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경멸했던 계절은 내가 태어난 여름

평범한 일상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꿈꾼다.

by 주또

생일이다. 난 왜 여름에 태어났을까. 여름에 태어난 바람에 유독 더위를 많이 타고 땀을 남들보다 배로 흘렸던 걸까. 조금만 걸어도 온몸이 푹 젖었다. 샤워를 한 것 마냥 땀 범벅이가 되어버리는 탓에 굉장히 부끄러웠다. 다들 뽀송한 가운데 축축한 나는 곧잘 창피해졌고 콤플렉스이기도 했다. 그래서 여름엔 잘나가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저녁에 나가거나 여름방학이 와도 집에만 있거나 그랬다.


그러다 한 재작년쯤인가. 스물일곱이 되던 해, 희한하리만치 더위를 덜 타기 시작했다. 한여름에 긴팔을 입고 다니기도 했고 선풍기 없이도 멀쩡할 수 있었다. 신기했다. 엄마도 나이를 먹으며 땀이 사라졌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여하튼 나는 여름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을 경멸하기도 했다. 땀이 많고 더위에 못 이기던 시절에 말이다. 생일도 썩 반가워하는 편은 아녔다. 왠지 생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괜한 기대를 하게 되었고 잇따라 실망이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점차 실망을 하지 않기 위해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기다리지 않게 되었고 달가워하지 않게 되었다.


생일엔 누구도 만나지 않게 되었다. 대신에 생일엔 꼭 가족과 보내게 되었다. 어찌 보면 긍정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넷이서 오순도순 모여 앉아 생일 케이크 위에 꽂힌 촛불을 끄고 나면 한차례 잘 살아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지켜야 할 것들이 촛불의 개수만큼 불어났다.


생일을 반가워하게 된 건 작년부터다. 얼마 안 되었다. 왜냐, 작년에 예상치도 못한 이들의 축하를 받게 되면서 ‘아 이번 연도에 내가 특별히 애정해야 할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생일은 즉, 내가 올해 어떤 이들에게 사랑을 더 베풀면 좋을까,를 알게 되는 날이란 걸 깨달았다. 받은 마음을 감사히 여겨야지. 고스란히 담아두었다가 보답해 주어야지. 축하의 한마디와 선물, 나는 그것들이 전부 시간을 쏟는 일이라는 게 특별한 거다. 어떤 문장을 보내면 좋을까, 이 선물은 어떨까, 고심했을 순간들이 사랑스러운 거다.


동생과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나와 산책을 하던 길.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동생이 외쳤다. “오늘 누나 생일인데, 마침 슈퍼문이다!” 캄캄한 밤하늘에선 커다란 보름달이 빛을 내고 있었다. “저게 슈퍼문이라고?” 갸우뚱했으나 동생이 소원을 빌라길래 빌었다. 무탈하기를 바란다는 내용.


나빴던 옛일은 모두 없던 일이 되게 해주세요. 건강하고 무탈하게 해주세요. 행복한 일이 일어나면 더 좋겠어요.


그러고 집에 와서 찾아보니 슈퍼문에 관한 소식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생에게 물었다. 너 슈퍼문이 아니라 슈퍼마켓을 슈퍼문이라고 잘못 본 거 아니냐고. 슈퍼문은 무슨 슈퍼문이냐고.


나는 평범한 일상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꿈꾼다. 차츰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단 걸 뼈저리게 느껴왔다. 가까스로 잠잠해진 일상이 언제 또다시 거대한 파도 앞에서 무너질 듯 아슬해질지 모르는 노릇이다. 현재의 소소한 행복을 귀하게 여기자. 항상 행복하면 불안해지긴 했다. 필히 행복 뒤엔 더 큰 불행이 찾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벌써부터 두려워하지 않도록 한다. 이전에 지인으로부터 받았던 메시지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지.]

[걱정을 미리 결제하십니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단호하게 속으로 대꾸했다.

땀방울을 제법 거칠게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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