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전부 함께 졸업했다. 학창 시절을 얘기하자면 상아가 빠질 수 없었다. 상아는 어린 시절부터 똘똘하고 영리하며 제 할 말을 조리 있게 잘 하는 아이. 어떠한 난관이 생기든 간에 혼자서 척척 풀어나가는 아이. 시험공부를 하더라도 상아는 요령껏 문제로 나올법한 것들을 쏙쏙 뽑아내 공부를 했고 반면 난 그런 능력이 부족해 교과서를 아예 통째로 외우는 쪽이었다. 상아는 나보다 키도 작으면서 더욱 커다랗고 강단 있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서슴없이 해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시켜줬다. 좁은 나의 시야에 비해 상아의 시야는 넓었다. 그래서 나는 내 세상을 버려두고 너의 세상을 보고 싶은 적이 더러 있었다.
난 불안을 달고 살았다. 평생을 불안정한 모양새로 아슬했고 위태로웠다. 그리고 그런 나를 네가 옆에서 지탱해 줬다. 내가 “난 이상한가. 이상한 걸까.”할 때마다, “닥쳐.”로 입을 막았다. 뒤이어 “네가 이상한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거야.” 달콤한 말로 나를 잠재웠다. 토닥토닥해줬다.
스무 살 초반. 작은 몸집으로 술에 만취한 나를 둘러메고서 집까지 데려와 신발을 벗기고 방 안에 눕힌 뒤 유유히 돌아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서 부정적인 것들을 토해내는 내 입가를 닦아내고서 토사물이 묻을까 머리를 묶어주었다. 감정을 못 이겨 울면서 뛰쳐나올 경우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어디든 있었다. 너는 어디서든 나를 반겨주었다. 때로는 엄마 같았고 때로는 언니 같았으며 때로는 동생, 친구 등등 뭐든 되어주었다. 너랑 있으면 한결 나아졌다. 요동치는 감정들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너는 시끄러운 나의 마음속을 지휘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냈다.
나는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으면 싶어 나의 모든 것들을 불어버렸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너이기를 바랐고 너를 제일 잘 아는 사람 역시 나이기를 원했다. 네가 다른 누구와 더 친해 보일 시엔 괜스레 질투가 나기도 했다. 너랑 멀어질 시기엔 서러워졌다. 너를 일등으로 생각하는 나처럼 너 또한 나를 일등이라 여겨주길 어린 마음으로 소망했다. 나의 전부를 아는 네가 없어질 경우 덩달아 내가 없어질 거였다. 너는 내가 겪어온 모든 좌절과 슬픔, 절망, 행복, 사랑, 기쁨을 아는 사람. 그런 사람 이전에도 이후에도, 과거에도 미래에도 너 하나면 족하다. 세상이 나를 등 돌려도 너만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어느 누가 나를 별로라 할 때엔 고작 며칠 앓고 말 테지만 만일 네가 그러면 난 평생을 괴로움에 살듯하다.
난 가끔 나를 혼내고 나를 타이르고 나를 웃겨주며 나를 경청해 주는 네가 무척이나 소중하다. 서로 상처를 공유하고 위로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자랑스럽다. 어딜 가든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는 질문에 단 일초의 고민도 없이 너라고 답한다. 이건 영원히 변함없을 답변이었으면 싶다.
난 오늘도 네게 즐거운 일들만 넘쳐나기를 기도한다. 너를 슬프게 하거나 화나게 하는 것들은 죽어도 마땅하다. 너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과 살아가자.
너는 나를 버리지 마. 너만은 그러면 안 돼.
너와 할머니가 되어 싸우는 상상을 한다.
“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듣지 마. 상처받을 필요도 없어.” 네 말을 끌어안고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