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깜깜과 어스름의 사이>
* 2021.04.05에 출간된 독립출판물 <깜깜과 어스름의 사이>를 연재합니다.
독립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해방촌, 강남점), 망원 이후북스, 공릉 지구불시착, 인천 북극서점, 원주 책빵소에 입고되어 있습니다.
차를 한 잔 우려내 너의 앞에 둔다. 우리, 차 한 잔 마시자. 바쁜 일상 속에서 차를 한 잔 나누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자. 너의 삶은 어떠니.
요즘 나의 삶은 참 불안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이리저리 뒤집힌다. 최근 나는 인턴에 지원했었다. 기회가 보이면, 그 기회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허둥댄다. 이번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자소서와 이력서를 쓰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 참 내세울 게 없구나. 난 이때까지 무얼 해왔던가.
그래, 내가 한 게 많다고 말해주어 고맙다. 맞아, 우리는 꽤 열심히 살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제법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일하려니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열심히 산 사람인지 자꾸만 증명해야 하더구나. 말로 설명할 수 있어도 제3자에겐 눈으로 보이는 결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더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다-이렇게 멋진 사람이다-라는 걸 보여줘야만 그들이 믿을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자꾸 증명해내야 한다.
제출 버튼을 누르고도 한참 고민했다. 내가 잘 썼나. 잘 했나. 하지만 고민에 빠질 새도 없이 코딩 테스트를 보라고 하더구나. 코딩을 3년 이상 배웠어도 이렇게나 자신이 없다. 그래도 겨우 겨우 해냈다. 어찌저찌 끝냈다. 그랬더니 서류전형 합격 여부를 기다리라고 하더구나. 세 개의 회사에 지원했는데, 다행히도 하나의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자고. 솔직히 기뻤다. 말주변이 없는 내가 면접을 보고, 해낸 것이 없는 내가 면접을 통해 있는 척, 뭐라도 있는 척 보이려니 불안했지만, 그래도 기뻤다. 한 발자국이라도 좀 더 나아간 셈이니까.
나는 면접 준비를 했다. 어떤 질문을 할까 질문지를 뽑아보고, 답변을 준비했다. 하루 이틀 만에 모든 준비를 해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때의 나는 자꾸 식은 땀이 났다. 손은 촉촉했고, 몸은 가만히 있질 않고, 심장은 두근두근 뛰었다. 마음이 불안해 애써 적어 놓은 답변이 외워지지 않았다. 세 개 중 딱 하나 연락 왔는데, 이거라도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면접을 봤다. 생각보다 별일 아니었다. 내가 예상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내가 걱정한 부분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원하는 직무와 내가 관심 있는 분야도 달랐다. 그래도 나는, 그들이 나를 써 주길 바랐다.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떨어진 것이다. 면접이 끝나고 끝났다는 기분에 마음이 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질문을 거듭할수록 나는 어떤 것도 제대로 답할 수 없어서. 내가 학교에서 보낸 시간들이 모두 허망한 것 같아서.
맞아, 안다. 어떤 것이든 경험으로 쌓였다면 어디선가는 발휘될 거란 걸.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지난 시간이 허망해진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으니.
그래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이런 진로를 선택하고 싶던 게 아닌데, 괜히 너무 애쓰고 있는 게 아닐까. 괜히 너무 조급해하고 있나. 그렇다면 나는 무얼 하고 싶은가. 무얼 할 수 있는가. 그 어떤 길도 확신 있게 선택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를 보며 나는 점점 작아진다. 점이 될 만큼 작아진다.
하하,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너는 어떻게 지냈니.
너는 불안을 말한다. 너도 불안했던 지난 시간을 말한다. 내가 아는 너는, 내가 본 너는 단단하고 확신에 찬 사람이었는데. 너는 지난 시간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맞다고 생각했던 길이 걸어보니 또 아닌 것 같더라고. 도망칠 길을 생각해보게 된다고. 하지만, 그러다 너는 말한다. 그래도, 다시 힘을 내어 계획을 세워보았다고, 일단은 해보겠다고.
너도 힘들었구나, 많이 힘들었구나. 잘 해내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너도 불안했구나. 나는 참 멀리서 너의 삶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이리도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먼 발치서 서성였던 나의 태도를 생각하며 괜히 너를 안아주고 싶다.
아아 우리의 삶은 참 불안하구나. 인간은 안정감을 원하면서도, 안정감 속에서 또 변화를 원하지. 이런 모순적인 삶 속에서, 끊임없는 불안의 삶 속에서, 우리는 헤매고 있구나.
차를 한 잔 마시자. 식어버린 차를 나누어 마시자. 그래도 우리, 이 불안한 삶을 같이 살아가고 있어 다행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다행이다. 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나는 참 고맙다. 삶이 아무리 불안하다 해도, 앞으로도 계속 불안하다 해도 나는 너와 함께 있어 다행이다.
우리, 언젠가 또 차를 마시자.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혼자서는 보지 못하는, 반짝이는 서로의 모습을 잊지 않도록, 말해주자. 아름답다고, 방황하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일어나는 소리, 흣쨔!
느린 걸음의 산책가이자 수집가.
부러 신경 쓰지 않으면 후루룩 흘러가버리는 일상 속에서, 그는 한 걸음씩 내딛으며 이야기 조각을 수집한다. 조각은 그의 조각이기도 하고 당신의 조각이기도 하다. 때론 그림책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시 같기도 하다. 잠깐 걸음을 멈춘 그는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띄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