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변곡점 08화

당신이 철들었다는 증거

그리고 당신이 잘하고 있다는 증명

by Rooney Kim

시그널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부모님, 가족과 함께 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닐 테니 꼭 동일한 추억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든든한 배경이 가족이든, 형제든 혹은 친척 중 한 분이거나 또는, 혈육은 아니지만, 어떤 분을 통해 혈육만큼의 사랑이라는 자양분을 받고 자랐다면 분명, 삶의 어느 시점에 가슴을 울리는 신호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신호라는 것은 가령 이러하다.


'드라마를 보는데 주인공의 상대방의 관계가 마치, 엄마와 자신 혹은 큰 이모와 자신과 비슷하다.' 거나,
'소설을 읽는데 한 등장 인물의 역할이 자신의 어린 시절, 할머니나 할아버지와 비슷하다.' 거나,
'라디오 청취자의 사연을 듣는데, 마치, 무뚝뚝하지만 은근히 뒤에서 모든 것을 챙겨주셨던 아빠와 비슷하다.'


는 식으로 전혀 예상치 않은 순간에 갑작스레 훅하고 치고 들어와 타성에 젖은 채,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내던 가슴에 소나기를 뿌리는 것 말이다.


만약, 당신이 학생이라면 이런 감정의 시그널은 ‘그저 부모님에 대한 감사’ 정도로 이어지며 엄마에게 톡 하나 보낼 정도겠고, 당신이 직장 생활을 한지 얼마 안 된 사회인이라면 ‘이렇게 힘든 사회생활과 남의 돈 벌기’를 수 십 년째 해내신 혹은 하고 있는 그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릴 것이며, 또 만약, 당신이 결혼을 했거나 혹은 이미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만한 나이라면 ‘그들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노고에 대한 눈물겨운 감사’와 더불어, ‘어쩌면 언제가 될지 모를 마지막 이별’에 대한 걱정의 첫 시그널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에 접어들게 되면, 평소라면 TV에 나오기만 해도 채널을 돌리기 바빴던 상조 회사의 홈쇼핑 광고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거나, 비싸다는 이유와 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핑계로 제대로 된 ‘물질 효도’를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냉장고, 건조기, 침대 등 고가의 제품을 선물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부모님 혹은 그분은 여전히 건강하시고, 고가의 제품은 이름도 못 꺼내게 하실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 시간 혹은 며칠이 지나면 다시 타성에 젖은 일상에 흠뻑 잠겨, ‘내 직장, 내 연봉, 내 집, 내 차, 내 미래 등등’ 오로지 자신에 대한 걱정과 싸우는 이기적이고도 익숙한 등짝을 보게 된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


하지만 이미 당신의 삶은 '첫 시그널'과 함께 변했다. 3년 전이든, 3개월 전이든, 3일 전이든 그런 걱정을 시작했다는 것은, 적어도, 당신이 바른 방향으로 철이 들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긍정적인 사건이지만 그 내면의 기저는 퍽이나 슬픈 현실이다. 철이 든다는 것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고, 참을 줄 안다는 것이며, 남을 돕는 순수한 마음도 실은, 바탕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본능적 이기심 조차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세상의 중심의 나니까’와 같은 천방지축은 실은, 그로 인해 불편할 부모님의 마음과 주변 친구들의 질투 혹은 부끄러움까지 다 눈치챘으니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기로 한, 머리가 커져 과묵해진 아이와 같다.


한 번 철이든 당신은 이제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간헐천처럼 튀어나오는 이 감정에 대해 전보다 자주, 더 깊이 있게, 더 계획적으로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평범한 일상의 단면을 가로질러 싹둑하고 잘라 버릴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대해 깨닫는 나이가 되면, 어느새 무언가의 끝을 예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다가온다. 마치, 언젠가는 나도, 당신도 이 세상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철이 들고 사고가 심화되면 어느새, 방방곡곡 날뛰며 온통 즐거움만으로 가득 찼을 것 같은 삶이 덧없이 느껴지게 되고, 그런 생각의 끝에 두 갈래의 길과 마주하게 된다.


- 끝없는 시니컬함으로 삶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채 이를 낭비하는 것.
- 유한한 것의 찬란한 슬픔을 귀중히 여기며 주변과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


당신이 지금 어느 길을 선택했는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시니컬한 시각으로 삶을 낭비하다가도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고, 주변과 자신을 돌보다가도 한계를 느끼고 일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무엇을 선택했든, 그건 본인이 책임져야 할 현실이기에 누가 쉽사리 조언할 수도, 그렇다고 아주 방치할 수도 없다.


우아한 마무리를 위하여


인간의 삶은 파동이다. 모든 인간은 ‘응애’하고 태어나 큰 파장을 일으킨 뒤, 진폭이 높고 파장이 좁은 파동을 만들며 살다, 마지막엔 긴 파동을 그리다가 ‘짧고 거친 호흡’이라는 파동의 끝에 무음이 되어 생을 마감한다.


이런 삶 속에 당신이 철들었다는 건, 파동의 유한함을 이해하기에, 자신의 파동이 다른 이에게 불협 화음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남을 배려하고, 걱정하고, 도와주고, 대비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글의 끝에서 가슴속 감정의 흔들림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면, 그건 당신 이미 철들었다는 증거다.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ro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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