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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Sep 27. 2024

오래된 노래처럼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과의 대화는 언제나 날 민낯으로 만들어 솔직함을 떠들도록 한다. 당신을 마주한 나는 위로받고픈 심정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이야기를 하고픈 마음에 가깝다. 나른한 표정으로 당신께 남들은 모르는 나의 악한 감정 혹은 홀로 한 선행을 실토하고 나올 때면 너저분했던 속내가 일순간 정갈해짐을 느낀다. 당신에게 무슨 힘이 있는 건, 아닐까 골몰하며 해가 저문 밤 기운을 만끽한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시끌벅적한 인파 속에서도 당신을 떠올릴 경우 고요해진다. 한결같이 담담한 표정과 시종일관 일정한 톤의 목소리.


“제가 또 책을 낼 수 있을까요?” 푹신한 빈백에 앉아 손을 바삐 움직이며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이 어떠할지는 대략적으로 가늠이 갔다. “그럼요. 20대 때 냈으니까, 이제 30대에 내면 되겠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서 상상한 문장을 직접적으로 귀를 통해 들으니 포근함이 두 배가량 뛰었다. 무척이나 따뜻해서, 하마터면 오래 그 얼굴을 들여다보고 싶어질 뻔했다. “30대에는 좀 더 성숙한 글을 쓸 수 있겠죠?” 건너오는 끄덕거림이 위안이었다. 당신은 내가 가진 고민거리를 언제든 별것 아닌 일로 뒤바꿔주었다. 이러한 것도 마법이라 할 경우 과연 마법사가 아닌가, 바보 같은 농담을 건네려다가 말았다.


좋아하는 어른의 상이 뚜렷한 편인데 당신은 단언컨대 해당되는 면이 전부였다. 알게 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적부터 느꼈다. 어딘가 통달한듯한 분위기, 감히 지나온 삶을 알고파졌다. 차곡히 내공이 쌓인 느낌이랄까. 당신 앞에선 구태여 눈치 볼 일이 없어 좋다. “제 앞에선 나긋해지는 것 같아요.” 정확히 나를 콕 집은 말이었다. 평소 사람들 사이에 있을 경우 겉보기와는 달리 속 안이 잔뜩 경직되어, 일부러 더 활발하게 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이토록 좋고 편안한 사람을 만날 시엔 한껏 풀어져 부드러워지고 나른해지며 템포가 확연히 느려진다. 이게 가장 나답다고 여겨진다.


어느 날은 당신을 무척이나 닮고 싶어서, 당신이 하는 말마디들을 따라 하고 당신이 듣는 음악을 따라서 들었다. 그러하면 당신과 얼추 비슷한 내가 된 것 같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잇따라 고백하자니, 난 당신이 날 흠씬 귀여워하는 눈 맺음이 좋다. 정말이지 그 찰나마다 내 이야기를 하고픈 충동이 일어난다. 그간 겪어온 무수한 사연들을 남김없이 떠들어도 당신은 그저 날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결코 떠나지 않을 듯하단 착각에 해롱이게 된다. 그리고 착각이 부디 틀리지 않았기를 바라게 된다.


나는 당신을 존경하고 좋아한다.

오래된 노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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