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oney Kim Dec 02. 2017

퇴사와 과로사 사이

현대의 직장인, 출구는 오직 퇴사뿐일까 


# 진화하는 일자리와 일, '사람'은 어디쯤 있을까?

일자리의 개념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의 일자리 개념이 졸업 후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포지션을 찾아 입사해 들어간 기존의 직장이라면 지금은 스스로 이윤을 창출해내는 모든 활동이 일자리 또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모바일 기기로 전세계 어디에서나 일을 할 수 있게 된 지금, 더 이상 과거의 직장과 일자리 형태만으로는 ‘일자리’에 대해서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아직도 사회생활로서의 일자리를 직장생활과 취업으로 규정짓고 대기업에 입사하고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 젊은 이들이 있다면 그건 부모세대의 자녀교육의 문제이고 입시와 학벌 위주의 방향만을 안내한 학교의 문제이며 구태의연한 미래관을 제시하는 사회제도의 문제이다.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의 교육과 사회제도가 그러하니 더 이상 ‘튀는 청개구리’가 되면 안된다 혹은 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우리 스스로의 한계이기도 하다.


직장생활. 한 곳에 모여 하루종일 함께 일하는 전통적인 일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당장 꿈을 찾기 위해 배낭을 메고 해외로 나갈까?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니 창업이라도 해서 부딪혀보라는 말인가? 단순히 기업에 취업해서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받으며 편안한 의자에 앉아 금요일을 기다리고 주말에 떠날 여행지의 정보를 찾으며 내가 꿈꾸는 평안한 미래를 누리는 건 잘못된 일이라는 말인가?

자, 진정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게 아니다. 언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과 급변하는 노동시장과 구조 등 표면적인 현상에 집중하는 동안 직장인을 포함한 많은 노동인구들은 여전히 전혀 다른 이유로 고통받고 있다. 사회 구조와 일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는데 전문가와 대중은 여전히 현실과 결과에 대한 예측만 할 뿐 그 시스템내에서 일하고 움직이며 고민할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교육문제, 취업문제, 직장 내 고민, 퇴사, 이직, 창업 그리고 은퇴 또는 은퇴시점에서의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고민 등 일자리와 관련한 이러한 고통들은 인류의 역사에서 노동이 등장한 시점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겪어왔고, 취업을 했든, 창업을 했든, 육체노동을 하든, 정신노동을 하든 모든 생산 인구가 겪고 있는 고통이다. 그런데 일자리와 관련한 이런 고통들은 전문적으로 관리되어야하는데 그런 역할을 할 사람도 정책도 시스템도 없다. 그러다보니 이는 개인적인 문제에서 사회적인 문제로 커져버렸고 사회는 이제서야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하는 방식과 시스템은 진화하는데 그 곳에는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어디쯤 있을까?

# 과로자살누구의 잘못인가?

현대의 직장인은 가뜩이나 세분화 되어있는 숨막히는 경쟁구조 속에서 자신의 가정을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언제 밖으로 내몰릴지 몰라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직장생활 등 안팎으로 압박을 받으며 근근히 버티고 있다. 최근에는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끝내 압박을 이겨내지못하면 소위 ‘과로자살’이라 불리는 극단적인 결정을 해버리는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는 직장내 고질적인 문제인 과중한 업무, 야근 등으로 인한 과로가 쌓여 결국 사망에 이르는 과로사에 그치지 않고 엄청난 책임감과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다가 결국 자신의 현재 위치를 지키지 못할 바에야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는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몰리는 직장인과 이 시대의 모든 노동자에게 노출된 가슴 아프도록 차가운 현실이다.

사실, ‘과로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퇴사를 해서 다른 직장으로 옮기는 방법도 있고, 좀 쉬면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준비한 뒤 이직 또는 창업을 하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인터넷 기사를 읽듯이 제목만 보고 단순하게 판단할 만큼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누구라도 멀리서 내다보는 태산은 그저 한 걸음씩 걸어 올라가면 그만인 말로 쉽게 정복 가능해보이는 산이지만 그 태산이 코 앞의 현실로 닥친 사람에게는 태산의 숲 속에 갇혀 그 산의 높이를 가늠하기는 커녕 걸어올라 갈 등산로조차 보이지않아 가파른 길을 기어오르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여기저기 찢기고 생채기가 나는데 그 누구 하나 손 내밀어주는 이 없이 주변의 차가운 시선을 온 몸으로 받으며 책임이라는 강박과 생존이라는 현실의 출구 없는 동전의 양면 외에는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나마 자신이 처한 고통스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선택은 죽음 이었을 것이며 어쩌면 그 선택이 가장 고통스럽지않은 방법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직장생활이 생존의 문제로 여겨지는 순간, 혼자 길을 찾기란 더욱 어렵다.

보통, 직장생활을 오래도록 하다 보면 서너 번의 이직을 경험하며 연봉이 오르기도 하고 승진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대부분 그 사이에 결혼을 해서 갓난 아기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정에 대한 책임감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다. 그런데 그 즈음에 직장생활의 한계를 느끼거나 자신의 미래 진로(적어도 40대 이후)에 대해서 큰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새로 이직한 직장에서 전 직장과 같은 포지션으로 업무를 시작했는데 6개월이 지나도록 실적이 나오지않자 눈치가 보이기 시작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 상황 설명


대개 연차가 쌓인 경력자의 경우에는 이직을 하면서 승진을 하기때문에 이직 당시, 직급은 차장으로 입사를 했지만 실적은 기존 팀에 있던 대리보다 못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그럼 다시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승진도 하고 연봉도 올랐지만 다음 분기까지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자신의 입지가 만들어지기도전에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회사의 분위기는 실적, 숫자 등 결과 위주 이기에 인간적으로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럼 다시 이직을 해야하나? 그런데 만약 다른 곳으로 다시 비슷한 연봉으로 이직을 했는데 거기서도 3~6개월 내에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할까? 포지션을 바꿔야하나? 이 포지션으로 8년을 일했는데 어떤 포지션으로, 또 어떤 회사가 나를 받아줄까? 회사에서는 실적에 대한 압박으로 숨막히는데 집에선 자신만을 바라보는 아내와 자녀가 있다. 부모님은 점점 나이 들어가시며 역시 나만을 바라보고 있고 아파트 구매로 적당히 빌린 대출금 역시 월 원리금은 크진 않지만 일을 쉬게 된다면 매우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나는 단, 1개월을 쉬어서도 안 되며 적어도 50대까지는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면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 이직을 할 수록 직장에서 자신의 입지는 좁아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버티지못하면 끝이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맴돈다.


직장생활 중,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였을 때. 실제로 한치 앞도 보기 힘들다.

아주 간단한 예지만 정말 이 상황이 현실이 되면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나이는 점점 들어 30대 후반 ~ 40대가 되어가는데 여전히 2~3년 뒤 이직을 바라봐야 하거나 그 나이에 이제 막 이직을 했는데 자리를 잡지 못하면 또 이직을 해야하고 어디로, 어떤 포지션으로, 또 이번에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나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자신의 가정과 가족으로 이어지며 거기에 야근, 주말근무 등 육체적인 문제까지 겹쳐지면 정신적으로 버티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질 위기까지 처하게 되고 그 선을 넘어가게 되면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과로자살은 극단적인 예다. 하지만 최근 언론에서도 집중적으로 다룰 만큼 전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들은 어떡해야 할까? 취업, 이직, 퇴사, 창업 등 자신의 코앞에 닥친 현실의 선택을 두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대안이 있을까?

# 새로운 시대의 국지전: 취업

이쯤에서 일, 일자리 그리고 자신에 대해 한 번 되돌아보려고 한다. 사실 나도 취업에 혈안이 되어있던 취준생 시절이 있었고 적지않은 시간 동안 직장생활을 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1차원적으로만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저 남들처럼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과 알맞은 연봉, 적절한 일 그리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만이고 그렇게 연차가 쌓이면 이직을 해서 연봉을 인상하고 승진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취업준비 당시, 100대 1의 경쟁률을 뚫었지만 어이없는 판단으로 신체검사에서 탈락하기도 했고, 마지막 면접을 기다리다 이유없이 면접 취소 통지를 받기도 했으며, 3차 최종 CEO와의 면접에서 ‘자신의 회사에서 오래도록 일 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좌절한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취업은 내가 도전하고 넘어야 할 과제이고 대입이나 군입대처럼 꼭 거쳐야 할 단계로 느꼈을 뿐, 스스로 결정하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나 5년 뒤의 나의 삶, 또는 평생에 걸쳐 하고싶은 일에 대한 고민은 정말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다.


밤을 밝히는 공시족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선택과 도전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이제 2, 30대가 공무원시험에 목매고 대기업 취업을 위해 그룹스터디를 하며 오로지 취업만을 위해 자신의 젊은 시간을 불태우는 것을 이해한다. 사실, 9년여간의 직장생활 동안 창업의 꿈과 작가라는 취미생활을 하며 언젠가는 이룰 독립을 꿈꾸며 살아온 직장인이었기에 개인적으로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대기업취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대학생들의 인터뷰를 볼 때 마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 눈에 그들의 선택이 그렇게 좋은 학벌과 우수한 머리를 가지고도 젊은 날의 모험과 도전은 커녕 ‘안전한 길’만 선택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그들의 세상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그런 선택을 이해하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10대 시절을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치열한 경쟁과 싸움에서 살아남았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부모로부터 귀한 자식 대접을 받으며 ‘자신’의 위치와 주변의 대우를 당연시 하면 자라온 세대이기도 하다.


부모라는 방패 덕분에 전 세대에 비해 타인의 간섭이나 시각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고 높아진 자존감과 자기애로 인해 자신의 삶이나 미래에 대해 여유로운 시각을 가지며 ‘나’와 ‘나의 삶’을 자신의 세상 중심에 놓고 사고하다 보니 경직된 조직의 구시대적인 질서보다는 자유로움을,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억척스럽게 살아가기보다는 안정성과 안전에 초점을 맞춘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결과,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공무원고시족 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이 인내심이 없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모험이나 도전 등 고생을 하지않으려 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그들은 이미 어린시절부터 과거와는 다른 입시지옥과 취업절벽이라는 수 많은 도전에 맞서 살아남았고 그들이 선택한 공무원 시험합격이나 사생활을 보장해주는 안정적인 직장 역시 그들의 무리 안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싸움을 이겨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이 시대의 전쟁에서 얻어낸 전리품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최종 선택이 공무원 시험이라고 해서 그저 편한 것만을 추구한다고 볼 수 도 없고 전통적인 기업구조를 기피한다고 해서 인내심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실제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친구들의 그룹스터디를 들여다보면 그들의 개별적인 학습량과 경쟁을 해야하는 친구들과의 그룹 면접스터디 등 그 안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성세대와 기업들은 더 이상 ‘노력하라, 창업하라, 견뎌라, 청춘을 낭비하지마라’ 라고 말만 할 게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의 젊은이들이 원하는 사회적인 구조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새로운 세대가 원하는 일자리의 형태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 일자리의 형태는 스타트업 등 창업일 수도 있고 1인 기업일 수도 있으며 프리랜서처럼 일하며 도심이 아닌 휴양지 등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때에 일하는 디지털노마드의 형태일 수 도 있다. 즉, 변호사, 의사, 기업의 사장이라는 타이틀이 아닌 일하는 방법과 형식에 관한 문제라는 말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의 시각으로 보면 일자리는 그 사람의 신분과 계급을 나타내며 거기에 경제력이라는 단위까지 포함해 한 사람의 모든 수치적인 정보를 담고 있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과거, 왕, 성직자, 귀족, 군인, 농민, 상인, 천민이 그러했듯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사, 변호사, 대기업, 중소기업, 창업 등 그 사람이 무슨 일을 어떤 타이틀을 달고 하는 가가 일자리로서의 직업이 가지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지만, 이제 세상은 변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내가 편하고 즐거우면 그만일 뿐 그걸로 타인을 평가하는 사람은 유치하고 거기에 좌지우지되는 사람은 그저 촌스러울 뿐이다.


직장, 근무장소의 새로운 정의. 삶과 일자리의 형태는 확연히 바뀔 것이다.

# 그대지금 어디서 일하고 있나요?

기술은 발전했고 개인의 자존감은 높아졌지만 기업의 조직구조는 여전히 20년전에 머물고 있으며 구시대의 조직구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개개인 역시 아직 21세기로 넘어 오지 조차 못했다. 그리고 이제 구시대의 조직구조를 거부하는 완전히 새로운 세대가 직장을 구하고 있고 직업을 찾고 있다. 이 새로운 세대는 20, 30대의 젊은 층에 머물지 않고 이미 직장생활을 오래한 40, 50대에서도 보여지는 현상이며 타인의 시선에 머물러 있던 직장과 직업에 대한 컴플렉스와 고정관념은 날려버리고 오직 자신의 행복과 여유롭게 즐기는 삶을 바탕으로 모든 직업적인 일(개별업무, 프로젝트 등)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지금도 직장인들을 비롯한 수 많은 노동인력들이 불안정한 일자리와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일자리가 단순히 먹고 사는 수단으로서 인식 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리고 일자리가 나를 보여주고 표현하며 나의 힘을 과시하던 것도 유행이 지난 이야기일 뿐이다.

새로운 시대의 일자리는 나의 행복이 우선이며 내가 원하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며 이는 앞으로 각자 삶 속에서의 일자리를 선택하는 기준으로서 크게 작용 할 것이다.


이제 내가 원하는 곳 그 곳이 어디든지 나의 일자리가 된다.

만약, 지금 당신이 화려한 마천루에서 깔끔한 정장을 입고 조용한 사무실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면 아직 새로운 시대의 일자리에서 일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전통적인 직장에서 근무중이라는 점에 훨씬 가깝다. 반면, 당신이 해변 어딘가, 산 속 어딘가에서 반바지에 슬리퍼만 신고 해수욕과 산림욕을 즐기다 필요하면 파라솔 아래나 나무 둥지에 걸터앉아 간편하게 일을 하고 곧 자연 속으로 돌아가 자신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면 당신은 진정한 새로운 시대의 일자리를 찾았다고 볼 수 있다. 그 곳이 카페라도 좋고, 집이라도 좋으며, 코워킹스페이스라도 좋다. 그저 새로운 시대의 일자리에서는 타인에 의해 과로를 하고 그 때문에 과로사나 과로자살을 하게되는 불합리하고 극단적으로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직장을 선택할 때 그랬듯, 일자리와 일하는 방식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할테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 우리들의 일하는 방식 역시 또 바뀔 것이다. 따라서 그저 그대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원하는 일을 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찾으며 자신의 삶을 온전히 누리길 바란다. 일자리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갈 뿐이다.

이전 13화 실패학 개론 02_이제, 어떡하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