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이프)는 어린 시절부터 춤을 곧잘 췄다고 한다. 유치원에서도 재롱잔치를 하면 항상 센터에서 춤을 췄고 잘 못 추는 아이가 있으면 얼른 가서 춤동작을 알려줬으며 나가기 싫어 우물쭈물 대는 친구가 있으면 또 얼른 달려가서 다그친 뒤 무대로 올려 보내는 댄서팀 수장과 같은 면모를 그 시절부터 보였다고 한다.
듣자 하니, 이후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에 가서도 축체나 행사 등에서 춤을 췄고 그 무리에서는 항상 춤을 가장 잘 추는 아이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선생님도 안무를 잘 외우는 친구보다 그녀에게 더 의지했다고 했을까.
한 때 댄서가 꿈이었던 그녀는 당연하게도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고 자상하고 엄격한 부모님의 뜻에 저항할 생각이 없었던지라 자연스럽게 그 꿈을 접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댄스에 대한 관심과 갈망이 사라졌을까.
입문 과정
대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아라 함은 곧 ‘취향’과 ‘관심사’다. 즉, 좋아하는 물건, 음식, 장소가 생기면서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하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그녀 역시 그즈음부터였다고 한다. R.ef와 터보(김종국)를 좋아하면서 댄스와 가요에 눈을 떴고 이후에도 장기자랑에서는 룰라, DJ DOC 춤을 따라 하며 댄싱의 희열을 조금 맛보았다고 했다.
1막 HOT
1996년, 대한민국에 또 다른 거대한 팬덤이 일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2년 대한민국의 가요계와 문화에 큰 충격을 주며 등장해 완전히 새로운 판을 만들었다면, 공교롭게도 그들이 은퇴를 하던 해에 ‘현대 K-POP 아이돌’의 프로토타입이자 전설적인 기록을 남긴 H.O.T가 데뷔한 것이다.
‘전사의 후예’는 남자들이 보기에도 굉장했다. 강렬한 춤사위와 비판적인 노랫말은 당시에도 횡행했던 학교 폭력의 고통을 잘 끄집어냈고, 어둠의 마력을 입은 다섯 아이가 마치 주술 부리듯 뱉어내는 가사와 발성 그리고 이를 잘 표현해 낸 댄싱은 당시 10대 남녀 모두를 홀릴 정도였다.
따라서 그녀 또한 열광했다. 그녀는 이때 처음으로 아이돌에 매료된다는 것의 참 의미를 느꼈고 스타의 노래와 무대 그리고 존재 자체가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팬클럽(클럽 HOT)이라는 것에 가입했고 그렇게 기다리던 인생 첫 아이돌 콘서트에서 스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발산했다.
우리는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할 거예요. (콘서트 당시 잠실 주 경기장에서 HOT가 팬들에게 한 말) "
그런데 그날 이후, HOT는 공식 해체 수순을 밟았다. 스타에 대한, 아이돌에 대한 동경과 애정이 마치 헛수고처럼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화도 나고 서운하기도 하고 허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하게 각인된 팬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날 이후 20년도 더 지났지만 TV에서 HOT의 소식이나 노래가 나오면 지금도 채널을 고정하고 그때 그 시절을 기쁘게 회상하는 모습에서 비로소 옳게 된 빠반인의 모습이 보이기에.
그녀의 아이돌 관심사. 2019년 이후에도 ing..
2막 동방신기, 샤이니
그렇게 시작된 아이돌에 대한 관심은 이제 그녀 삶의 디폴트값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2000년대 중반을 사로잡은 동방신기에게로 향했다. 동방신기는 아이돌 역사 상 모든 멤버가 키, 외모, 노래, 춤이 되는 전무후무한 그룹이다. 데뷔곡인 Hug와 팀의 와해 전 마지막으로 활동한 곡인 Mirotic 정도를 제외하곤 대중적인 노래가 많지는 않지만 글로벌 팬덤에 불을 지피며 한 때 가장 거대한 팬덤을 자랑할 정도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윽고, 2007년에 드디어 ‘샤이니’가 데뷔했다. 개구쟁이 소년 같은 외모(진짜 소년들이었음)와 이쁘장한 얼굴에 그렇지 못하게 심쿵하게 만드는 노래와 춤은 또다시 한번 그녀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녀가 샤이니를 좋아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많은 아이돌들은 사실상 데뷔 이후에는 대부분 일정을 소화하기에 바쁘다. 따라서, 그렇게 바쁜 일정만 소화하다 보면 자신들의 실력 성장에는 점점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샤이니는 좀 달랐다고 한다. 소년들일 때 데뷔를 해서 어리고 풋풋한 이들의 모습이 점점 성장하며 커가는 모습을 보여줌은 물론, 그들의 노래, 춤 실력도 덩달아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아이돌 그룹에는 역할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 역할을 소화하느라 바쁘다. 그런데 샤이니가 달랐던 점은 꾸준한 연습을 통해 매 앨범마다 실력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와이프의 최애인 태민을 살펴보자. 태민은 데뷔부터 Move로 대표되는 솔로 활동 그리고 최근 8집 앨범인 HARD까지. 끊임없이 춤 실력을 늘려왔다. 오죽하면 후배 아이돌 사이에서 ‘탬또롤(태민이가 또 롤모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일까.
어느 날, 그녀는 유튜브에서 태민의 데뷔부터 현재까지의 무대를 모두 모아놓은 영상을 보았다. 태민의 춤 실력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영상을 보고 있노라니 그가 지난 16년간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는지 한눈에 보였다. 힙합이 자신의 베이스 무드가 아닌 이번 HARD 앨범에서도 매끄럽게 힙합을 소화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모습만 봐도 다채롭게 뻗어나갈 그의 앞날이 그려진다.
그런데 샤이니에는 태민 외에도 키, 민호, 온유 그리고 이제는 고인이 된 종현이 있다. 안타깝고 슬프게 하늘로 간 종현이 메인 보컬이던 시절에는 온유가 상승 구간을 그리고 종현이 하이라이트를 소화하는 곡의 구성이 많았다. 하지만 종현이 하늘로 간 이후, 멤버들은 종현의 빈자리를 가득 채우기 위해 멤버 모두가 보컬 능력을 강화했다.
덕분이었을까, 온유는 감미로움과 애절함의 끝판왕이 되었고, 태민의 목소리에서는 성숙미가 물씬 느껴졌으며, 키의 고음은 이제 샤이니의 간판이 될 정도가 되었는 데다 랩만 하던 민호는 어느새 발라드까지 소화 중이다. 게다가 8집 활동과 동시에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온 온유를 대신하기 위해 키는 미친 고음과 동시에 힙합 댄스까지 동시에 소화해 내는 저력을 보였다.
데뷔 이후, 매번 커리어 하이를 찍는 17년 차 아이돌. 이런 살아있는 전설이 세상에 존재할까? 세상에나 마상에나 그게 샤이니다.
3막 인피니트, 엑소, BTS
그녀의 평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의 가요계는 고요했다. 스타는 많았지만 딱히 눈길을 끌거나 문화를 리드하는 누군가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팀이 인피니트였다. 사실, 당시 인피니트는 애절한 전반부터 후렴의 절절한 멜로디 라인까지 누가 들어도 듣기 좋은 노래를 많이 뽑아냈다. 그녀는 인피니트의 노래와 가사가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와 내가 연애하던 시절, 우리는 드라이브를 하며 인피니트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러던 중 2013년 엑소가 ‘으르렁’을 들고 컴백했다. 상대적으로 조용했던 데뷔와 달리 으르렁으로 국민적인 히트를 친 엑소는 이후, 전 국민의 뇌리에 그들의 존재를 알렸다. 이후 나는 2~3장의 앨범을 그녀에게 선물했는데 우리 같은 빠반인들이 단기간에 그 정도 수량의 앨범을 샀다는 건 스타 입장에서는 청신호(?)다. 정말 필요할 때를 제외하곤 쉽사리 지갑을 열지 않는 빠반인을 카드 결제로 인도했으니 말 다했다.
또 그러던 중, ‘BTS의 피, 땀, 눈물’이 히트하기 시작했다. 와이프의 눈과 귀는 다시 바빠졌다. BTS 역시 성장형 아이돌이라는 측면에서 샤이니와 비슷한 면모를 보였다. 거기에 BTS는 SNS를 통해 ‘서로의 케미, 다툼, 화해 -> 무한 반복’을 통한 유쾌함과 솔직함을 거의 생중계하다시피 하여 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성장하는 지를 더 가까이에서 보여줬다.
게다가, BTS를 논하면서 춤을 빼놓을 수 없다. BTS의 댄스 부장인 제이홉을 시작으로 현대 무용으로 미친 춤선을 자랑하는 지민과 힘과 멋을 겸비한 정국 그리고 놀랍도록 빠르게 늘어난 실력은 물론, 팀 내에서 와이프 공인 최고의 댄싱 표정 연기력을 자랑하는 뷔와 은근히 무브에 태가 나는 슈가 그리고 피나는 노력으로 이들을 쫓아간 RM과 진까지.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뽐내는 BTS를 보고 있자니 너무 미안한 마음에 또 앨범에 몇 장 구매했다. 기억하시라. 스타의 진심 어린 노력은 빠반인의 지갑을 춤추게 한다.
에필로그
그녀의 빠반한 관심은 계속해서 이어져 골든 차일드, 더보이즈, 스키즈(스트레이키즈) 그리고 최근에는 라이즈(Riize)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BTS, 샤이니와 같은 거대한 조류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진심.
P.S.
그녀의 빠반한 노력은 한 때 어머님(장모님)에게까지 번졌었다. 원래 에어로빅을 하시며 K-POP 노래를 섭렵하시기도 했지만, 그녀 덕분에 어머님도 H.O.T부터 BTS의 노래까지 즐겨 들으셨다. 물론, 에어로빅을 그만두시면서 점점 아이돌 음악에서는 멀어지시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