던 소 2와 입장 실랑이로 심신이 지친 나와는 달리 소 1은 땡볕 아래서 1회부터 9회까지 단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경기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양키즈 메인 선수들 이름과 키 몸무게 타율 등등을 알고 있었다는 것. 애런 저지 선수(당시 4번 타자)가 나왔을 때는 뭐랄까 매우 감동적인 표정이었달까?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저 선수 유명한 사람이야?"
"엄마. 쉿. 경기 집중해야 해."
"음… 알았어."
아들의 강렬한 시선에 나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오빠의 흥분과 집중과는 달리 소 2는 1회가 끝나기도 전에 너무 덥고 뜨거워서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화장실 가자, 음료수 사달라, 치킨이 생각보다 맛이 없다. 언제 끝나냐… 우리 딸의 참을성은 햇볕과 함께 증발 중이었다.
6회쯤에서 소 1을 설득해서 집에 가고 싶었지만, 진지한 옆모습, 본인은 전혀 덥지도 뜨겁지도 않는다는데…. 결국 우리는 9회 말까지 모두 보고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 소 2 로망 이루기-드림웍스 워터파크
"엄마가 여름방학 때 미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미국 알아요. 어린이집에서 배웠거든요. 자유의 여신상 있는 데잖아요.
그렇지만, 아빠는 안 간데요. 잘 때 좀 무서울 것 같아서 아빠랑 같이 가고 싶어요.
그리고 엄마랑 여행 가면 좀 힘들거든요?
많이 걷고 뭐 보라고 자꾸 설명하고. 나는 집에서 슬라임 만지고 놀고 싶은데요.
그런데 엄마가 뉴욕에 가면 쿵푸팬더가 있는 워터파크가 있다고 했어요. 저 워터파크 엄청 좋아하거든요. 저 캐리비안 베이도 가봤어요. 튜브를 타고 둥둥 떠다니면 정말 기분이 좋거든요. 오빠가 워터파크 가면 잘 놀아줘요. 워터파크라면 꼭 가고 싶었어요.
뉴욕에 도착하고 매일매일 엄마한테 워터파크는 언제 가냐고 물어봤어요.
저는 뉴욕에 도착하면 워터파크부터 가는 줄 알았거든요.
매일 아침마다 엄마한테 오늘 워터파크 가냐고 물었는데, 엄마는 늘 오늘은 아니라고 했어요. 미술관이랑 잘 따라다니고, 식당 가서 음식도 잘 먹고, 라이온킹 뮤지컬도 재밌게 보면 간다고 했어요. 저는 일단 워터파크부터 가고 싶은데.
드디어!! 워터파크 가는 날이 정해졌어요. 엄마가 고속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고 했어요.
워터파크 문 여는 시간에 맞춰서 들어가야 하루 종일 오래 놀 수 있다고 아침 일찍 일어났어요. 엄마는 늘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무섭게 굴어요. 손은 꼭 잡되, 말 시키면 짜증 냈어요. 그렇지만, 오늘은 워터파크에 가는 날이니까 엄마랑 싸우면 사고 싶은 걸 못 살 수도 있고, 워터파크에 안 갈 수도 있으니까 꾹 참았어요. 생존을 위한 전략적 판단이었죠.
드림웍스 워터파크는 실내였다는 걸 도착하고 알았어요. 약간 실망할 뻔했는데, 생각보다 넓어서 신기했어요. 실내파도풀도 있는데, 캐리비안 베이처럼 깊지 않아서 안쪽까지 들어갈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엄마가 웬일로 잔소리 없이 나를 다 따라다녀줬어요. 아마도 오늘만큼은 내 날이란 걸 알아서겠죠?
높은 데 올라가서 큰 튜브를 타고 내려오는 놀이기구도 탔어요. 올라갈 때 조금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오빠가 하나도 안 무섭다고 해서 참고 탔어요. 엄청 무서웠지만,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왔어요. 엄마가 아래 도착하자마자 나보고 대단하다고 해서 눈물이 찔금 난 건 숨겼어요. 내려오고 보니까 재밌었던 것도 같아요. 오빠가 또 타러 가자고 했지만, 나는 싫다고 했어요. 웬일로 오빠가 알았다고 내가 가고 싶은 대로 가자고 했어요. 야구장에서 오빠의 시간을 충분히 존중해 줬으니, 오늘은 내 차례인 거죠.
여기에도 캐리비안 베이처럼 유수풀이 있어서 튜브를 타고 둥둥 떠다녔어요. 2인용 튜브도 있어서 오빠랑 같이 팀이 돼서 엄마에게 물공격을 했어요. 엄마는 자꾸 좀 쉬자고 했지만,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물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고 오빠랑 놀았어요. 야구경기에서 집중했던 오빠처럼, 나도 워터파크에선 지칠 줄 몰랐어요.
얼마 안 논 것 같은데, 곧 끝난다고 했어요. 엄마한테 핸드폰 시계를 보여달라고 했는데 6시가 조금 안 됐어요. 왜 이렇게 빨리 끝나는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지금 안 가면 버스를 놓친다고 해서 조금 기분이 안 좋았어요. 택시 타고 가면 되는데. 어른들은 늘 이상한 규칙을 만들어내요.”
(드림웍스 워터파크 운영시간: 오후 12:00~오후 6:00, 우리는 11시에 도착해서 12시 땡 하고 들어가서 5시 50분까지 단 한 번도 쉬러 나오지 않고 놀다가 나왔다. 아이들의 에너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