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과연, 우리의 경험은 진실한가
마르코 폴로 형님의 경험담을 들어보았습니다
by Rooney Kim Jul 26. 2020
학교와 사회에서 경험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아마 이런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모든 해답은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요. 우리는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실제로,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식은 ‘산 지식’으로 불리며, 우리의 뇌리에 깊숙하게 박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종종 이게 문제가 됩니다. 본인의 경험은 하나의 깨우침일 뿐인데, 나이가 들수록 그게 ‘정답’인 마냥 착각하고 이를 고집하는 성향이 더 선명하게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경험’의 대가인 형님을 모셔서 과연, 경험이 무엇이고, 나의 경험이 옮은가에 대한 해답을 들어보겠습니다. 13세기 서양에서 동양을 탐방하고, 저명한 ‘동방견문록’을 남기신, 마르코 폴로 형님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동양에 청춘을 바쳤던 모험꾼, 마르코입니다. 당시, 황제였던 쿠빌라이 칸이 세상사가 궁금해 제게 명을 내리면서 시작된 기나긴 여정은 제 고향인 베네치아부터 바그다드, 페르시아, 아무다리야 강, 파미르 고원, 타클라마칸 사막 등을 지나 오늘날의 중국, 간쑤성 서부 오아시스 지대까지 이르렀습니다. 이후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24년이 걸렸으니 실로 제 젊음과 인생을 바친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죠.
동방견문록의 원제는 ‘세계의 기술’입니다. 즉, 세상사를 기술한 거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제 이야기가 윤색되고 과장된 이야기가 많다거나, 제 구술을 받아 글을 쓴 루스티첼로는 글쟁이라 뻥튀기된 내용이 많아서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게다가 다른 언어로 번역되면서 상상력이 더해졌다는 말도 있었답니다. 그래서 제가 죽기 전에 친구들이 제 영혼의 안식을 위해 ‘동방견문록’에 실린 이야기들에 언급하며, 죽기 전에 거짓말한 것에 대해 회개하라고까지 했지요. 나원 참. 하지만 전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내가 본 것들의 절반도 다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말이죠.
24년간, 실크로드, 원나라 보호 하의 중국 탐험, 일본,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대부분 지역 모험하며 전 제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이는 세상과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저만의 믿음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는 콜럼버스 등 후세대 탐험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죠. 경험은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특히, 자신의 직접 겪은 경험은 더더욱 그러하죠.
경험의 변질, 편견과 편향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경험을 하는 순간, 머릿속에 굴레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다른 정보들과 조합되어 나만의 정보로 치환됩니다. 이는 곧, 하나의 해법이 되어 잣대가 되고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이 기준의 다른 말은 편견 또는 고정관념입니다. 특정 경험을 하는 순간부터 이는 어떤 것,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 비난하거나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아 거참, 음식 먹을 줄 모르네."
"이런 일은 이렇게 해야 해. 다들 그렇게 해왔거든."
"이런 날씨에는 이런 류의 옷을 입어야죠. 상식 아닌가요?"
"내가 가봤는데, 내가 해봤는데, 내가 먹어봤는데 말이야."
물론, 모든 경험을 부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잣대가 만들어지는 데는 두세 번의 경험이면 충분합니다. 고작! 고작 두세 번의 경험으로 ‘그건 그렇고, 이건 이렇다’는 기준이 만들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설파하고 때론 공격한다는 말입니다. 직접적인 ‘경험’은 강렬한 자극이기에 ‘나는 이것을 경험했고, 그래서 그것은 이렇다.’는 법칙은 뇌리에 강하게 박혀버립니다.
그런데, 사실, 그 경험은 겨우 두세 번에 불과합니다. 무언가 제대로 된 규칙이나 답변이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표본이 있는 설문 조사를 거치거나, 오랜 기간의 임상 시험 기간을 보내거나, 이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오류나 오답에 대한 검증 및 책임에 대한 대응이 마련된 뒤에나 ‘사실, 그것은 이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 모두는 우리 삶에서 겨우 두세 번의 동일한 경험을 거치면 ‘그것은 진리’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것이죠. 아마, 본인 또는 타인을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많이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내가 어, 그거 해봐서 아는데, 어, 이래저래 하면 된다. 내가 겪어 봤다니까.’
경험과 판단, 당신의 추억 속에 넣어두길
보통 사람들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합니다. 남의 사소한 티끌은 큰 잘못으로 보이나 본인의 중대한 과실은 사소한 실수로 여기기도 하죠. 이는 자기 객관화가 이렇게 어렵고 메타인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증거가 됩니다. 경험도 마찬가지입니다. 타인의 경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또는 그저 그 사람만의 경험일 뿐'이나, ‘나의 경험은 매우 경이롭고, 신비로우며, 놀라운 발견’에 가깝다고 여기는 것도 비슷한 이치입니다.
경험하고 느끼고 깨닫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나의 짧은 경험으로 만사를 판단하여 이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게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을 뿐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본인의 평소 언행습관을 돌이켜보세요.
"난 아무런 잘못이 없어."
"난 잘하고 있어."
"난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어."
"단, 내 주변 사람들이 나의 기준을 못 따라와 주는 것일 뿐이야."
만약,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대는 '내로남불'하며 편향된 사고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있을 확률이 99.99%에 가깝습니다. 당신의 그런 편협하고 어리석은 판단과 한마디에 여러 사람이 고통받고 실망하며 떠나가는 걸 잊지 마세요. 당신의 경험은 그저 한 순간에 사라지는 구름과 같은 허상일 뿐,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진정한 지혜와 혜안은 사람들을 '특정 기준(보통 자신의 경험)'으로 판단하는 게 아닌, 각자의 개별 개성과 성향을 존중하는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경험은 하나의 점에 불과합니다. 점으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마세요. 적어도 그 점들이 쌓여 한 장의 면이 되었을 때 그제야 수줍게 자신의 소신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그럼, 앞으로 남은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정, 안전한 여행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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