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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Mar 11. 2017

르 코르뷔지에.
그리고 시간의 특수성.

순간에 매여 있는 관점들.

가끔 강남대로를 걷다 주변을 둘러보면 내 주변을 조여 오는 듯한 회색빛 건물들이, 그를 감추는 데는 역부족인 전광판의 불빛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걷는 속도보다 항상 좀 더 빠른 속도로 흐르는 듯한 시간과 사회. 그 둘이 숨 막히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낡고 노후된 것들은 빠르게 사라져 가고, 그 빈자리에는 새롭고 발전된 것들이 빠르게 자리 잡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콘크리트 정글 또한 언젠가 달라지겠지, 라는 상상이 내 숨을 틔워줌과 동시에 두려움을 준다. 변화라니. 이 모든 것들이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었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겠구나.


우리의 생활 배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르 코르뷔지에의 전시전을 보면서 여러 모로 감탄했다. 사실 지금 보면 별 것 아닌 아이디어들, 너무 많이 사용되어 우리에게는 흔해진 그의 건축 기법들, 그리고 요즘은 그리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는 모듈러 시스템, 하지만 이 아이디어들이 보편화되기까지의 과정의 험난함을 알기에 놀랐다.

그런 내 앞에서 누가 말했다. 

그런데 왜 대단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 내가 보기에는 르 코르뷔지에 본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개발했을 시스템인 것 같은데. 

순간 그 사람에게 이게 왜 대단한 것인지, 그 시대에는 이러한 발상이 흔하지 않았다고, 그 상황에 놓여있지 못하는 우리는 온전히 공감하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해 주고 싶었다.


말이 혀 끝 언저리에 맴돌았다. 하지만 결국 그 말을 삼켰던 것은 그의 말이 어느 정도의 사실을 내포하고 있어서였다. 세계 전역의 주거지를 앗아간 전쟁 속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가 르 코르뷔지에가 느꼈던 문제의식에 공감할 수 있을까. 우리가 과연 그 특수함 속에 우리를 욱여넣을 수 있을까.


내 예전 글들을 한번 읽어봐도 그렇다. 그 당시에는 생생한 행복, 슬픔, 분노, 헤맴 속에서 쓴 글들이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 글을 읽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너무 특수해서 지금의 내가 읽고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거북한 글들이다. 그럼 그런 글들의 가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과거의 나에게 소중했던 감정의 표출 구라 하더라도, 지금 나에게는 의미가 없는 글이 아닌가.


그런 생각에 도달하자 한순간 침묵하게 됐다.


나는 결국 그런 시간의 특수함 속에 묶여 있을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만드는 것들은 결국 지금의 나만을 위한 위로는 아닌지. 착잡해졌다.


영원히 공감받을 수 있는 것들을 만들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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