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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Feb 25. 2018

실패학 개론 01_그래, 나 실패했다

우리는 왜 실패를 마지막이라 생각하게 되었을까?


주변에서 누구네 아들이 대학에 떨어졌다는 얘기, 또 공무원 시험에 낙방했다는 얘기, 사업에 실패했다는 얘기, 퇴직하고 제대로 일이 안 풀린다는 얘기 등등 우리는 살다 보면 내 주변 또는 주변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수많은 실패담을 듣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은 곧 2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안쓰러운 척하면서 속으로는 내심 소소한 우월감에 젖으며 '나는 절대로 그렇게 안될 거야'라는 생각.
'그러게 왜 멀쩡한 직장을 두고 사업을 한다고 그래?', '나는 절대 한 눈 안 팔아야지.', '나는 실패하지 않도록 어정쩡한 건 시도도 안 할 거야.'와 같은 새로운 도전이나 시도 자체를 원천 봉쇄하고 부정하는 생각.


판단은 자유지만 이런 환경에서는 그 어떤 새로운 것이나 창조적인 혁신, 미래를 리드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 정해진 것, 남들과 비슷한 삶, 남에게 조롱받지 않는 조건, 위치, 환경 그리고 직간접적으로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가족, 친구, 주변의 인식과 눈치 그리고 마침내 몇 번의 시도 끝에 절망을 느끼고, 이 나라에서는 안정을 추구하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아 버린 '한 때 깨어있던 사람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한국사회에서 실패는 끝, 마지막의 의미가 강하다. (출처: nymag.com의 Kevin Roose 포스팅 중)

잠깐 나의 이야기를 하겠다. 다시금 뒤돌아보니 나의 지난 사회생활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 1 스타트업, 리스크 관리 실패

나는 9년여의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한 번의 창업 시도를 했고 창업을 한 순간 급여가 없다는 현실이 두려워 다시 입사를 했다가 이 회사, 저 회사를 다니는 동안 도저히 창업에 대한 갈증을 풀 수가 없어 결국, 회사를 나와서 다시 스타트업 창업에 도전했다. 투자유치를 시도했지만 코웃음만 받았고 이후, 큰 자본도 필요 없고 스스로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몇 가지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시도를 했지만 딱히 성과는 없던 중, 어느 세미나에서 만난 전 공동대표와 본격적으로 코워킹 스페이스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업 시작 후 공동대표의 지인으로부터 5개월 만에 에인절투자도 받고, 7개월 만에 1호 점도 내는 등 사업이 순조롭게 되는 듯했지만 미숙한 초기 세팅, 2차 투자 실패, 내부 갈등(공동대표의 무단이탈), 경제적인 고초 등으로 지난 2018년 1월, 나름 선방하고 있던 1호점을 투자자에게 넘겨주고 다시 혼자가 되어 취업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퇴사 이후의 삶'이라는 글을 연재할 때가 사업을 시작하던 2017년 6월쯤이었는데 다시 취업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그동안 혼자 떠들었던 말과 글들이 마치 속 빈 강정처럼 느껴져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며 바로 생각을 고쳤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패'에 대한 인식의 문제점'이니까. 실패한 사람의 경험 그리고 그 실패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다시 다른 시도와 도전을 통해 결국 어디가 되었든 어느 정점에 오를 수 있기에, 실패를 했다는 것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기회를 얻은 것과 같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또는 알아도 무시하고 살아왔을 뿐이다.


# 2 첫 취업 대박이 탈락으로

이 뿐만이 아니다. 대학 졸업반으로 취업을 준비하던 2007년 당시 항공승무원을 꿈꾸던 나는 승무원을 준비한 지 한 달 반 만에 운이 좋게도 케세이퍼시픽에 최종 합격하여 신체검사의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의 신검 당시, 높은 혈압 수치 때문에 지방에서 재검하여 보냈지만 공식병원의 기록만 인정하는 사유로 인해로 신체검사에서 떨어지며 첫 취업 실패를 경험했고, 그 후 부랴부랴 여러 기업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최종면접에서 대표의 느낌이 별로라 탈락하거나, 다음 면접 일정을 보내준 뒤 바로 취소 통보당하는 등 참으로 다채로운 취업 실패를 맛봤다.


# 3 공들인 탑이 무너져내리는..

또,  어린 시절부터 자연, 동물 등을 좋아하던 나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뒤 해당 홈페이지에 감상문 형태의 글을 남기며 나름의 활동을 했었는데, 덕분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코리아의 제안으로 NGC 공식 블로거 활동을 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입사를 꿈꾸었는데, 2년을 기다린 결과 공개채용에 도전하여 결과적으로 면접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근무조건, 연봉 등이 전혀 맞지 않아 면접관들의 설득하에 해당 지원을 포기하며 또 실패를 맛보았다. 결국 더 높은 연봉을 주는 회사들로 몇 번의 이직을 했지만 사실, 영업직이라는 포지션이 주는 압박감이나 실적에 대한 고통으로 2년에 한 번씩 이직을 해야 했으니 이것도 나의 실패라면 실패다.


# 4 글, 언제까지 취미로 남을 건지

게다가, 지난, 2011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위해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블로거 생활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장편소설 2편, 수 백 편의 시, 여러 잡다한 내 생각을 쓴 책, 7편의 ebook출판 등 직장 출퇴근 시, 주말 그리고 밤 시간을 이용해 글을 썼지만 여전히 취미생활일 뿐 나의 삶에 극적인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글은 여전히 취미로 쓰는 중이며 브런치 작가 역시 그런 나의 풀지 못한 한(?)을 풀어보려 애쓰는 나의 애잔한 한 조각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코리아의 공식 블로거 시절 나의 블로그. 아직도 오픈되어 있다.

잠깐 이야기를 한다는 게 나의 지난 10여 년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며 경험도 쌓고 좋은 인연들도 만들고 돈도 벌고 결혼도 했다. 문제는 '내가 실패로부터 얼마나 발전을 했느냐이며, 여전히 도전하고 있거나 그럴 계획이 있느냐'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실패에 대해 쓴소리를 하거나 뒤에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무런 대책 없이, 책임감 없이 계속 의미 없는 도전을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상황,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계속해서 노력하고 시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고 그 안에서 수 번의 실패 끝에 제대로 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현재의 10대는 따돌림과 뒤처짐에서 벗어나기 위해 언행은 더 난폭해지고 감성은 더 메말라가고 있으며, 20대는 경제적인 실패를 면하기 위해 도전적인 '직업'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에 더 매진하고 있으며, 성공할 꿈에 부풀어 직장을 뛰쳐나온 30, 40대는 99%가 실패한다는 창업시장에서 패잔병이 되거나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고(필자) 있다. 50, 60대는 가정을 지키고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 여전히 생업에 종사하거나 폐지 줍기도 마다하지 않으며 약자에게 매우 느슨한 우리 사회의 그물망에 매달려 겨우겨우 생존하고 있다.


이 모두가 실패를 두려워해서, '실패=끝'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한 패배감, 가족들의 실망감, 친구/주변인들의 멸시 감, 지속적인 사회의 압박감, 실패 이후 더 뒤처진 자신의 현주소'를 이길 자신이 없기에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할 수 없고, 전 세대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극단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과거에는 없었던 여러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한 번도 실수, 실패를 하지 않고 저 위대한 발명과 발견을 했을까?


'제 주변에는 명문대, 고시, 대기업, 사업 성공 등을 한 번의 실패 없이 해내는 사람들이 있던걸요?'

제발, 부디 그런 소수점 이하에나 속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인생을 비교하지 말자. 그리고 그들이라고 영원히 실패가 없을까? 오히려 어린 시절부터 실패가 없이 살아온 사람들은 중년 이후에 겪는 실패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경우도 많으며 저런 사례는 결코 지금 이 문제의 쟁점과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인지하는 여러분이길 바란다.


위대한 발명가, 작곡가, 탐험가, 예술가가 단 한 번에 모든 걸 성공할 수 있었을까? 왜 우리는 특히, 우리 민족은 실패에 취약하고 실패를 경멸하며 실패를 학습하게 하지 않게 되었을까?

우리 조상들은 침략을 이겨내는 DNA를 심어주었다. 항거 정신이야 말로 가장 상위의 도전정신이다. 그런데 우리는.. (출처: ideas0419.com 생각비행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렇다 우리는 '실패=끝=죽음'이라는 역사를 살아온 민족의 피와 삶의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은 사람들이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처럼 도전을 장려하고 프런티어 정신이 역사의 근간인 '이민 국가'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일단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사대주의자는 아니지만 여기서 잠깐 미국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백 년이 넘도록 글로벌 시장을 이끌고 정치, 경제, 안보 분야에서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실패를 당연히 여기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도록 부단히 노력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시초에는 탈출과 개척이라는 환경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현대 미국인들의 조상 격인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있었다.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는 1559년 로마교회에서 분리되면서 개신교의 한 부류였던 청교도를 박해했고 성공회와 대립하던 청교도인들은 1620년 신대륙인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게 된다. 즉, 미지의 땅에 대한 불안과 원주민인 인디언들과의 갈등 및 전쟁(물론, 거의 인종청소 수준이라 증오하는 역사지만) 등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선망과 공포를 가지고 이주한 땅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했기에 '개척, 도전, 실패 그리고 도전'은 어찌 보면 환경이 가져다준 국가차원의 신념이 되었다. 그 정신이 수 백 년을 이어와 지금의 미국을 유지하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실패는 '성공 또는 당연함'으로 가는 당연한 수순이고 그렇기에 어린 시절부터 '실패해도 괜찮아', '실패는 당연한 것이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등의 말을 들어온 그들의 저력은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인들. 현재 미국의 개척정신과 도전, 실패, 성공의 공식이기도 하다. (출처: newsm.com의 김홍덕 님 포스팅 중)

그래서 이런 역사와 정신을 가진 미국은 위대하고, 조선시대의 유교 문화와 만 여 번의 외세 침략으로 실패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한 번의 실패로 민족이 말살될 수 있었으니) 우리 민족정신은 탓해야 할 역사일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실패의 저주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우리는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하고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까? 국가는, 사회는, 회사는, 가정은 그리고 나는 실패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우리는 실패를 학습하고 자신의 실패를 쌓아야 한다. 그리고 실패들을 자신의 경험, 오답노트, 아이템 창고로 이용해야 한다. 그 방법들은 '실패학 개론 02 두 번째 포스팅'에서 좀 더 같이 고민해보자.




(메인 이미지 출처: www.npr.org의 ted-radio-hour 포스팅 중 osmanpek/Getty Images/iStock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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