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당신의 기쁨은 누구에게 달려있나요

피타고라스 형님의 충고를 들어보았습니다

by Rooney Kim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면 평소의 취미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됩니다. 저는 분재가 업이다 보니 다양한 식물들을 키우고 길러내며 여가를 보내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독서도 좋고 산책도 좋고 무언가 만들고 공부하는 것도 좋겠지요. 그런데 취미생활도 시간이 흐르며 바뀌게 마련이라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한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예전엔 누구누구와 이걸 같이 하는 게 삶의 낙이었는데, 이제 같이 할 사람이 없네’ 혹은 ‘이젠 재미가 없네.’


와 같은 감정 말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삶에 대한 헛헛한 감정과 함께 옛 생각에 잠기곤 하죠. 오늘은 이에 대해 할 말이 있으신 형님 한 분을 모셨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피타고라스의 정리의 주인공, 피타고라스 형님이십니다.




안녕, 여러분. 난 BC 580년 경에 태어난 피타고라스 야. 너무 옛날 사람이니 반말로 해도 이해해줘.

난 신비주의를 믿는 사람이야. 영혼의 불멸, 윤회 그리고 다른 동물로의 이전을 믿는 사람으로서 영혼으로 지낸 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나의 믿음은 진실이 되었지. 뭐, 죽어보면 알 거야.


우리 시대에는 귀족 계층이 곧 권력이었어 권력자들은 세상을 신화로 해석하면서 그들의 삶을 따르려고 했기에 나도 영향을 많이 받았지. 반면에, 난 세상은 수(숫자)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도 깨달았어. 모든 사물을 수로 해석하려 했고 나중엔 음악, 즉, 음계 안에 수학적 정의가 숨어있으며 음률과 음률 안의 화음 등 모든 소리에 수가 숨어있다는 것도 깨달았지. 그런데 내가 만물의 근원이라 믿었던 수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무한대를 발견하고 나니 뭐랄까 신성한 공포를 느꼈다고나 할까.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 경계를 정하고 질서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규칙을 숫자에서 찾기 시작했지. 난 신비주의를 믿는 동시에 수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alvan-nee-T-0EW-SEbsE-unsplash.jpg


재밌는 사실은 이런 상반된 것들에 강하게 영향을 받다 보니까 삶의 많은 것들이 소중하게 여겨지기 시작했어. 내 삶은 물론 타인의 삶, 게다가 주변에 흔히 보이는 동물에게 까지 이런 생각이 전이되었지. 영혼은 불멸한 것이라고 믿으니 이런 생각도 들더군. 혹시 이웃집의 개가 일찍이 돌아가신 내 가족, 친구의 영혼을 받아 태어났을 수도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주변의 동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게 내 삶의 기쁨이 되었지. 마치,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작은 동물들과 놀던 것처럼 말이야.


나이 들수록 좁아지는 기쁨의 카테고리


여하튼 이런 생각의 경지에 이르자 난 오히려 삶 속의 사소한 즐거움과 그 안에서 얻는 만족감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있는 시간과 그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너무 사소해서 무시했던 것들'말이야.


어린 시절을 떠올려봐. 작은 과자 한 봉지, 아직 읽지 않은 만화책 몇 권, 친구들과의 유치하지만 긴장감 넘치는 놀이 등등 그런 ‘사소한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하루는 충만한 기쁨으로 넘쳤어. 하지만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변해갔어? 기쁨을 주는 요소의 값어치와 시간의 범위가 늘어났음을 느낄 거야. 여러분의 삶에 이를 대입해서 다시 회고해봐.


robert-collins-tvc5imO5pXk-unsplash.jpg


초등(국민) 학생 때만 해도 과자 몇 봉지, 장난감 정도에 오감이 만족함을 느끼지, 중&고등학생이 되면 좀 달라져, 친구들 사이에서의 존재감, 우정, 멋진 옷 등 자신보다는 타인에게 보이고 인정받는 것에서 기쁨을 느껴 그런데 이런 기쁨 획득의 주체가 ‘나’가 아닌 ‘타인’에 달려있다 보니 이 시기부터는 관계로 인한 다툼과 갈등으로 많은 고민이 시작돼.


즉, ‘나의 기쁨’이 내 손에 달린 게 아닌 시기가 시작되었다는 거야.
어때, 점점 나의 행복이 멀어지는 게 느껴지지 않아?


그렇게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면 이제 나의 삶의 행복은 쉽사리 이루기 힘든 조건에 달려있어. 성인이 된 이후의 기쁨은 너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누군가와 싸워서 이뤄야 해. 경쟁에서 이겨야 행복의 조건이 달성되고, 실적을 달성해야 연봉과 직급이 오르며, 이 시기에, 이 나이에 관심을 가지고 이루어야 하는 것들도 달라지지. 부동산, 주식같은 재테크 말이야.


게다가, 취미 생활마저 경쟁이야. 성인이 된 사람들끼리 '놀러'간다는 건 '내 경제력', '내 눈썰미', '내 여유'의 자랑을 의미하기도 하거든. 즉, 여러분이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 적절하게 녹아든 ‘사회화된 인간’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야. 그리고 모두들 그 안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다고 믿게 되지


술, 담배도 비슷해. 처음에는 이를 극혐 하던 사람도 '멋있어 보인다(타인의 시선)'는 이유로, '술 취한 기분이 좋다(탐닉)'는 이유로, 또, '스트레스가 풀린다(합리화)'는 이유로 시작하고 습관이 되는 거거든. '이렇게 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 '이걸 못하면 어울리지 못한다.'는 두려움도 한 몫했을 거야. 개인적인 받아들임의 차이라고 볼 수 도 있긴 하지. 그래도 뭔가 탐탁지 않잖아?


내 삶의 기쁨이 타인에 의한 선택은 아닐까


자, 잠깐 뒤를 돌아볼까?


이제 더 이상은 엄마나 친척이 사 온 과자 몇 봉지에 감사하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인근 다른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로의 모험에 들뜨던 마음을 찾기란 어려울 거야. 현실적으로 그런 나이가 아니거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런데 과연 사회 속 개별 집단의 기준이 만들어놓은, 타인의 시선에 따른 기쁨의 추구가 진정한 행복일까? 나이에 맞게, 사회가 원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에 따라 나의 작은 기쁨을 잊고, 개인의 취향은 무시한 채 타성에 젖은 즐거움만을 쫓아야 할까?


이는 개인의 선택이고 취향이니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니야. 그저 나이 들수록 순수하게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사라지는 게 우리의 선택인가 사회의 강요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뿐. 물론, 호르몬도 크게 작용할 거야 그리고 소위, 철이 들수록 취하고 택하는 게 달라지기도 하겠지,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타인의 시선에 의해,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포기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지금도 여전히 당신의 ‘작은 기쁨'이 될 수 있는 것들 말이야.


alvin-balemesa-lJstr7OYCoM-unsplash.jpg


나이 들어가는 우리가 어린 시절 누리던 유치한 기쁨의 맛은, 이를 잃어버렸다기보단 그런 기쁨을 탐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사회의 인식도 크게 한몫 해. 그렇지 않아? 나이들고도 그런 기쁨을 탐하는 게 조금은 우스워보일 수 도 있고 추레해 보일 수도 있으니. 하지만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지금 당신의 삶의 기준이, 기쁨을 추구하는 원천이 '본인'에게 있는지 혹은 '타인'에게 있는지만 잘 구분할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으니까.


난 오늘 어떤 규칙이나 질서를 설파하러 온건 아니야. 그저 나이 들수록 사라져 가는 작은 기쁨들이 알고 보면 지금도 여전히 할 수 있는 것들임에도 애써 이를 부정하고 더 자극적인 기쁨에만 집착하는 늙은이들이 되어가는 여러분들의 현실에 작은 충격을 주기 위해서 온 거야. 이미 바뀌어버린 삶의 기준과 시각은 단단히 고정되어 쉽게 변하지 않겠지만 한 번쯤, 반성하고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기쁨에 대한 기준의 하한선을 조금은 더 낮출 수 있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https://www.injurytime.kr/news/articleView.html?idxno=2268

https://unsplash.com/s/photos/joy

이전 07화#23 보다 중요한 것은 보통, 너무 사소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