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든 것들이 미워지기 시작했어요

by 주또

어제 꺼내 입은 외투에서는 여전히 당신 향수 냄새가 물씬 풍겨요. 별안간 울어버릴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답니다. 당신의 향이 날아가지 않도록, 서둘러 옷장 안에 다시 넣어두었어요. 하루하루 묵직이 슬픔의 무게를 더해요. 이미 다 삼켜낸 영양제의 빈 상자마저 버리지 못한 채 침대 옆 협탁에 올려두었고요. 함께 찍은 사진을 단 한 장도 지우지 못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아요. 언제 이렇게 속속들이 나의 일상 속에 파고들어와있었는지 새삼 놀라울 따름이에요.


하릴없이 천장만 올려다봐요. 당신과 나눈 추억이 깃든 물건들로 가득 메워진 공간 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해요. 다시금 잔기침을 하고 당신의 걱정 어린 음성이 그리워지네요. 삶의 모든 의욕을 상실했어요. 당신이 아닌 이상 아무것도 의미가 되지 못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여태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닌 당신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은근히 바라고 있던 내 인생의 구원 서사를 완성해 줄 당신 말이에요. 다른 누구도 불가능해요. 당신 닮은 사람이 아닌 오직 당신이었기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었지요. 비록 예상과 다른 결말로 인해 재차 늪에 빠진 기분이 되어버렸지만요. 당신을 진작 알았더라면 과거가 그리 외롭지 않았을 거예요. 위태롭지 않았을 테고요. 혼자 몰래 우는 날도 적었을 거예요.


당신을 겪어 하루하루가 난생처음 상냥한 일들 투성이었습니다. 때문에 내가 어찌 당신과의 만남을 후회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던 순간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골백번도 더 사랑하기를 결심할 수 있어요.


두고두고 슬퍼해야지요. 함부로 내게 정해진 운명을 증오하고요. 현실이 제일 밉상이에요. 남들 앞에선 최대한 이성적인 척을 하나, 실은 감정에 속수무책이에요. 애당초 손쓸 수 없는 환경들을 이별의 까닭이라고 해야 한다는 게, 비겁해집니다. 하물며 태어나지 말 걸 그랬다는 치사한 소리를 해요.


누구라도 붙잡고서 화를 내고 싶어요. 반항하고자 하고요. 속내에 돌멩이를 일곱 개쯤 얹어놓은 것 마냥 답답하거든요. 행운을 불러다 준다는 부적이라든가, 소지품 같은 것들은 애초부터 효력이 없던 모양이네요. 아끼던 것들이 모조리 볼품 없어집니다. 기력이 없어 보인다며 저녁 잘 챙겨 먹고 푹 자라는 지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봐요. 난 아마 생의 끝자락에서도 영락없이 당신을 떠올릴 거예요. 우리 이별의 장면을 수없이 복기하겠죠.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전부였던 사랑이 끝났는데,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는 이 무정한 현실이 말이에요.



* 뒤척이는 밤, 함께 듣는 플레이리스트 :)

https://youtube.com/@sarmumegg?si=iai24xf9V8PWj7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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