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5(목)_제시어 글쓰기
제시어 :
- 쌀을 발효시키는 보존법
- 삼척에서 온 편지
- 높은 나무 계단
삼척에서 편지가 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떠난 진아의 편지였다. 깔끔한 노란색 봉투였다. 진아는 노란색을 참 좋아했다. 봉투의 오른쪽 위에는 우표가 가지런히 두 장이 붙어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본 우표가 정겨웠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는 편지를 참 자주 보냈었다. 편지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서 우표를 수십 장씩 사놓고는 관물대에 두었던 기억이 났다. 지난날의 짧은 추억을 선물 받은 기분이라 진아의 편지가 더욱 반가웠다. 노란색 봉투의 뒷면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칼로 슥 긁어냈다. 혹시나 안에 있는 편지가 상할까 걱정되어 신중히 칼을 댔다. 노란색 봉투 안에는 두 장의 편지가 있었다.
제이야. 잘 지내니?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네가 군대에 있을 때는 참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었는데. 가끔 그때 편지들 꺼내서 읽어보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 편지들을 읽다 보니까, 전역을 하고 나서도 나한테 편지를 보내줬었더라 네가. 혹시나 네가 여전히 그 집에 살고 있을까 해서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어. 너무 오랜만에 편지를 쓰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사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아.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두괄식과 미괄식이 생각이 나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니까, 두괄식으로 쓰고 생각을 덧붙여볼게. 후, 마음의 준비를 좀 할게. 네가 만약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맞아. 여기가 약간 웃음 포인트야. 살짝 미소 지어주고 마저 읽어주었으면 좋겠어.
진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진아랑은 정말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었다. 진아의 편지를 모두 읽고 나면, 나도 그녀에게 받았던 편지를 읽어보겠다 생각하며 두 번째 장을 읽기 시작했다.
좋아. 마음의 준비는 끝났어. 제이야. 혹시 삼척에 와줄 수 있어? 나는 지금 막걸리를 주조하고 있어. 내가 예전에 얘기했던 것 기억나? 고향에서 막걸리 주조장을 차려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막걸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었지.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 중이야. 정확히는 '제일 맛있는 막걸리를 만드는'을 향해가고 있지. 내가 만든 막걸리의 이름은 '삼척단신'이야. 삼척의 달고 새로운 것이라는 뜻이야. 여하튼, 네가 나의 주조장에 와줬으면 좋겠어. 여기 와서 내가 만든 막걸리를 맛보고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어. 이 편지가 너에게 닿을지 모르겠지만. 이 편지를 읽는다면, 꼭 와줬으면 좋겠어. 보고 싶다 제이야. 편지봉투에 있는 주소로 오면 돼. 이만 줄일게. 안녕.
- 너를 보고 싶은 친구, 진아가.
진아의 편지는 초대장이었다. 삼척단신의 주조장으로 진아가 나를 초대한 것이다. 자신의 꿈을 좇아가는 진아의 삶이 멋있었다. 물론 편지의 내용을 넘어 진아의 현실에 들어가면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편지에 보이는 진아의 모습은 분명 멋있었다. 생각해 보니 진아는 연락처 하나 남기지 않았다. 그저 주소만 남겼다. 긍정도 부정도 스마트폰으로 받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삼척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날짜를 확인하고, 계획을 세웠다.
-
토요일 새벽에 집을 나왔다. 나는 차가 밀리는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이 참 싫었다. 물론, 내가 아는 대부분의 운전하는 사람들 중 차가 밀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어젯밤에 일찍 잠에 들지 못했지만, 졸리거나 피곤하진 않았다. 아마도 내가 가는 곳에 있을 어떤 마음이 설렘일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겠지. 동해로 향하는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이 없었다. 나는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평소엔 크루즈 모드를 사용해 페달을 밟지 않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했지만, 오늘은 내가 직접 페달을 밟고 싶었다. 내가 직접 이 자동차의 속도를 조절하고 싶었다. 1시간쯤을 달렸을까, 점점 하늘이 밝아왔다. 내가 향하는 쪽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나는 차에 두었던 선글라스를 꺼냈다.
-
흰색 담벼락을 양옆에 둔 철문이 있었다. 철문의 오른쪽 담벼락에는 나무 간판이 붙어있었다. 고딕체로 쓰여있는 너의 주조장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삼척단신 주조장]
나무 간판 옆에는 초인종이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초인종을 누르려다 잠시 멈추고 손을 다시 내렸다. 과연 나는 초인종을 눌러도 될까. 고민했던 것 같다. 이내 다시 오른손을 들어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어서 오세요. 삼척단신 주조장입니다. 무슨 용무로 방문하셨나요?"
진아의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들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진아야. 나 제이야."
"문 열어줄게! 들어와!"
덜컥.
철문의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철문을 밀고 주조장 안으로 들어갔다. 철문 안에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담벼락 안쪽의 벽을 따라 꽃이 심어져 있었다. 붉은색의 꽃이었다. 향기로움이 마당 한가득이었다.
"와줬구나 제이야. 정말 너무 반가워!"
"진아야. 잘 지냈어? 너무 반갑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고 반가운 눈빛을 한껏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만난 진아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진아는 둥근 모양의 검은색 테두리가 있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진아의 피부가 너무 하얘서 가끔은 아픈 게 아닌가 걱정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오랜만에 만난 진아의 피부는 여전히 하얗다. 약간은 펑퍼짐한 청바지 위에 검은색 반팔 티를 입고 있었다. 일을 하다 나온 것인지 진아는 갈색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아, 주조하다가 급하게 나와가지고. 어서 들어와."
진아는 수줍게 뒤로 돌아서는 나를 안내했다.
"꽃향기가 너무 좋다. 작약인가?"
"응. 작약이야. 향도 좋고, 이뻐서 담벼락에 잔뜩 심었어."
흰색 담벼락 안에 흰색 벽의 주조장이 있었다. 진아는 건물의 뒤쪽으로 나를 데려갔다. 뒤로 돌아가니 위로 올라가는 높은 나무 계단이 있었다.
"계단이 좀 높지?"
"괜찮아. 이 정도는. 나무 계단이라 더 이쁜데?"
"그치? 원래는 철로 된 계단이었는데, 이 발판들 내가 직접 다 바꿨어."
"정말? 대단한데?"
"뭐, 나무판 단단한 거 몇 개 사서 그냥 붙인 거라 엄청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어."
"그래도... 대단하다."
"고마워."
나무 계단은 2층을 넘어 한 번에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옥상에 도착하니 옥탑방이 있었다. 방 앞에는 옥상의 난간 둘레를 따라 전구가 설치되어 있었고, 평상이 하나 있었다.
"밤에 보면 더 이쁜데."
"옥탑방이라니, 너무 좋다. 낮에도 이쁜데?"
"그래? 이따 밤에도 한 번 봐봐. 점심은 먹었어?"
"아니, 아직 안 먹었어."
"그래, 여기 앉아서 좀 기다릴래?"
"응. 알았어."
진아는 나를 평상에 앉혀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옥탑방을 둘러보았다. 평상 위에는 천막이 있었다. 방에서부터 난간까지 이어진 끈들이 천막을 지탱하고 있었다. 옥상의 난간을 지나서는 바다가 보였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오션뷰 옥탑방이라니. 나는 옥상의 난간을 따라 걸었다. 한 바퀴 돌면서 난간에서 보이는 경치를 감상했다. 다시 평상에 앉았을 때,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 쏟아졌다. 진아가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가 문을 뚫고 미세하게 새어 나왔다. 나는 잠시 평상에 등을 대고 누웠다. 평화로웠다. 그늘 아래 바람은 시원하고, 몸은 피곤하고.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다.
눈을 떴다. 밥은 아직인가.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확실히 허기졌다.
"진아야?"
진아를 불렀다. 진아가 방 문을 열고 나왔다.
"일어났어? 많이 피곤했나 봐."
"내가 얼마나 오래 잤어?"
"글쎄, 한 네 시간 정도 잔 거 같은데?"
"깨우지 그랬어. 미안해. 너무 오래 잤네."
"괜찮아. 나는 여기가 집인걸. 배고프지? 같이 저녁 먹을까?"
"응. 좋아."
진아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어젯밤부터 많은 걱정을 했나 보다. 진아를 처음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지.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나는 여기에 두 가지 고민만으로도 답을 내리지 못하고 도착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문제가 해결되니 마음이 놓이면서 잠이 들었나 보다. 이번에는 진아가 금방 방에서 나왔다. 진아가 상에 차려온 것은 수육과 김치였다. 그리고 흰색 쌀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아까 내가 너무 오래 준비해서 네가 잠이 들었더라고. 깨우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 보여서 뒀어."
"미안하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잠이나 자고."
"괜찮아. 멀리서 왔으니까. 힘들었을 거야. 아 잠깐만."
진아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자신의 막걸리인 삼척단신을 3병 들고 나왔다.
"짠! 내가 만든 막걸리야. 수육이랑 먹으면 엄청 좋을 거야."
"궁금하다. 진아 네가 만든 막걸리."
진아는 양은그릇에 삼척단신을 따라주었다. 막걸리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양은그릇에서 아주 맑은 소리가 났다. 진아는 반이 조금 넘게 막걸리를 채워주고는 술병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병이었다. 라벨지에는 삼척단신이라는 글자가 세로로 쓰여있었다. 진아의 양은그릇에 반이 조금 넘게 막걸리를 채워주었다.
"병 디자인 어때? 이것도 다 내가 직접 한 거다?"
"아, 진짜? 패키지 디자인을 직접 한 거야? 엄청나다."
진아는 자랑을 하고는 이내 쑥스러워했다.
"어떻게 지냈어? 궁금하다 제이야."
"음,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까."
나는 시간순으로 나의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잠시 머릿속을 정리했다.
"어제부터. 가까운 이야기부터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 줘."
"어제... 음. 그래 어제. 어제 뭐 했지?"
진아는 내가 다시 이야기를 할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생각에 잠긴 채 삼척단신이 담긴 양은그릇을 집어 입으로 향했다.
"어어! 짠하고 마셔야지!"
"아, 그렇지."
나는 진아와 짧게 건배를 하고 다시 삼척단신을 나의 입으로 향했다. 한 모금 입에 넣는 순간 달콤한 꽃향기가 입에 묻었다. 그 향이 좋아 그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향기 가라앉길 기다렸다. 차가운 기운이 입안에 가득해지고서야 나는 술을 삼켰다.
"어때? 맛있지?"
진아는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진아의 저런 얼굴이라면, 나는 맛이 없었어도 맛있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반칙처럼 느껴졌다.
"솔직하게 말해줘?"
"응, 솔직하게."
"향기 나는 맛이야."
"그래? 향기 나는 맛? 맛있다는 거지?"
"그럼, 물론이지. 막걸리에서 꽃향기가 나. 그 향이 좋아서 입에 머금게 되는 술이랄까? 진아야. 어쩌면, 너는 이미 꿈을 이뤘을지도 몰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막걸리 말이야."
"정말? 그 정도로 맛있어?"
진아는 눈을 크게 뜨면서 되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진아의 입꼬리가 눈에 닿을 정도로 올라갔다. 그런 진아의 얼굴을 보니, 자연스레 내 입꼬리도 올라갔다.
"이 향을 내려면, 쌀을 발효시키는 보관법이 굉장히 중요해. 근데 이건 영업 비밀이라 제이 너에게도 알려줄 수는 없어."
"그래, 아마 알려줘도 나는 잘 모를 거야."
진아는 뿌듯한 표정을 하고는 씩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래서?"
"응?"
"그래서 어제 뭐 했어?"
아, 어제 내가 뭐 했더라.
-
책장 위에 올려져 있던 종이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 안에는 지금까지 내가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은 모든 편지들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진아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찾아보았다. 진아의 편지는 찾기 쉬웠다. 노란색 봉투를 찾으면 되니까. 노란색 봉투에 담긴 편지는 8통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것 같으면서도 또 생각보다 많지 않은 편지를 주고받은 것 같았다. 그중에서 한 편지봉투를 열어 편지를 꺼내 읽었다. 아마도, 제일 처음 받았던 편지였을 것이다.
제이에게.
안녕? 나 진아야. 네가 보낸 편지 잘 받았어.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여름의 속초는 참 덥다. 하지만, 바다가 있어 좋아. 매일 아침마다 바다를 보면서 새삼 소중함을 느껴. 학기 중에는 바다를 보기가 참 힘든데 말이야. 거기는 어때? 거기도 많이 덥지? 지난 장마에 비가 많이 와서 난리가 났었다고 들었어. 넌 괜찮니?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번 방학 동안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고 있어. 피서객들이 많이 와서 가게가 많이 바쁘거든. 일 도와드리다 보면, 가끔 나도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넌 지금 하는 아르바이트 어때?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해서 많이 힘들겠다 싶어. 남은 방학 잘 보내고, 개강하면 학교에서 보자. 심심하면 또 편지 써! 안녕!
진아가.
편지를 쓰는 행위는 휘발성이 있다. 내가 쓴 편지는 내가 따로 어딘가에 기록하지 않는 이상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아에게 처음 편지를 썼을 때 내가 무슨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저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는 것뿐이다. 나는 그 해 여름에 무엇을 했을까. 첫 편지를 접어 다시 봉투에 넣었다. 다음 편지를 열었다.
친구 제이에게.
잘 지내지? 편지 잘 받았어! 네가 군대에 가다니 아직도 잘 믿기지 않아.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선임들이 많이 괴롭히지 않을까도 걱정이 돼. TV에서 보니까 아직도 군대에서 후임들 폭행하는 일이 많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제이 넌 착해서 선임들이 좋아할 것 같아. 밥 맛있다고 하는 거 보니까 아직까진 그렇게 힘들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나는 새 학기가 시작되어서 정신이 없어. 그리고 학교 앞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 학교 앞에 카페가 여기밖에 없어서, 손님이 너무 많아서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시간은 빨리 가. 너도 시간이 빨리 가야 할 텐데. 내일 1교시라 일찍 자야겠다. 너는 벌써 잘 시간이겠구나. 편지 또 쓰고! 다치지 말자! 안녕!
친구 진아가.
이등병 때, 많이 힘들었는데. 편지에는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썼었던 것 같다. 진아에게는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휴가 나가서 진아가 일하던 카페에 갔던 기억이 났다. 진아와 함께 다른 남자 아르바이트생도 있었는데, 키도 크고 목소리도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때 느꼈던 감정은 질투였을 것이다. 두 사람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당시 진아에게 슬며시 잘 어울린다며 마음에도 없던 말을 했었다. 진아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뭐가?'라고 대답했었다. 나는 조금 치사하게 '오늘 신은 신발.'이라고 대답했었다.
예비역 제이에게.
전역을 정말 축하해! 2년 가까이 많이 고생했어 제이야. 이제 다시 학교로 돌아오겠구나. 나는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어. 아직은 실수도 많이 하고, 일이 많이 느려서 속상해. 그래도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고 생각해. 그래도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다! 학교 다닐 때가 좋았는데 말이야. 열심히 스펙 쌓고, 학점 관리하고, 영어 공부하고 했는데. 그래서 좋은 회사에 취업했는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실컷 혼란스러워하는 중이야 나는. 너도 앞으로 진로에 대해서 고민이 많이 될 텐데.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깐 잘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아 그리고, 방학되면 서울 놀러 올래? 내가 사회인 선배니까 맛있는 밥 사줄게. 서울 밥 비싼 거 알지? 편지 기다릴게. 안녕!
사회인 진아가.
행복하지 않던 진아가, 행복한 진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섣부른 판단이겠지만, 진아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아의 편지들을 계속 읽으니 문득 내가 진아에게 썼던 편지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아도 내가 보냈던 편지들을 가지고 있을까? 내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
"어제, 편지들... 읽었어. 네가 보내 줬던 편지들."
"아 정말? 다 가지고 있어? 내가 뭐라고 썼는지 궁금하다."
"진아 너는? 내가 보내준 편지 다 가지고 있어?"
"응, 나도 다 가지고 있어."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눈을 마주쳤다. 문득 내 얼굴이 빨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난 여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아에 대한 내 마음이 여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둘러 시선을 허공으로 보냈다. 마주 앉아 있던 진아가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속초 밤바다 어때?"
평상에 내 몸을 지탱하고 있던 나의 손에 진아의 손이 살짝 닿았다.
"제이야."
"응?"
"주조장 있잖아. 도와줄래?"
진아는 많은 말을 함축해서 내게 말했다. 내가 삼척으로 오게 되면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삼척에 내가 와서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함축해서 내게 말했다. 나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고민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건, 그저 소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