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삶은 그저 자신의 정의에 대한 끝없는 투쟁이니

헤르만 헤세 형님의 철학적인 메시지입니다

by Rooney Kim

종종 그럴 때가 있지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거쳐 앞으로 내가 할 일은 어떤 것일까 등등. 그리고 갑작스레 스스로에게 주어진 질문에 쉬이 답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답답함도 느껴보았겠지요. 하지만 그러는 동안 스스로 자신의 내면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집중할 수 있으니, 답이 없는 고민이지만 이 역시 필요한 시간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저 역시, 매 순간 일어나는 나 자신 그리고 외부 세계와의 갈등과 전투로 지난 수년간 지쳐있었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치열한 자기 성찰로 한 인간의 내면이 세상과 갈등하고 성장하여 마침내 어떻게 합일점에 이르는가에 대한 소설로 유명한 형님을 모셨습니다. 1차 세계대전 전후 문학의 거장, '데미안'의 헤르만 헤세 형님입니다.


헤세의 그림, 호수 골짜기의 풍경




반갑소. 헤세라고 하오.

많이들 힘들죠? 살아가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건 이미 한 생을 살아본 사람으로서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다오.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건 가끔 지독한 형벌을 받은 죄수 같은 기분도 들게 해 줄 거요.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크고 작은 문제는 물론, 시간이 흐르며 늘어난 가족의 수만큼 책임감이 짓누르는 하중이 만만치 않을 거거든. 아무렴, 잘 알지. 나도 그랬다오. 여러 크고 작은 갈등을 버티고 싸우고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개인의 삶은 너무나도 힘들거든. 그래서 전 인류가 처음 겪은 지옥이었던 1차 세계대전 중 이와 관련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오.


데미안,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는 마법의 언어


그리고 마침내 전쟁이 끝나던 해인 1919년에 '데미안'이 나왔고,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오. 이유인즉, 전쟁을 겪으며 상실된 인간으로서의 삶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시각이 완전히 현실적으로 변했는데, 내 글은 너무나도 신비적이고 환상적인 묘사로 가득 찼었거든. 그런데 사실 거기엔 다 이유가 있었다오. 보통, 큰 전쟁이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때, 개인의 삶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지. 거대한 권력의 충돌에서 결국 '인간 하나'는 너무나도 나약하고 쓸모가 없어 보이거든. 그래서 난 그 거대한 세상은 한 사람이 맞서 싸우기엔 너무나도 힘들다는 걸 알기에 오히려 그런 환상적인 문체를 사용했어. 그럼 마치 마법의 힘을 얻을 것 같은 착각마저 들기 때문이야. 그래서 아마, 여러분들도 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거요.


'진정한 나로, 나의 삶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사는 것'


그리고 이를 내포하고 있는 구절을 내 책인 '데미안'에서 찾아볼 수 있지.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그런데 보통 이런 생각은 빠르면 사춘기부터, 늦으면 스무 살 정도 되면 하기 시작하지. 그리고 곧 난관에 부딪히게 되.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구나.' 하지만, 적어도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것은 '진정한 독립된 인간'으로 거듭났다고 볼 수 있다오. 즉, 이는 누군가의 세계(부모님)에 갇혀서 지낼 것인가 자립하여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볼 수 있지.



그런데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란 말이오. 삶을 산다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과의 반복이라고 볼 수 있지. 이런 인식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여러 집단(가족, 친구, 학교, 회사, 모임 등)에서 수많은 갈등과 마주하게 될 거요. 그리고 이는 곧 새로운 세계와의 충돌과 극복이라는 단계가 남아있는 것을 상징한다오.


"새는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결국 가장 큰 투쟁 상대는 자신



우리가 매번 부딪혀 싸워 이겨내야 하는 건 어쩌면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는 '엄마와의 다툼, 상사와의 의견 충돌, 친구와의 마찰'이겠지만, 그런 마찰은 보통 절충하거나 설득하는 등의 단계에서 해결될 수 있소. 하지만 여기서 의미하는 진정한 투쟁은 누군가와 싸워이기고 승리해야 하는 1차원적인 단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오. 어쩌면 조금은 더 철학적인 단계로 들어가야겠지. 즉, 타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보였던 개개인의 삶의 단면은, 사실, 타인이 아닌 '자신과의 투쟁'이라는 말이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의견에 집착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 때문에 타인과 부딪힌다는 사실을 인지하길 바라오.


나와는 다른 누군가.

내 가족, 친구들, 학교 및 사회 구성원들 등 이 사람들은 아마도 거의 모두가 당신과는 다른 사고와 철학을 가진 타인 들일 것이오. 그렇기에 집안일, 학업, 업무, 취향, 취미 등등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것부터 중요한 일까지 이를 대하고 처리하는 방식이 다를 텐데, 그럴 때마다 그들과 부딪히는 이유는 타인과의 차이점이라기 보단, '내가 고집하고 있는 무언가'때문에 그들과 충돌한다는 것을 인지하길 바란다는 말이오. 결국, 나 자신을 설득할 수 없기에 나 이외의 사람들과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문제들이나 합의점이 나오는 것인데,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과연 내가 혹은 내 방식이 옳은 가'에 대한 고민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오.



따라서, 매번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고 결국 갈등에 부딪히지만, 가끔은 어떤 집단, 어떤 사람과는 전혀 갈등이 없는 경우도 있을 거요. 마치, 누군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나와 비슷한 세계관 내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보면 당신은 마침내 그곳에서 정착하고 싶지않겠소? 아마도, 그 세계는 이미 나와 같은 단계이거나, 내가 마침내 그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고, 또는, 여러분이 자신과의 투쟁에서 합의점을 찾은 거겠지요.


그렇게 언제까지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그 세상마저 깨고 나가야 하는 단계가 오고야만 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그래서 삶은 결국 타인의 세계가 아닌 본인이 타인과 만날 때 가지고 있는 '자신의 철학, 사고관, 신념과의 끝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라오. 재밌는 사실은 이를 빨리 깨달을수록 삶의 투쟁 횟수도 줄어든다는 것이지. 하하. 그럼 안녕히 계시길.




[이미지 출처]

https://shyea123.tistory.com/49

http://www.hobanartrium.com/official.php/home/info/2253

https://unsplash.com/s/photos/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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