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인생이 어떤 시절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마도 삶이 팍팍하고 재미가 없으니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별다른 큰 일없이 무난한 태평성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혹시, ’ 리즈 시절’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대부분 남자들은 알 겁니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뛰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왕자님 같은 외모로 수많은 여성 팬을 거느렸던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선수였던 ‘앨런 스미스’ 선수. 그 선수가 인터뷰에서 과거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리즈 유나이티드’ 시절을 자주 언급하는 바람에 많은 팬들이 ‘리즈시절의 스미스’는 엄청났다는 말에서 비롯되어 ‘전성기’, ‘황금기’를 뜻하는 말이 되었죠. 물론, 앨런은 그 이후, 노츠 카운티에서 부감독을 맡았다가 2018년에 은퇴를 (사실상 방출) 했다죠.
수백 억의 자산가가 되고, 명성을 떨치고, 높은 관직에 오르는 등 ‘보통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은 이렇게 극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칭송받으며 누리는 ‘희귀한 삶’입니다.
그렇다면 사실상 우리 모두에게는 그 어떤 리즈시절도 오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과연, 보통 사람에게 '리즈 시절'이란 누리기 힘든 사치에 불과한 것일까요? 오늘은 우리 민족의 ‘자유로운 영혼’을 대표하는 형님을 모셔봤습니다.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김삿갓 형님이십니다.
안녕하시오? 김삿갓 이외다.
혹시 누구, 술이나 약과 가진 거 있으면 내가 시를 한 조 읊조려드릴 테니 꺼내보시오. 하하하, 농이오. 오늘은 수백 년이나 후배인 우리 민족 동생들을 위해 무료로 이야기를 풀어보리다. 보통 사람들은 나를 ‘김삿갓’, ’ 김립’이라 부르지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또 내가 전래 동화 속의 인물로 알기도 하던데, 난 조선 후기 1800년대에 실존했던 사람이라오. 성은 김가요, 이름은 병연, 김병연이었다오.
김삿갓, 방랑의 시작
그런데 내가 왜 삿갓을 쓰고 전국을 돌게 되었는지, 궁금하오? 그렇다면 한번 들어보시오.
젊은 시절, 장원급제 후 기쁨에 부풀었던 나는 집안에 보탬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집으로 돌아갔다오. 하지만, 장원 급제했던 나의 글 내용을 집 안 사람들에게 알려준 뒤, 이내, 집안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이후 속죄하는 마음으로 전국 팔도강산을 떠돌기 시작했다오.
자초지종은 이러하오, 나의 조부였던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의 난 당시에, 홍경래에게 항복하면서 연좌제의 의해 집안이 망했소. 당시 6세였던 나는 하인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을 받아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는데, 하도 어릴 때라, 이런 전후 상황은 몰랐는데, 나중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소. 그런데 이를 안 어머니가 슬피 우시는 게 아니겠소? 그리하여 상황 판단이 다 된 뒤에 ‘조상을 욕보인 죄스러움과 절망감’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볼 수 도 없는 죄인이라는 생각에 큰 삿갓을 쓰고 김삿갓이라 칭한 뒤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오.
갓 태어난 아이와 아내 그리고 홀어머니를 두고 떠나는 제 발걸음이야 오죽 무거웠겠냐만도, 당시 저는 스스로에 대한 모욕감과 할아버지와 집안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나도 컸기에 달리 좋은 방법이 없었다오.
손에는 지팡이 그리고 주머니에는 엽전 일곱 푼이 전부였지만 이 역시 사치스럽게 느껴졌다오.
그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주막과 남의 집 문 앞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때로는 감사함에 시를 읊고, 때로는 서러움에 시를 쓰며 지냈다오. 하지만 덕분에 팔도강산 경치를 안주로 술 한 잔 들이켤 때에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기도 했소. 그렇게 전국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사는 게 다 비슷하더이다. 있는 놈들은 더 가지려고 착취하고, 없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버티고 버티며 생을 이어가는 모습. 하하하, 그래서 나란 놈도 그렇게 살아지는 날까지 살았다오. 대부분 사람들의 삶이 가진 것 없이 평생을 노동하고 품삯을 받는 삶이니, 꾸준한 위로가 필요하지 않겠소? 그래서 그들을 위해 가진 자와 관직에 있는 이들을 풍자하고 조롱하는 글을 쓰며 서민들을 달랬지. 그건 지금 당신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도 마찬가지일 거요.
그대 삶의 기준은 그대가 정하는 것
리즈시절이라.. 이거 영어와 한자의 합성어 아니오? 요즘엔 한글이 외래어와 합쳐지면서 한글이 더 풍성해진 것 같아서 좋구려. 아무튼, 내 삶을 돌아보면, 때로는 산속에서 자다 호랑이에게 쫓기고, 산적에게 가지고 있던 짐마저 빼앗기는 험난한 삶이었지만,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에서 진리를 터득하였으니,
내게 리즈시절은 ‘장원급제’했던 한 순간이 아닌, ‘평생을 떠돌며 자유롭게 배운 시간들’ 모두가 리즈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겠구려.
그대들은 어떻소? 그대들의 과거에 이미 리즈시절이 지나갔소? 아니면 아직도 리즈시절을 기다리고 있는 거요? 혹시, 스스로 생각하는 리즈시절에 대한 형식이나 기준이 있소? 만약, 그렇다면 그 기준을 잠시만 내려놓고 내가 쓴 아래의 시를 한 번 읽어보시오.
죽*시(竹詩)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이대로 살아가고
옳으면 옳거니, 그르면 그르거니 하고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하고
시장에서 사고팔 때는 시세대로 하세.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안 되니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살아가세.
삶의 기준이라는 게 참으로 희한하오. 내가 높게 잡으면 나의 삶이 힘들어지고, 낮게 낮추면, 내 삶의 무게나 가치가 떨어져 보이지. 당신의 리즈시절? 그건 당신의 선택에 달렸소. 유유자적하는 삶을 바라서, 돈이나 직책에 욕심이 없다면 내 한 평생이 내 리즈시절이 될 수 도 있는 거고, 아니면 돈을 많이 번 순간, 높은 자리에 오른 순간 등 이루기 힘든 순간들만 리즈 시절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직 삶의 짧은 순간만 리즈시절이 될 수 도 있단 말이오.
내 비록, 괴로움에 시작한 팔도 떠돌이 인생이었지만, 돌아보면 유랑하던 시절 내내 ‘내 리즈시절’이었소. 밥도 먹고, 시도 쓰고, 그러다 보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중에는 전국적인 인기도 저절로 얻었으니 어찌 힘든 인생이었다고 하겠소? 그러니 여러분도 이제 잘 선택하길 바라오.
마지막으로 당시 나의 처, 내 아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많이 늦었지만 나 때문에 힘들었을 당신들의 삶에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하오. 이제 와서 돌아보니 난, 비록 괴로운 마음은 있었지만, 내 삶을 이래저래 지내며 삶 내내 '리즈시절'이라고 여겨질 만큼 즐겼지만, 그대들은 남편 없이, 아빠 없이, 아들 없이 보낸 세월이 얼마나 가슴 아팠을지, 죽은 이후에도 미안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오. 내 언젠가는 꼭 갚으리다.
[이미지 출처]
[김삿갓 역사 정보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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