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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May 03. 2018

퇴.이.삶_10_김도윤

8년의 직장생활, 2년의 창업 그리고 또 시작된 조금 다른 방황


원래 10부작으로 기획을 한 퇴사 이후의 삶이 드디어 약 1년 만에 10번째 인터뷰 주자를 찾았다.

첫 창업 이후 여러 가지 여건상 1호점을 투자자에게 넘겨주고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무직 또는 프리랜서, 무늬만 대표가 되어버린 오늘의 주인공,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글쓴이, 김도윤이다.


글을 쓰거나 회사에서 사용하던 영어 이름인 루니 킴(Rooney Kim)을 쓰지 않고 본명으로 나 자신의 인터뷰에 응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이게 나의 본모습이고 그동안 스스로에게 거의 한 번도 불러보지 않았던 이름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창업에서 실패를 겪고, 실패를 수습하며, 무너지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는 길을 찾던 중, 단순히 타인의 퇴사 그리고 퇴사 이후의 삶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맹렬한 후폭풍과 거친 가시밭길의 고통스러움을 느꼈다.(그리고 지금도 느끼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꿈꾸고 퇴사에 대한 이상향이나 퇴사 이후 달라질 세상에 대해 향긋한 미래를 꿈꾸지만 사실 퇴사를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지옥 같은 현실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테이블웍스 1호점. 첫 간판이 달리던 날의 감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퇴사 이전도 이후도 그냥 보통의 모든 사람들이 숨 쉬며 살아가는 현실일 뿐, 그에 극과 극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퇴사를 고민하며 퇴사를 하는 당사자일 뿐이라는 말이다. 퇴사를 해서 살아갈 방법은 여전히 많다.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도 되고, 좀 쉬면서 여행을 해도 되며, 프리랜서로 일을 해도 좋다. 창업을 할 수 있다면 창업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며 아예 자신의 취미를 더 심도 있게 개발해 먹고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보는 것도 고민해볼 만하다.


단, 한 달이라도 급여가 나오지 않으면 큰 일 날 줄 알았던 소심한 직장인이 굴레를 떠나 창업을 했고 1호점을 오픈하기도 했다. 그리고 1년이 넘도록 수입이 없으면서도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에 열중했고 마침내 얽혀있던 실타래도 풀고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삶은 불안정하다. 여러 군데 면접을 봤지만 이 전에 하던 일은 하고 싶지 않아 합격을 해도 가지 않았고 공식적인 경력이 없이 취미로 수년을 해오던 일은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나이 탓, 창업 탓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내가 그 회사의, 그 포지션에 쓸모가 없다는 것. 사실, 그냥 그걸 인정하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숨 막히는 자기 비하와 자괴감이라는 도돌이표와 같은 늪에 빠질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온라인 인터뷰 번호: No. 10
이름: 김도윤
나이: '아직 할 수 있는 일, 그런 날이 많다'는 얘기는 듣는 나이
삶의 모토: 나와 내 주변이 만족스러운 즐거움
현재 거주지: 서울
B2B 영업은 무수한 빌딩 숲을 헤매며 먹이를 찾는 사냥꾼과 같다.

과거 질문_1
원래 직무와 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주로 B2B 영업을 했습니다. 컨설팅 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죠? 담당자 파악 후 콜드 콜부터 딜 클로징까지. 전체 영업 프로세스를 매 분기, 매주 해내고 스스고 트랙킹 해서 데이터화까지 하는 게 기본적인 업무의 틀이었죠. 가장 최근에는 창업을 한 뒤 1호점을 내고 정리한 사업이 있고요.

과거 질문_2
퇴사 전,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직장과 관련돼서 얘기를 하자면, 좋은 직장 동료들과 보내던 잠깐잠깐의 휴식이나 회사가 아닌 일상에서 그들과 만나면서 인간적인 교류를 할 때였고, 개인적으로는 제가 하고 싶은 취미생활인 글쓰기 등을 하고 타인과 나눌 때였습니다.

퇴사 관련_1
퇴사의 계기는?

몇 년간이나 꿈꾸던 창업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제 마음속에서는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드는 과중한 업무, 끔찍하리만치 비인간적인 KPI(Key Performance Index로 개개인의 실적 및 영업 관련 모든 행위를 기록 및 평가하는 지수) 위주의 업무 사이클 그리고 단기간의 성과만 바라보는 상사 및 회사와 '사람'은 온데간데없는 직장생활에 지쳤고 더 이상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퇴사 관련_2
퇴사를 결심했을 때 가장 걱정됐던 부분은?

당연히 경제적인 부분이었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퇴사 관련_3
퇴사 후 감정상태는 어땠나요?

홀가분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일' 때문이 아닌, 잘못된 시스템과 잘못된 시스템을 맹신하는 '사람'때문이었기에 창업을 한 뒤에는 야근을 하든 주말에 일을 하든 '일 자체'가 저를 숨 막히게 하진 않았습니다.

테이블웍스 1호점 내부. 어쨌든 나에겐 많은 경험과 교훈을 안겨준 첫 사업이었다.

퇴사 관련_4
퇴사 후 삶의 만족도는 어떻고 현재 무엇이 제일 만족스러우신가요?

모든 게 불확실했지만 원하는 일을 구체적인 플랜에 맞춰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습니다. 첫 사업을 접은 현재는 다시 불확실한 현재와 미래로 인해 머리가 아프지만 곧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믿어요. 

현재 질문_1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소소한 일거리를 하고 있으며 기업의 면접도 보고 있고 또 다른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것도 있습니다.

현재 질문_2
주로 일하는 곳(지역, 장소)은 어디인가요?

주로 저희 집의 식탁이나 카페에서 합니다.

집이나 카페는 정말 좋은 개인 사무실이자 작업공간이다.

현재 질문_3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회사로 돌아가자니 제가 하던 직종을 벗어날 수 없고, 사업적으로 보자니 너무 지치고 막막합니다. 소일거리들을 하고 있긴 하지만 기존 급여 대비 생활비 정도 수준으로 맞추기도 쉽지가 않네요.


미래계획_1
퇴사 후 후회는 없었나요?

후회는 없습니다. 단, 좀 더 확실한 경제적인 방안을 마련한 뒤 천천히 준비해서 퇴사를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직을 하든, 창업을 하든, 프리랜서를 하든 말입니다.

미래계획_2
타인에게 퇴사를 추천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조언해주고 싶은가요?

퇴사는 영원히 회사를 다니지 않거나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지금 힘든 부분은 다른 회사에도 존재하며 오히려 더 심한 다른 힘든 요인들이 자신을 괴롭힐 수도 있어요. 우선, 무엇이 문제인지 찾으세요. 그리고 그것이 극복 가능한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파악하세요. 만약,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있고 그걸 잘하고, 오래 할 수 있고, 경제적인 부분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마음껏 회사를 떠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미래계획_3
자신의 미래계획은 무엇인가요?

즐기며 일하고 즐겁게 베풀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소한 삶의 새로운 순간들을 매일매일 경험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인터뷰 끝.


친구들과 후배들이 보내준 화분들. 그들의 응원이 아직도 힘이 된다.


# 그렇게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첫 사업이 실패로 끝나고 1호점을 인수인계하느라 3개월을 보낸 뒤 너무나도 막막한 마음을 부여잡고 부랴부랴 이직을 먼저 준비했다. 다시는 필드영업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니 영업 포지션, 마케팅&콘텐츠 관련 포지션으로 수 십 군데에 지원했다. 그리고 몇몇 업체에서 곧 면접을 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마케팅, 콘텐츠 관련 제작이나 기획 쪽의 포지션을 원했었는데 공식적인 경력상으로는 해당 포지션과 전혀 관련이 없었기에 운이 좋게 면접을 보게 되더라도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필드영업을 원하는 곳에서는 같이 일하자며 몇 번이나 연락이 오기도 했지만 매주, 매일 피 말리는 영업에 수년간 시달렸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해 끝내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른 한 곳에서는 사업 등으로 인한 경력상의 공백, 관련 포지션 경력이 미흡하지만 두 번의 면접을 통과하고 같이 일하기를 원해 연봉을 아주 많이 낮추고 입사 날짜까지 정했었지만 입사 3일 전 합격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 정말 끔찍한 현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다시 취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취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곧 꽤 큰 회사에서 여유 있는 연봉선으로 면접이 잡혔다. 포지션의 JD가 좀 애매한 게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결혼한 유부남이, 먹고사는 문제가 달려있는 이 마당에 이젠 그게 대수 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막상 면접을 들어가 뚜껑을 열어보니 내가 그토록 꺼려했던, 나의 전 직장들의 포지션인 '필드영업'이 아닌가. 그것보다도 더 숨 막혔던 건 꽤 높은 직책을 달고 한국 시장의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Head의 마인드였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시장에 등장한 경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영업 및 직원들을 관리하는 그와 그 회사의 영업방식에 대해 웃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업체의 경쟁사들은 젊고 에너지 넘치는 이미지, 독특하면서도 오픈된 문화로 한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었는데, 그는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더 세밀하고 강도 높은 KPI를 운영해서 매일매일 시시각각, 거의 분단위로 영업직원들에 압박을 가하며 잃어버린 점유율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했고, 난 이내, 이 일이 끔찍하리만치 숨 막히는 일임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KPI도 좋고 체계적인 영업방식도 좋다. 나도 그런 시스템에서 오래 일을 했으니. 그런데 회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 매주, 매달 영업직원들 하나하나의 영업 퍼포먼스를 점검하고 숨 막히게 압박을 가해야 한다며 웃는 그의 모습에, 그리고 영업은 오직 그 방법 하나밖에 없다는 그런 사고방식에 놀랐고 이런 방식으로 영업 실적을 달성하려는 모든 기업들의 아주아주 오래된 프레임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다.


삶은 어쩌면 정처 없는 길을 떠나며 그 안에서 안정을 바라는 모순된 가치가 넘실대는 바다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학교와 학자들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장기적인 수익을 바라보는 열린 안목에서의 기업 경영을 가르치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과 실무에서는 단기적인 실적과 구 시대의 업무 프레임 내에서 경쟁사를 압박해야 한다는 답답하고 답답한 천편일률적인 이야기가 마치 구전동화처럼 이 회사, 저 회사에 돌아다니고 있었고 여전히 그 안에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금 생각에 빠졌다.


과연,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답'일까? 기껏 그 굴레에서 빠져나와 능동적으로 사업을 하다 한 번 말아먹었기로 소니 다시 그런 굴레 속으로 숨 죽인 채 뛰어들어가야 할까? 시대가 변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이와 관련된 글까지 써가며 사람들을 독려하던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할까?


사실, 여전히 막연하고 두렵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내게 주어진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계속해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중해서 승부를 볼 무언가를 찾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자투리 시간을 동원해서라도 진행하길 바란다.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그 안에서 작은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당신이 사업가이거나 프리랜서라면 그 안에서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생각하고 움직이자. 시도해야 무언가가 남고, 그것들이 쌓여야 나의 역사가 된다.

새로운 세상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


그렇게 나는 또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것이다. 그게 직장이든, 사업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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