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_청춘의 유산
나의 그 시절, 너의 이 순간
by Rooney Kim Jul 29. 2019
때는 군대를 막 제대한 직후, 스물두 살의 7월, 딱 지금 이 시기였다.
제대를 하면 온 세상이 내 것이 되는 줄 알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았고, 복학 전까지 한 학기 동안 알바라도 열심히 해서 집에 보탬이 되기 위해 당시 인기가 많았던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빙 알바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창 어렸던 그 시절, 지금은 사라진 베니건스의 대구 황금점에서 제대 직후 나의 젊음을 불태웠다. 서빙 알바라는 게 어떻게 생각하면 그저 주문만 잘 받고 음식만 잘 가져다주면 되는 줄 아는 분들이 있을 텐데 사실, 서버의 역할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잠시 서버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자. 우선, 서버는 레스토랑의 얼굴이다. 즉, 홀로 들어오는 고객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교감하며 응대하는 역할로, 뛰어난 센스와 빠른 대처 능력이 중요한 자리다. 그리고 패밀리 레스토랑의 특성상 메뉴 주문 후, 식전 빵, 음료, 애피타이저 또는 스타터, 메인 메뉴, 이후 주문 음식 반응 확인(Check back이라고 함), 중간중간 응대, 식후 접시 처리 여부, 디저트, 계산 그리고 재방문 요청 등 한 테이블 당 꼭 해야 할 들이 순서대로 있을 뿐 아니라 이 외의 모든 예상치 못한 일들을 밝은 표정으로 처리해야 한다.
홀 응대는 음식의 맛 다음으로 중요한 레스토랑 서비스의 핵심이다
# 즐거운 기억
베니건스의 서버로 일하면서 수많은 가족, 연인 손님을 응대했고, 수많은 외국인 손님도 맞이했는데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 있다. 하루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흑인 커플을 유독 잘 챙겨드렸는데, 정장의 덩치 큰 흑인 남자분이 식사를 다하고 나가며 악수를 청하셨다. 난 그저 ‘그냥 잘 챙겨드려서 인사를 하시려나보다’ 했는데 악수를 한 손 안으로 까끌까끌한 지폐가 느껴졌다. 그래서 그를 슬쩍 봤더니 싱긋 웃으면 눈인사를 하고 나가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팁을 쪽지로 접어서 나한테 몰래 챙겨준 것이었다. 팁 문화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팁을 받는 기분이란.. 뭔가 보람찬 하루였다.
어떤 날은 당시 한창 상승세였던 이승엽 선수를 응대하기도 하고, 어린이 손님의 생일로 온 가족들에게 토끼 인형 탈을 쓰고 축하하러 나갔다가 그 어린이가 겁에 질려 우는 바람에 급하게 퇴장한 적도 있었다. 또, 하루는 동네 친구들로 보이는 젊은 엄마 무리가 각자 애들과 점심을 먹으러 온 적이 있었는데, 놀이방으로 신나게 뛰어가던 애들이 신발을 벗고는 모두 다 자기 신발을 돌려 가지런히 정리하는 모습에 감동받아 그 젊은 엄마분들께 지점장님 몰래 수프, 빵, 음료를 더 서비스한 적도 있었다.
레스토랑은 실로 다양한 부류의 손님이 오는 곳이다. 그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일은 서버의 몫이다십 여 가지가 넘는 알바를 왔지만, 가장 오랫동안 한 곳에서 알바를 한 곳이 패밀리 레스토랑이라서 그랬을까, 어느새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베니건스에서도 그랬고, 요즘도 자주 가는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를 방문할 때마다 이미 15년이 지난 그 시절의 나와 함께 일했던 알바 동료들이 떠오른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특성인 유니폼, 손님 대응 방식, 종종걸음으로 분주한 각각의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어쩜 그리 그 시절의 내 동료들과 비슷한지, 그들 눈에 난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손님 일 뿐이겠지만, 내 눈에는 그들이 어떻게 일하고, 얼마나 노력 중인지 잘 알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안쓰러움과 공감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한다.
# 과거의 나, 현재 그들
지난 주말, 오랜만에 패밀리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여전히 분주하고 친절한 서버들을 보며 어김없이 나의 옛 시절이 떠올랐다. 테이블 앞에 쪼그리고 앉아 주문을 받고, 이것저것 다양한 요청과 추가 주문에도 싱긋 웃어 보이며 종종걸음으로 바쁜 그녀를 보니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문한 메뉴도 시간에 맞게 잘 나왔고, 추가적인 요청에도 제때 응대했으며, 식사를 하는 동안 주문한 음식이 괜찮은지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디저트는 물론, 계산 후 빵까지 넉넉하게 챙겨줬다. 그래서 같이 밥을 먹은 와이프와 친형도 매우 흡족해했고, 계산하는 동안 와이프가 그 직원을 칭찬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해당 직원을 이름을 물어본 뒤, 칭찬 글을 남겼다. 글을 남기는 동안, 그 소식을 들었는지 그 직원이 쪼르르 달려오더니 넙죽 감사 인사까지 하고 가는 바람에 우리 역시 기분이 더 좋아졌다. 그리고 며칠 후 아래와 같은 이메일을 받았다. 역시, 칭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도 맛이지만, 직원들의 서비스가 좋을 땐, 맛과 상관없이 기분이 좋다. 아마도 내가 서버 출신이라 그런 듯 하기도..그렇게 그들은 지금 그들만의 방식으로, 과거의 내가 그랬듯, 그들 젊음의 단면을 땀과 정성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과거, 내가 했던 그 알바와 비슷한 일이지만, 난 한 번도 가르쳐준 적 없는 그 일을 하는 그들을 보며 동질감을 느끼고 공감하며 보이지 않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 내가 직접 물려준 적은 없지만 사회가 물려준 유산을 받아 각자 다른 젊음의 시간을 불태우며, 그렇게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언젠가 시간이 흘러 자신의 직업이 생기고 친구들과 연인과 또, 가족과 어느 레스토랑에 방문하게 되면 지금 내가 느꼈던 그 동질감과 안쓰러움을 느끼리라. 그리고 자신은 알려준 적 없지만 기꺼이 척척 잘 해내고 있는 젊은 서버와 아르바이트생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연결되는 청춘의 유산을 느끼며 이에 천천히 스며드는 잔잔한 감동과 감사를 느끼리라. 우리의 모든 삶과 시간이 하나하나의 사람을 통해 예부터 미래로까지 그렇게 연결되어 흘러가듯이.
굳이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전달되는 청춘의 유산, 이를 통해 과거의 나를 보고, 그들은 미래의 그들을 길러낸다
[이미지 출처]
*칭찬 글 피드백: 직접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