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는 일은 겸연쩍다만, 잘 지내니? ‘가끔’이라는 말은 사실상 ‘항상’이라는 표현과도 같아. 나는 가끔 널 생각한다는 문장을 적곤 했으나, 솔직히 말하자면 항상에 가까워. 이틀 내 비가 꼬박 내렸어. 그 바람에 날이 한껏 추워졌어. 기온이 뚝 내려간 모양인데 딱히 뉴스를 보거나 인터넷에 검색해 확인해 보진 않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서 창문만 열어도 넘나드는 찬바람에 옷장 속 묵혀두었던 긴팔을 꺼내 입어야 했지. 온종일 감도는 쌀쌀함에 바스락거리는 팔을 여러 번 비비적거렸다면, 네가 상상하기 훨씬 쉬우려나.
요즘엔 뭐 하고 지내니. 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떠한 대화를 나누고 무엇을 함께 꾸려나가고 있니. 사랑하는 사람은 생겼을지도 궁금하구나. 난 최근 들어 프렌치토스트 만드는 것에 빠졌어. 계란을 한 다섯 개쯤 그릇에 깨서 풀고 설탕 대신 대체 감미료를 넣어 저어주고는, 통밀 식빵을 꺼내 담갔다가 건진단다.
이어서 미리 달궈놓은 프라이팬 위에 기름 한번 두르고 타월로 쓱 닦아낸 뒤, 계란 물에 흠뻑 젖은 통밀 식빵을 얹어. 그러면 너도 알지? 치-익 소리를 내며 구워지는 계란과 하나 된 식빵을. 빈번히 만들어 먹었더니 이제 제법 속도가 붙었을뿐더러 잘 태우지도 않아. 불 조절과 서둘러 뒤집어주는 게 중요하더라고. 꽤나 맛있는 맛이 난다는걸, 넌 모를 테지. 아쉬워지길 바랄게(농담이야).
너는 무엇에 빠져있니. 맨날 내가 먹는 음식을 궁금해하던 너는 즐겨먹는 음식이 생겼니. 아님 자주 하는 요리라든가. 또 매번 끼니를 거르는 거 아니지? 대충 때우진 않았으면 하는데 말이야. 좋아하는 취미 생활은 여전한지도 알고 싶네. 네 소식은 도통 들을 수가 없어서, 이따금 네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건 아닐까 상상해.
우리가 나눈 시간이랑 감정들이 한여름 밤의 꿈은 아니었나, 아리송해질 적도 있어. 그럴 때면 괜스레 영화였던 마냥 근사한 제목을 붙이고 싶어지곤 하는 거 있지.
벌써 올해도 다 가고 있다. 곧 크리스마스가 올 걸 생각하니까 기분이 굉장히 묘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붕어빵 만드는 기계를 구매해서 직접 만들어볼까 해. 다코야키나 와플, 이런 쪽도 재밌겠다.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부디 행복한 연말이 되었으면 좋겠어. 새해도 버겁지 않은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으면 하고.
나이를 먹는다는 게 두렵던 옛날은 지난지 꽤 되었고, 요즘엔 어서 나이를 먹는 편도 나쁘지 않을듯해. 왜냐 모두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 그러면 조금은 만사 의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안 좋은 기억들도 희미해질 것이고.
그때쯤이면 결혼도 했을 테지. 결혼이야, 금방일 수도 있고 먼 훗날 얘기일 수도 있고. 주변엔 만나면 항상 결혼 얘기가 빠지지를 않아. 너도 그래? 내가 결혼을 할 경우 네가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축하해 줄지도 의문이다. 결혼식, 굉장히 아름다울 텐데 말이야. 보러 와줄래?
하고 싶은 일에 관해서도 종종 골몰해 보게 돼. 지금 하고 있는 직종이 나와 맞는지도 확신이 서질 않아. 지금 이 일을 한지 몇 년이나 흘렀음에도, 희한하지. 뭐 진로 고민은 죽을 때까지 하는 거라고들 하지만. 어디 한군데 정착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닌듯해. 내일은 외근이 있어 서울에 가봐야 해. 오랜만에 가는 서울이라 벌써 피로하네.
근래엔 본인을 오롯이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의 결핍과 콤플렉스를 잘 달래고 다듬어야 하는데,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 할 수 있는 일인 거거든. 연인과 가족, 친구도 아녔어. 내가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소중하게 여겨야 해. 그래야 어떠한 난관과 무수한 굴곡 속에서도 반드시 일어날 힘이 생겨. 내가 나를 지켜야지. 우선 ‘나’가 안정이 되어야 주변을 챙길 수 있는 것 같아.
책을 다시 읽어보려고. 서점에 발길을 끊은 지가 손가락을 다 접고도 남을 지경이거든.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지. 영양제도 까먹으면 안 되고. 가까운 곳은 되도록 걸어 다니고.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고. 새로운 취미를 찾고. 의미 있는 영화를 보며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계속해야 돼. 삶을 대하는 태도도 변화해 나아가야 하고.
“이렇게 지내다 보면 나중에 언젠가 남들보다 더 좋은 역량을 갖추게 되실 겁니다” 삶을 통틀어서 과거보다 현재가 나쁠 수 없고, 현재보다 미래가 안 좋을 순 없다고 믿을래.
그럼 말을 줄이며 모쪼록 나름대로의 삶을 잘 영위하길 바랄게.
감기 조심하고.
가을이라고 슬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