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송실에서

by 천동원

교내의 스피커를 통해서 울려 퍼지는 자신의 목소리를 모든 사람이 좋아하고 들을 것이라는 착각이 매일 점심시간에 그녀를 대학방송실로 오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기에는 방송실 동아리를 시작했던 새내기부터 지금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졸업이라는 현실을 자각하고 취업이라는 현재에 얽매이게 되었던 4학년 여름 방학이 되어서야 방송인의 착각이 특별한 스타성을 갖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교우들이 매일 점심시간이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지금은 자신을 알고 기억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모두들 사회로 진출하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며 다른 것들은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시기였다. 학우들이 그녀의 얼굴을 힐끗 보며 그녀로 하여금 스타성을 느끼는 순간이 없어졌다는 것을 그녀는 이제야 알았다.



지난 대학생활은 빛나는 청춘에서 보물 중의 보석이었으며 앞으로는 가질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갑자기 쓸쓸함을 느낀 그녀는 가방을 싸서 방송실로 향했다. 방송실에는 새내기들 몇 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깔깔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과 인사를 하고 두고 간 물건을 가지러 왔다고 말하며 이곳저곳을 뒤적이다가 후배들과 인사를 하고 나와 버렸다. 마냥 좋았던 방송실 동아리 모임방이 서먹해지는 분위기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청춘의 특권이라는 티켓의 유효성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방송실을 나와서 한 개 층을 더 올라가서 위층으로 가는 계단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보았다. 버스나 전철을 타면 거의 모든 사람이 손에 든 핸드폰 화면을 보기 위해서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그녀 역시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내어 이것저것 손가락으로 터치를 하면서 화면을 뒤적였다.



그러다 광고성 썸네일에 ‘한반도의 목소리 방송을 아십니까?’라는 문구가 화면에 떴다. 보려고 하기보다는 무심결에 손가락이 터치되어 화면이 구동되더니 빨간 깃발과 함께 얼굴이 익은 두 사람의 상반신 옆모습이 보였다.



그랬다. 북한을 선전하는 인터넷 방송이 광고성 모바일 앱과 연결되어 그녀의 핸드폰에 화면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계단에서 복도로 이어지는 모퉁이에서 왁자지끌 하는 소리가 방송실로부터 들리는 것 같았다. 후배들이 저네들끼리의 수다스러운 미팅을 끝내고 나오는 소리였다.



동시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그녀는 혹시나 한반도의 목소리 방송으로 인해서 스미싱을 당할까 봐 화면으로부터 빠져나오려고 리튼스위치를 계속 누르며 후다닥 핸드폰을 초기화면으로 되돌렸다.



그러면서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후배들과 계단에 앉아있던 자세에서 멈칫 일어나는 그녀의 얼굴이 서로 마주쳤다. 그녀는 겸연쩍었다. 선배언니가 시간을 보내려고 계단에 앉아서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 모습이라니... 갑자기 그녀는 자존심이 상했다는 기분을 느꼈다. 선배는 언제나 후배들에게 무게감을 보여주며 듬직한 후배들의 뒷배가 되어야 한다는 어렴풋한 권위적 자만심이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방송실에서 고참이 되고 난 이후부터 그룹 속에서 주인공처럼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취직 문제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던 요즘, 그녀는 순간과 즉흥이라는 행동이 본능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다. 깊은 생각 없이 몸에 밴 습관이 그냥 나타나는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성질과 행동이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무의식을 더욱 강하게 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자기가 중심이고 무게 추라는 것을 어린애의 자의식에 심겨주었다.



그러한 자긍심은 커 가면서 자존감으로 변하고 때때로 청춘의 도도함이 한껏 빛을 낼 때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겐 자만심으로 비추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