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변곡점 10화

마음이 약한 게 아냐, 너무 넓은 거야

진정한 강자는 부딪힐 때와 장소를 가리거든

by Rooney Kim

"넌 마음이 너무 여려" 혹은

"넌 너무 마음이 약해"


살다 보면 이런 종류의 평가를 받기도 하고 하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평가는 너무나도 쉬워서 종종 한치의 거리낌도 없이 쉽게 판단하게 되는데, 막상 평가를 받는 대상이 내가 되면 알게 된다.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내질렀던 한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었는지.


여리다, 약하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네거티브하고, 열성 인자에 가까우며 대단함보다는 딱함에 가까운 성격으로 평가받는다. 여리다는 건 마치, 지나치게 감성적이라 눈물이 많다는 의미이고, 약하다는 건 자기주장을 덜 내세우거나 타인의 강압적인 리드나 주장에 맞서지 않고 혼자 스트레스받거나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것이니 말이다.


어린 시절, 내 주장을 펼치다가도 더 강한 주장을 가진 이들이 나오면 열에 아홉은 그냥 그 의견을 따랐다. 알다시피 아이들의 주장이란 게 딱히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오. 대부분 그 주장들이 싫거나 나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가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인간군상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어떤 이들의 태도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특히, 군 시절, 사회에서 좀 놀았거나 조직 생활을 한 친구들은 마치 자신의 백그라운드가 자신의 대단한 능력이라도 되는 냥 얼굴에 깔보는 인상과 눈빛을 장착하고는 군생활 내내 이용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스스로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어필하고 싶은게다.'


어떤 이의 성격은 한 평생 처음 볼 정도로 특이해 연구하고 싶을 정도인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는 장단점이 너무 확연해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고 정의하기 힘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세명 이상의 사람이 모이고 일정 시간이 흐르면 주장이 강한 자와 약한 자로 나뉘고 나머지 둘은 강한 한 사람을 따르며, 이후 이들에 대한 평가는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으로 나뉜다는 것이었다. 이는 누가 공언하여 정하는 게 아니라 그저 모두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느끼는 공통의 비언어적 정의였다.


다들 한 번 이상은 들어보지 않았나.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을 보라'고.


주장이 강한 자로 분류된 이들은 그들도 안다.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잘 따라주는 걸. 그리고 대개 주장이 강한 자들은 자신의 존재감 확인을 위해 항상 누군가와 부딪히다 더 주장이 강한 자와는 극단적인 결과로 달려가기에 결국 누군가 한 명은 자신의 주장을 포기해야 갈등이 끝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좀 이상하지 않나? 아니, 도대체 왜? 어떻게 지는 게 이기는 거지? 한창 어릴 때는 그 말의 저의를 지레짐작하면서도 이에 반항하고픈 적도 있었다. 양보나 패배가 주는 모멸감과 분노가 내 영혼을 갉아먹고 날 괴롭히는데 그걸 알면서도 지는 게 낫다라니!


두 주장의 부딪힘 후 하나의 의견으로 수렴되어 가는 과정을 투쟁의 결과라고 하자. 하지만 소위 마음이 여리거나 혹은 약하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싸움이나 불필요한 언쟁은 피한다. 못해서도 있겠지만 불필요한 감정 소모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오히려 큰 그림을 보는 것이다. 어차피 모로 가도 서울로 갈 걸 알고 있고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상하면서까지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뒤집어 생각해봤다.


마음이 약하다는 건 타인과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배려하는 굉장히 이타적이면서도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


즉, 내 주장이 묵인되거나 무시당할까 두려워 지르는 응석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선까지 고려한 넓은 시야와 깊은 배려심 그리고 한발 물러서 양보할 수 있는 융통성까지 갖춘 진정한 강자라는 것이다. 물리적인 강자가 아닌 정신적인 강자라고 하면 좀 더 와 닿을듯하다. 어떤 이는 이 역시, 다툼으로 인한 불쾌한 감정을 피하기 위한 이기적인 잣대를 기반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이기적인 잣대는 타인을 향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마음의 평화와 다투지 않아도 됨'을 향할 뿐이다. 어디, 문제 되는 게 있을까.


그러고 나니 좀 이해가 된다. '지는 게 이기는 거야'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뺏기는 것, 지는 것, 밀리는 것, 이끌려가는 것, 통제당하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잠깐의 대화와 어떤 행동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향과 성격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게 대응한다. 이는 본능이다.


하지만 소위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항상 '타인의 입장, 일의 우선순위, 조직의 분위기와 관습, 전체를 위한 것'까지 고려하다 보니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보단 따라주는 것에 익숙해졌다. 즉, 굉장히 넓고 푹신한 버퍼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는, 마음이 약한 게 아니라 태평양처럼 넓게 포용하는 마음과 광대한 시야를 가진 사람, 즉, 진정으로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다.


테스트를 한 번 해보라.

주변에 주장이 강한 사람과 얘기를 할 때 그 사람의 의견에 반대를 해보는 거다. 이유 없는 반대가 아니라 적어도 한두 가지 이유가 있는 반대를 해보면 아마 두 부류의 인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하나, 이유를 듣고 수긍해주는 사람. 이 사람은 사실, 주장이 있을 뿐, 언제나 마음이 열려있는 합리적인 사람이다.
둘, 이유를 듣더니 반박하며 자신과 논리 대결을 펼쳐 끝을 보자는 사람. 소위, 우리가 말하는 주장과 고집이 센 사람이다.


반대 의견을 들으면 날을 세워 반박하고, 만약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면 토라진 표정이 여실히 드러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 과연, 이런 부류의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음이 약한다는 건, 그 사람의 논리나 주장이 약한 게 아니다. 굳이 나서서 움직일 필요가 없는 사소한 일들은 그냥 흘려보내는 넓은 아량의 소유자이자, 불필요한 다툼을 피해 세상의 평화에 기여하는 '슈퍼 마음'을 가진 숨은 강자이다.


'쟤는 마음이 약해서 탈이야.' 아니다. 그 아이의 넓은 마음 덕분에 오늘도 다툼이 하나 줄었다.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s/photos/mind

keyword
이전 09화응답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