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불안에 관한 유튜브를 봤는데요…” 내가 운을 떼기 시작하여, “저는 불안이 강박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로 별 탈 없이 이어지는 대화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안정감을 주는지 알고 있나요. 우리는 잠을 잘 못 자요. 새벽에 깨어있어요. 우리는 걱정이 많고요. 꽤나 비슷한 입맛만큼 제법 같은 결의 울적함을 지니고 있지요. 당신은 추운 날 핫팩을 쥐여줍니다. 두통을 자주 앓는 내게 약을 챙겨주고요. 으슥한 골목길로 향하는 나를 지켜봐 줘요.
우리는 가끔 모든 걸, 던져버리고 싶어 하는데요.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상태에 놓여 꼼짝도 할 수 없어지곤 하지요. 하지만 그러다가도, 어느 날을 기점으로부터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 같은 거예요. 온갖 미신을 다 갖다 붙여서라도 괜찮은 해가 올 거라고 희망을 품게 된답니다.
사실상 우리는 태어나기를 예민한 사람으로 골라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적어도 나는 말이에요. 한데 마냥 또 그렇다고 얌전히 수긍하기에는, 살아가며 점차 넓어지는 우울을 뭐라 설명할 수 있겠어요. 두 손바닥으로 가려지던 슬픔이, 어느덧 바다 만해지고 있답니다. 그럼에도 여차여차 스스로를 달래고 보살펴 나아가야 하는데요. 여간 힘겨운 게 아녜요. 에너지 소모가 심해요. 집으로 돌아와, 방전되기 십상이지요.
당신은 이런 나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요. 데칼코마니가 되어주는 면들이 다분한 까닭이려나요. 갸우뚱하다가도 곧장 끄덕여줘요. 나의 쓸데없는 걱정에 일일이 이름표를 붙여주는 때도 있고요. 당신이 나보다 먼저 살아본 세월을 존경하게 되는 순간도 존재한답니다. 지난날의 아픔도 유머로 승화시키는 당신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당신 닮은 사람이 될 수 있겠지’ 막연한 꿈을 꿔요.
내일은 당신처럼 다양한 것들한테
그러려니 하고,
자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