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깜깜과 어스름의 사이>
* 2021.04.05에 출간된 독립출판물 <깜깜과 어스름의 사이>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연재합니다.
독립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해방촌, 강남점), 망원 이후북스, 공릉 지구불시착, 인천 북극서점, 원주 책빵소에 입고되어 있습니다.
2021년의 새해가 밝았다. 2020이라는 숫자가 익숙해지기도 전에 어느새 해가 바뀌어 버렸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새해를 맞아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다짐을 한다. 새로운, 새로운, 새로운. 모든 것들이 새롭게 시작된다.
하지만 어쩐지 나는 아무런 설렘이 없다. 똑같은 해가 뜨고, 똑같은 해가 지고. 나는 변한 게 없어. 괜히 지루한 느낌이 든다. 조금은 들떴던 마음이 뿌옇게 떠올랐다 사라지고, 나는 수명을 다한 달력을 새로운 달력으로 바꾸며 중얼댄다.
‘새해는 무슨, 단지 하루가 지나갔을 뿐이야.’
누군가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어두운 감정의 단어는 이렇게나 표현할 게 많고 여운이 긴데, 설렘이나 즐거움, 신남과 같은 밝은 감정의 단어는 왜 이렇게 적고 여운이 짧은가. 밝은 감정이 더 오래가면 좋겠다, 밝은 감정이 더 많으면 좋겠다.
그래서 잠깐이라도 들뜬 마음이 들 때는 이 달달한 사탕을 입안에서 돌돌돌 굴린다. 부숴 먹거나 씹어 먹지 않고 진-한 여운이 남도록, 진-한 향이 남도록 입안에서 돌돌돌 굴린다. 감정을 소리 내어 말하며 조금만 더 붙잡아 본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사회로 내던져질 1년 후에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제 밥 제가 벌어먹고 잘 살 수 있을까. 나의 친구들은 벌써... 비교의 말이 시작되고, 걱정은 조급함으로 둔갑해 날 허덕이게 만든다. 조잘조잘 쉼 없이 뱉어대는 나의 뒤를 조용히 뒤따라온 엄마는 말한다.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 그 말이 고맙고도 밉다. 차라리 더 밉게 쏘아 붙여주지, 더 채찍질하지.
나선을 떠올린다. 언젠가 나의 몸에 새기고 싶은, 몇 없는 확실한 마음을 가진 그 모양. 작은 원을 그리며 돌다 보면 어느새 커져 있는 원.
“뭔가에 실패해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난 항상 같은 걸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했어.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을 거야. 맞은 편에서 보면 같은 곳을 도는 듯 보였겠지만 조금씩은 올라갔거나 내려갔을 거야.
아니, 그것보다도 인간은 ‘나선’ 그 자체인지도 몰라.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면서 위로도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옆으로도… 내가 그리는 원도 점차 크게 부풀어 점점 커지는 나선을 그리게 될 거야.”
영화 ‘리틀 포레스트’ 중, 주인공에게 엄마가 쓴 편지 중에서.
해가 지고 달이 뜬 새까만 천장에 나선을 그려본다. 빙글-빙글-.
맞다! 후닥닥 방의 불을 켠다. 허공에서 돌아가던 나선 속에서 에세이 드라이브*가 생각났다. 할까 말까 고민하며 미루고 미루다 보니 어느새 마감 시간이 지나버렸다. 급하고도 천천히 신청서를 쓴다.
*태재 작가님의 에세이 드라이브. 매주 한 편씩 에세이를 쓰는 프로그램입니다.
‘글을 써서 어떤 걸 하고 싶으신가요?’ 마지막으로 하나의 질문이 조용히 물어온다. 음- 조용히 나의 답변을 끄적여본다.
‘글을 고민하고 쓰는 소중한 시간을 일상에 한 갈피로 넣고 싶습니다.’
어느새 나의 다짐도 하나 생겨버렸다. 작고 단단한 그 다짐을 손으로 매만져 본다.
빙글-빙글-. 다시 불을 끄고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손가락으로 그린 나선을 바라본다. 맞아, 조급한 마음 말고,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불안해하지 말고, 조용히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는 ‘나의 시간’을 믿어보자. 자꾸 의심이 들겠지만, 자꾸 믿지 못하겠지만, 어느 순간에 뒤돌아보면 지금의 내가 신기할 거다. 그 시간을 믿어보자.
✍일어나는 소리, 흣쨔!
느린 걸음의 산책가이자 수집가.
부러 신경 쓰지 않으면 후루룩 흘러가버리는 일상 속에서, 그는 한 걸음씩 내딛으며 이야기 조각을 수집한다. 조각은 그의 조각이기도 하고 당신의 조각이기도 하다. 때론 그림책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시 같기도 하다. 잠깐 걸음을 멈춘 그는 우리에게 따뜻한 미소를 띄워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