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꾸준 Oct 28. 2022

술에 취한 앵무새가 밤새 욕을 했다.

2022-06-01(수)_제시어 글쓰기

제시어

- 반나체로 앉아있는 남자에게 산탄총을 겨누고 있는 한 남자

- 소리를 잃던 밤

- 보험금의 수령인

- 붉은 악마 응원단





"제 남편은 청각장애인이에요. 소리를 듣지 못하죠." 


여자가 독한 술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가 그 향을 음미하고는 이내 삼켰다. 


"무슨 소리가 들려도 듣지 못하는 병신이라구요." 


여자가 격양된 말투로 말을 했다. 독한 술을 여러 잔 마신 그 여자의 눈이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마트에서 주차를 아주 편하게 할 수 있어요. 나는 병신이요 하고 앞 유리에 딱지를 붙여 놓으면 되거든요." 


여자가 말을 이어갔다. 


"남편이 왜 청각 장애인이 된 줄 아세요?" 


여자의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여자는 공방 주인이 묻지도 않은 얘기를 먼저 꺼냈다. 


"그날은 월드컵 때문에 엄청 시끄러운 밤이었어요. 온 거리가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 가득했죠. 초저녁부터 거리에 모여 필승 코리아를 외쳐대는데, 저에겐 진짜 악마들 같았죠. 그날이 내 남편이 소리를 잃던 밤이었습니다." 


여자는 다시 술잔을 들어 입에 그 독한 술을 머금었다. 그리고 다시 그 흐린 눈으로 공방 주인을 바라보았다. 공방 주인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술잔을 바라보았다. 


"같이 잘래요?" 


여자의 말에 공방 주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같이 자..자..구...요." 


여자는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테이블에 머리를 대고 엎드렸다. 공방 주인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공방 주인은 일어나 거실로 걸어갔다. 거실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공기청정기가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작동하고 있었다. 거실과 부엌의 사이에는 새장이 하나 있었고. 새장 안에는 앵무새 한 마리가 있었다. 



-



남자가 공방 주인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여자와 남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다시 화면을 만지고는 글자를 적었다.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제 아내를 보신 적 있나요? 아내가 이곳에서 가구를 자주 산다고 들었습니다.] 


공방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남자는 안으로 공방 안으로 들어갔다. 공방에는 나무 향이 가득했다. 공방 주인이 작업하던 것들이 가득했다. 공방 주인은 남자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남자가 알아차렸는지 다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여기에 적어주세요.] 


공방 주인은 남자의 스마트폰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글자를 입력했다. 


[아내분은 단골손님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하신 것은 아마 한 달 전쯤입니다.]

[사실, 제 아내가 실종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내가 다녀간 곳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유감입니다. 제가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혹시 마지막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 어디로 간다거나 하는 얘기를 하신 것은 없나요?]

[마지막 방문하신 날에는 도마를 직접 만들어 가져 가셨습니다. 집에서 쓸 도마가 오래되었다고 하셨죠.]



-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어요. 남편이 죽으면 그 사망 보험금의 수령인이 저거든요."

"보험금을 수령하면 뭘 하고 싶으시죠?"

"빚 갚아야죠. 남편 몰래 진 빚이 많거든요. 남편이 인공 달팽이관인가 뭔가 수술한다고 모아둔 돈도 제가 썼어요. 엄마가 아파서 병원비 필요하다고 했거든요."

"어쩌다가 빚을 지게 되셨죠?"

"NFT가 한참 유행하잖아요. 무슨 코끼리 그림 하나만 사놓으면 매달 돈이 들어온다는 거예요. 처음에 한두 마리 샀는데, 통장에 돈이 꽂히더라고요.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다 썼죠. 근데, 그 자식들이 돈 갖고 튀었어요. 바보 같죠?" 


여자는 다시 독한 술을 입에 머금었다. 여자는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었다. 


"덥네요. 사장님. 사장님은 비밀 없어요?" 


공방 주인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눈을 떴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소파 앞에는 큰 TV가 있었다. TV에서는 흑백 영화가 틀어져 있었다. 영화 속 어둡고 습한 지하실의 한 나무의자에 반나체로 앉아있는 남자가 묶여있었다. 그 남자는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의 앞에는 그를 향해 산탄총을 겨누고 있는 한 남자가 서있었다. 산탄총을 겨눈 남자의 대사가 성우의 목소리를 통해 배우의 입모양과 다른 소리를 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앵무새에게 술을 마시게 했지. 그럼 그 앵무새가 밤새 욕을 하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하지." 


산탄총을 겨눈 남자가 잠시 뜸을 들이며 총구를 내렸다가 이내 다시 들어 올리고는 총을 쏴버렸다. 반나체의 남자의 머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여자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여자는 공방 주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없습니다. 비밀." 


공방 주인은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건조하게 말했다.



-



[길거리에 붉은 악마 응원단이 가득했어요. 제 옆으로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죠. 사람이 너무 많아 버스가 아주 천천히 가고 있었어요. 흥분한 사람들이 버스를 손으로 두드리기도 하고, 버스 위에 올라가 마구 뛰기도 하고 버스 안에서도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죠. 저는 너무 시끄러웠어요.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음소거 버튼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누르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제 옆을 지나가던 버스의 타이어가 터져버렸습니다. 그때 아주 큰 폭발음이 났는데, 그게 제가 이 세상에서 들은 마지막 소리였습니다.] 


공방 주인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다시 스마트폰의 화면을 열심히 두드렸다. 


[그런 제 옆에 아내가 있었죠. 아내가 지극정성으로 저를 보살펴주었습니다. 혹시 아내가 저에 대해 이야기를 하진 않았나요?] 


공방 주인은 남자의 스마트폰을 들어 두드렸다. 


[남편분이 청각을 잃으셨다고만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남자는 독한 술을 입에 머금었다 이내 삼켰다. 


[만약 아내가 죽었다면, 시체라도 찾고 싶습니다.] 


남자는 공방 주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공방 주인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술잔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다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실종이 아니라 사망이어야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범인이 아니라 시체를 찾으러 왔습니다.]



-



"어? 앵무새가 말하는 거 같아요!" 


여자는 앵무새가 있는 새장으로 걸어갔다. 공방 주인도 여자의 뒤를 따랐다. 


"저 앵무새가 말하는 거 처음 봐요." 


앵무새가 같은 말을 반복해서 말했다. 


"병신이라구요. 병신이라구요. 같이 잘래요? 병신이라구요. 병신이라구요." 


여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제가 했던 말들이네요. 제가 했던 말들을 앵무새한테서 들으니까 웃기네요." 


여자는 앵무새가 또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며 새장 앞에 서서 앵무새가 다른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 여자를 따라 웃다가 병신이라 말하다가를 반복하던 앵무새가 다른 말을 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여자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이 앵무새가 영화 대사도 보고 따라 하나 봐요!" 


한참을 웃던 여자가 혼자 웃던 것 민망하여 웃음을 멈췄다. 여자는 공방 주인을 바라보았다. 여자는 공방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앵무새는 또다시 새로운 말을 했다. 


"더럽게 무겁네. 잘라서 묻어야지." 



남자의 눈꺼풀이 점점 힘을 잃어갔다. 힘을 잃어가는 눈으로도 계속해서 공방 주인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새장에 있는 앵무새가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제 남편은 청각장애인이에요. 소리를 듣지 못하죠. 무슨 소리가 들려도 듣지 못하는 병신이라구요. 병신이라구요. 소리를 듣지 못하죠. 병신이라구요. 제 남편은 병신이라구요." 


남자는 공방 주인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사장님 덕분에 마음이 놓입니다. 제가 오늘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자고 가도 될까요?] 


앵무새는 여전히 큰 소리로 떠들었다. 이대로라면 밤새 욕을 쏟아낼 기세였다. 


"제 남편은 청각장애인이에요. 소리를 듣지 못하죠. 병신이라구요. 병신. 병신. 병신이라구요. 소리를 듣지 못하죠. 병신. 병신이라구요. 제 남편은. 병신이라구요." 


공방 주인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앵무새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건넨 스마트폰을 받아 글자를 적었다.  


[네. 그렇게 하세요. 남는 방이 있습니다.] 


공방 주인은 남자에게 남는 방으로 안내했다. 술에 취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공방 주인의 뒤를 따라갔다. 공방 주인은 방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남자는 공방 주인의 팔을 잡아당겨 안았다. 남자는 자신이 입고 있던 셔츠를 벗었다. 반나체가 된 상태로 공방 주인의 입술로 자신의 입술을 내밀었다. 거실의 새장에 있는 앵무새가 더욱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병신이라구요. 소리를 듣지 못하죠. 잘 안 잘리네. 더럽게 무겁네. 잘라서 묻어야지. 잘 안 잘리네. 병신이라구요. 병신이라구요. 병신이라구요. 살려주세요." 


공방 주인은 남자를 슬며시 밀어냈다. 남자는 공방 주인을 바라보았다. 공방 주인도 남자를 바라보았다. 거실과 부엌 중간의 어디쯤에 있는 새장 안에서 술에 취한 앵무새가 밤새 욕을 했다.


이전 07화 [작가노트] 그림 그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