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대 무수한 것들을 사랑했으나 대부분의 면들에서 미숙했고.
사람을 구원 삼으려는 짓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이미 깨달은 후였으나 그럼에도 간혹 기대를 품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의 인생을 뒤바꿔줄 만한 영화 같은 인물이 찾아오기만을 내심 희망한다. 우습긴 하다. 애정인 척하는 것들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수차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금붕어 마냥 다 잊은 얼굴을 하는 것이. 실소가 터져 나온다.
사람이란 게 참 수학공식만큼 어렵고 헷갈린다. 분명 내겐 나쁜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세상 더할 나위 없을 정도의 천사 같은 인물일 수도 있는 거다. 되려 그 반대일 수도 있고. 나한테는 순백의 존재였으나 남들한텐 못돼 처먹은 인간일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영락없다. 누군가에게는 나와의 만남이 불운이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운이었을 테지.
고백하건대 무수한 것들을 사랑했으나 대부분의 면들에서 미숙했고 성숙하지 못함으로 인해 커다란 것들을 놓쳤다.
미안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겐 대 놓고서 고개를 조아린 적이 있다. 반면 정작 진짜 미안해야 할 일들엔 서투른 사과를 건넸던 것 같다.
물론 억울한 점들도 탑을 이룰 만큼 수두룩하다. 밤새 소각하는 곳에 나른다 한들 도무지 잊히지 않는 악몽스러운 기억들.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던가? 조금이라도 나를 얽매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마음에서 행하는 거다만, 아주 가끔은 그 일에 몰두해 다시금 옛 기억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리고 그럴 때면, 가장 나를 잘 아는 친구에게 시답잖은 메시지를 보낸다. ‘잠이나 자라.’ 잇따라오는 단호한 문장에 그나마 진정이 된다.
침대 밑에 놓인 페트병을 들어 목을 축인다. 연이어 일어나 창문을 연다. 귀뚜라미 우는소리가 한창이다. 이 소리는 소설이나 영화에선 낭만의 상징으로 쓰이곤 하는데, 어째 눈썹 한쪽이 내려앉는다. 턱을 괸 채로 한참을 유지한다. 콧속 가득 들어차는 여름 냄새. 눈을 한번 세게 감았다가 뜰 시, 무작정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듯한 기분이 든다.
술에 취하여 몇 해 살아보지도 않은 나를 업은 채, 비틀거리며 아스팔트 위를 걷던 아빠의 따스한 등. 나의 신발이 아빠의 손바닥 만했던 시절. ‘처음부터 다시 살고프다.’ 그 시절로 돌아가 처음부터 어른이 되고 싶다. 내 인생을 첫 페이지부터 다시 쓰고 싶다. 빈칸이 되어버렸으면 한다.
그러면,
만일 그런다면 조금은 이보다 더
괜찮은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