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가치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천상의 시인, 천상병 형님께서 행차하셨습니다

by Rooney Kim


나이가 들수록 느끼실 겁니다. 하루는 긴 것 같은데 또 일주일은 금방 지나가고, 계절의 변화는 체감하기도 전에 바뀌어버리고, 나무가 옷을 갈아입는 속도보다 내 일상이 더 바빠지는 나날들이 겹겹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인생의 중반을 훌쩍 넘기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점점 더 적어지는 나이에 화들짝 놀라곤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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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이를 지긋이 잡수신 노인들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지요.

'세월이 언제 이렇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어제가 마치 어린 시절 같은데..'


그렇다 보니 우리의 조상 중, 이런 우리의 고단하지만 또 즐거운 삶을 '소풍'에 비유하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의 영혼은 불멸한데, '삶'이란 건 잠시 잠깐 육신을 빌려 지구라는 행성에 소풍을 온 것이라는 시적인 표현으로 유명하신 민족 시인, 다들 아시지요? '시인 천상병 님'이십니다.




아구, 참, 네, 안녕하세요? 천상병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세상에 나오니 개운하고 기분이 상쾌하네요. 분재 사장이 제 고등학교 후배인데, 원래 일면식도 없는데 갑자기 쉬고 있는 날 깨우고는 좋은 말씀 한마디 하래서 이렇게 이승에 잠시 들러봅니다.


제 시는 모두 읽어 보셨나요? 잠시 한 번 다시 감상하시지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귀천(歸天)’, [새]


사실, 이 시는 노자와 함께 도가 사상의 대가인 장자의 '만물 일체론' 즉, '삶과 죽음은 하나다. 따라서 모든 얻는 것은 잃는 것으로부터 오기에 기뻐도, 슬퍼도 흔들리지 말라'라고 한 삶에 가장 가까운 시입니다. 현대를 사는 여러분들은 제가 살아냈던 일제강점기, 6.25와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의 큰 고통은 없었을지언정 고도로 개인화된, 치열한 경쟁이 일상인 사회 속에서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건 이 시대 현대인들이 직시하고 있는 만만찮은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들에게 '삶의 가치'는 과연 무엇일까요? 돈, 성공, 명예? 또는 안정적이고 여유 있는 삶? 좋습니다. 모두 좋아요.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그 삶도 뚜렷한 성과와 결과들로 묵직하게 채워지겠죠. 하지만, 그런 삶을 살아내려면 싸워서 쟁취해야 할 것이 많아질 겁니다. 물론, 개개인이 인생에서 투쟁해서 얻어낼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긴 하지요. 그 덕분에 적어도 자신과 가족의 삶을 건사했다면 정말 칭찬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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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과정은 정말 혹독할 겁니다. 말도 안 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사건으로 인한 '화', '분노', 갈등', '다툼', '원망'은 어디를 가든 발생할 것이고 또 누구를 만나도 언젠가 한 번은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거예요. 하지만 그만큼 또 갈등이 해소되고, 사이가 좋아지고, 웃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날들도 많긴 하겠지요. 제 요지는 이겁니다.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건 우리의 선택이지만, 너무 그 '가치'에만 신경을 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가치란 공기와 같은 겁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그저 '핑계' 같은 게 가치입니다.


상처 받지 말고, 무시할 건 무시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21세기를 살아가는 여러분들, 제가 지금 인생 선배로써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겁니다. 여러분도 다시 하늘로 돌아갈 때쯤,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렇다면 제가 보기엔 성공한 삶일 겁니다. 아무렴 그렇지요. 지금 치열하게 살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모두 각자의 속도를 가지세요. 그런데 그 속도가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그 속도와 무게 때문에 내가 내 가족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건 아닌가, 그걸 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답이 나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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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권력도, 주목받지 않은 삶도, 돌아갈 때는 매한가지입니다.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고,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요? 본인의 그릇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도 큰 용기이고, 멋진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얼마나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하나의 영혼으로 남는가'입니다.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그럼 저도 이만 하늘로 돌아갑니다. 다시 돌아와 보니 아직도 세상은 아름답네요. 허허허, 관점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zangzs/220558793511

https://unsplash.com/s/photos/pic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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