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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oney Kim Mar 15. 2018

실패학 개론 02_이제, 어떡하지?

실패에 당당해도 여전히 남아있는 현실적인 걱정들 그리고 당연한 대안들


개인의 실패와 파편화된 감정들, 정답은 없다


실패에 대한 글은 내가 실패하기 이전부터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서 틈틈이 생각나는 대로 메모도 하고 여러 글들을 통해 사람들의 실패에 대한 인식을 나름 정리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내가 실패를 해버렸다. 물론, 실패라는 것도 종류가 많아서 하루아침에 그 결과물이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실패를 수습하고 정리하는데만 거의 3개월이 걸렸다. 그래서 다시 한번 '실패'라는 경험과 그 현실이 '실패한 자'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실패를 맛본 나의 실패 경험을 감정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어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 미안함:  1. 우선, 가족에게 너무 미안했다. 특히, 와이프. 나의 사업 소식을 모르는 가족들도 있지만 알고 

                    있는 분들에겐 그들의 상황과 관계없이 미안했다.

                2. 투자자에게도 너무너무 미안했다. 현재는 그분이 1호점을 인수하셨지만 그분도 많이 

                    실망하시고  힘드셨을 테다.

                3. 사업과 관련된 모든 파트너, 주변인들에게도 실망감과 아쉬움, 고생한 기억 등을 남겨 미안했다.

- 죄책감: 그리고 이런 감정들은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도 만들었다.

- 자괴감: 결국, 나도 특별할 게 없구나 또는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또는 아, 좀 더 제대로 준비할 걸.

- 실망감: 모든 상황과 나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내가 겨우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그런 기분?

- 두려움: 이제 어떡하지, 이제 뭘 하지, 다시 취업을 해야 하나, 또 사업이란 걸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등등

- 부끄러움: 그리고 또 이 모든 상황들이 부끄럽기도 했다. 창피함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부끄러움이긴 한데  

                  아마도 부족한 능력으로 인한 미안함에 대한 부끄러움인 것 같다.

- 절망감: 9년간의 경력과 스타트업을 한답시고 헤맨 2년간 단절된 경력, 앞으로 해나갈 것에 대한 막연함.

- 불안함: 취업을 하는 것도 다시 회사를 다니는 것도 또 다른 사업을 고민해보는 것도 모두 불안하다.

- 배신감: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이 감정은 '특정인'에 대한 심각한 배신감도 있었지만, 배신감과 

               비슷한 느낌이 들게 한 당사자 및 나 자신에 대한 배신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어디에 

               화풀이를 하고 싶지만 결국 내가 잘못한 거라 스스로에게 드는 감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지금은 이런 감정들에서 많이 빠져나와있지만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다시 뭘 해야 할지 아직까지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2018년 7월에 재취업하여 2020년 6월 현재 재직 중입니다ㅎ)

실패는 나 자신, 타인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죄책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출처: cru.org의 Michelle Patrick 포스팅 중)


현실, 바라보기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나 그리고 실패한 사람에 대해서 제삼자의 시각으로 바라보자. 현실적으로 평가하면 그 사람은 한 번(또는 몇 번) 실패한 사람이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보면 그 사람은 보통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위험한 도전을 한 사람이고 그 과정을 경험해본 경력자이며, 그 안에서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도 맛보며 무언가를 배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게임에 비유하자면 경험치가 쌓이면서 이미 몇 레벨이 올라간 자이기에 직장 생활만 한 여느 사람들과는 좀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다.


실패를 해보았다고 모든 실패자가 보통의 사람보다 뛰어나거나 더 낫다는 뜻은 아니지만 실패를 경험해보고 극복한 사람들은 위험을 피하며 안전만 추구한 사람들보다는 '리스크 관리, 리스크 핸들링, 실패 사후 관리, 실패 이후 그것을 통한 새로운 시스템, 계획 설계' 등 완전히 다른 레벨에서 구사할 수 있는 주특기나 방어막이 생겼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과정과 경험들을 통해 언젠가 성공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실패를 통해 배우고 그 과정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라는 진부한 스토리를 또 꺼내고 싶지는 않다. 그저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사실, 이를 통해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는 성공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당신 삶의 목표가 모두가 주목하는 성공이라면 수 번의 실패를 통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당신의 목표가 안정적인 생활이라면 이를 통해 안정적인 경제활동의 방법과 선택에 대해서 더 깊게, 더 오래 고민하고 결정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즉, 실패를 통해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고 즐기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실패라는 것에 대한 개인의 인식에 관한 이야기다. 문제는 이를 바라보고 실패한 사람들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과 기업, 기관 등 사회의 인식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실패에 대해 '아무런 크레딧이 없는 손해 보는 행위'로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TV 프로그램이나 공석에서는 실패의 가치와 평가가 아주 많이 달라졌지만 가족들과 친구들의 평가를 들어보면 아직 우리가 실생활에서 체감하는 실패는 그냥 '0'이다.

실패는 거름이다. 거름은 냄새를 풍기지만 꼭 필요한 영양분이다.(출처: smart-fertilizer.com의 Fertilizing with Organic Matter 포스팅 중)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 어디서부터 일까?


'내 그럴 줄 알았다.'


이 한마디로 실패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차갑고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들도 실패 없는 결과물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패는 남의 이야기일 뿐 결코 나의 이야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차가운 눈빛과 사뭇 달라진 나를 향한 태도의 변화는 가시보다 따갑게 자신의 속을 후벼 파기 때문이다. 이는 본인만 느끼는 과장된 감정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싸늘한 사회의 시선도 한몫한다.


사실, 실패는 거름이나 음식이 부패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 냄새나고 보기도 싫지만 거름이 없이는 건강한 토양이 될 수 없다. 실패의 첫 이름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도전이라는 이름이 성공이라는 이름 혹은 안정적인 결과물이라는 이름으로 변하는 건 마치 큰 사건과 같아서 발생활 확률이 낮지만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실패는 확률도 높고 항상 질책을 받는 이름이다. 이러니 누가 실패를 환영할까? 도전이라는 이름의 99%가 곧 실패라는 이름으로 환원되어버리는데 이 이름을 짓밟고 무시하고 그냥 내버려 둔다면 도대체 누가 또 도전하려고 할까?


실패는 낭비가 아닌 투자다. 여기서 투자는 반드시 원금을 회수해야 하는 결과론적인 투자가 아닌 건강한 사회와 집단이라는 울창한 숲을 만들기 위한 거름 비용이라고 봐야 한다. 실패에 대한 투자를 통해 개인, 집단, 사회가 개선되면 결과적으로 그들은 더 나은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단순히 '누군가는 성공해서 투자금을 회수해주겠죠.'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이를 교육의 문제로 보고 백년대계를 그려야지 경제, 경영의 틀에서 바라본다면 그 국가와 사회는 국민들을 대체 가능한 소모품이나 용도가 없어지면 폐기되는 공산품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과연 실패, 실패자들, 사회와 구성원의 인식에 대한 대안이 있다는 말인가? 방법이 없지는 않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오래 걸리고 너무 돌아가 보일 뿐이다.


첫째, 그 누가 뭐라 해도 교육이다


1회성 실패담 공유, 격려, 재투자 등등 이렇게 근시안적인 대책에 대한 교육이 아니다. 초등교육부터 대학교육까지 미래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실패에 대한 인식, 경험, 사후 태도, 실패를 통한 배움, 실패의 가치, 그 배움의 응용,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교육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는 '실패학'이라는 과목 따위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국어, 영어, 과학, 수학, 취미활동 등등 자연스러운 교육이라는 틀의 대전제 하에 학생들이 실패에 대한 인식과 이후의 대응방법에 대해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사고를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국어 시간에는 각자가 시인이 되어 시를 써보고 과학시간에는 각자의 응용력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해보면서 시행착오도 겪고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통해 달라진 결과물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스스로 실수들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고 또 도전하는 습관 그리고 위로와 격려해주며 서로를 존중해주는 습관 정도만 만들어져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님들도 바뀌어야 하고 선생님들이 교육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론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럼 교육과정과 관련한 가장 상위기관인 교육부가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바뀔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단지, 실패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분위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전체적인 교육 설계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런 류의 인식의 변화는 TV쇼를 통해, 선거를 통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의 구성원들과 경제활동을 하는 구성원들 그리고 그들의 인식이 세대가 바뀌면서 안개비에 서서히 젖어들듯이 점진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 자신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꿔나가면 된다. 지금, 우리의 이런 생각과 실패에 대한 인식이 바로 바뀌지 않고 여전히 패자는 부활하기 쉽지 않다고 불평불만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아직 실패에 대해 비관적이고 비판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중이고 우리의 이런 노력들을 통해 머지않아 실패를 바라보는 세상과 사람들의 인식이 변한 세대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제도적인 변화와 각 세대 구성원들의 노력이다


이는 위 내용에 포함된 것이기도 하지만 교육이 최소 수 십 년에서 백 년을 내다본 장기간의 설계라면 이는 5~10년을 내다보는 단기간의 설계이다. 그리고 이런 단기간의 설계들이 각 분야에서 장기간 반복되면 우리가 원하는 교육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제도적으로 실패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구제방안들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창업을 한 사람들을 금전적으로 도와주는 제도뿐만이 아닌 직장생활을 하다 실패를 맛본 이들, 퇴사 후 프리랜서를 하다 실패한 이들을 위한 제도 등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개개인들의 진짜 현실의 삶을 파고드는 제도들을 말한다. 그리고 각 세대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실패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도해야 한다.


해외의 어느 CEO 모임에는 서로의 실패를 공유하고 대비하는 시간이 있을 정도로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연히 다르다. 즉, '나 이거 실패했어'라고 했을 때 '그래, 이제 어떡하냐..' 또는 '내 그럴 줄 알았다'가 아닌 '우와, 그런 걸 시도했었어? 대단한데! 또다시 해보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노력들이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서서히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되기에 현재 자라나는 세대들이 교육의 변화를 통해 그들의 미래에서는 그런 일이 없기를 기다리기보단 각 세대의 구성원들이 지금 당장 인식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쩌면 실패는 아무도 없는 극장 안에서 남에게 방해될까 봐 조급하게 팝콘을 먹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출처: nextavenue.org의 John Stark 포스팅 중)

남들이 바뀌는 것보다 스스로 변하는 게 가장 빠르다


그래서 또 생각했다. 우선, 실패를 한 당사자가 좀 담담해져야 한다. 어쩌면 우리 사회도 예전보다 좀 더 열려있는데 내가 아직 움츠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로또를 사더라도 당첨이 안될 확률이 8,145,059/8,145,060이다. 어쩌면 실패는 특히, 무언가를 시도한 초기의 실패들은 당연한 결과다. 내가 의연하게 빨리 일어서서 다음을 준비하면서 부지런히 움직이자.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이 실패했음을 알리고, 도움을 구하고, 밥도 좀 얻어먹자. 음지에서 나와 양지의 햇살을 받을 때 잠자던 정신이 깨어나고 내가 여전히 사회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같이 울고 웃으며 도움을 주려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단지, 요청하는 게 여전히 어색하고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주저하게 될 뿐이다. 하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먼저 용기를 내면 상대방은 더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단, 같은 사람에게 두 끼, 세 끼의 밥을 얻어먹지만 않으면 된다. 그뿐이다.


'아, 이제 어떡하지..'


주변의 차가운 시선이나 멸시의 눈빛을 걱정하며 고민의 수렁에 빠지기보단 우선 스스로에게 자문해보자.


'그래, 이제 뭘 하고 싶어? 직장으로 돌아갈까? 또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볼 거야? 네가 추구하는 삶의 철학은 무엇이니? 넌 왜 퇴사를 했고 왜 새로운 시도를 했니? 네 안의 네 삶을 움직이는 원천은 무엇이니?'


나도 어쩌면 이 기회에 내 인생과 가족들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메인 이지미 출처: pixabay.com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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